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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로스쿨과 사법시험: 중위소득자에 대한 진입장벽의 문제

by transproms 2014. 3. 31.

스쿨과 소득에 따른 불평등: 사법시험이 대안인가

중위소득자에 대한 진입장벽 문제 


어제 포스팅에서 로스쿨이 하위소득자에게는 고시보다 유리한 제도지만, 중위소득자에게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있다는 점을 설명드렸습니다. 문제는 그럼 사법시험이 중위소득자에게는 유리한 제도냐는 겁니다. 그게 맞다면, 사법시험을 존치해서 그 빈 공간을 메우는 것도 방법이겠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유리할게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것도 역시 제가 사법시험 수험생과 로스쿨 지망생들을 지도했던 입장에서 서술해 보겠습니다. 아래에 서술하는 내용은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어떤 제도상의 차이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가계가 월소득 350만 원 정도의 중위소득에 속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제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그동안 장학금, 알바, 부모님 도움으로 어떻게 학부는 마쳤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고민입니다. 로스쿨을 간다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월 200만이 드는 로스쿨에 진학한다는 것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럼 사법시험이면 어떨까? 사법시험도 월 100만 원 정도는 듭니다. 빨리 붙으면 지금 시작해서 2~3년이면 (3차까지) 합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2-3년 내에 붙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합격자 평균 연령이 28세 정도이니, 졸업 후 4-5년은 공부해야 붙는게 평균이라는 것이죠. 그나마 이 평균에 들어가면 다행입니다. 사법시험 경쟁률은 보통 301이 넘습니다. 평균적으로, 30명이 준비하면 1명이 5년 내에 합격한다는 것이죠. 즉 수험기간이 5년 이상 걸릴 확률과 영원히 합격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큽니다. 시험 준비에 생활비만 든다고 해도, 소득이 없는 상태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리고 몇 년 내에 끝낼 가능성보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게임에 올인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실패할 확률에 높은 게임에 뛰어들었다가 실제로 실패하면 그 가계는 큰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봐도 국민 몇 만 명이 이런 확률낮은 게임에 인생을 거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로스쿨이 도입된거고요)

 

반면에 로스쿨은 계산이 서는게임입니다. 일단, 로스쿨 준비는 영어 성적과 리트 성적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짧습니다. 재학생은 재학 신분 유지하면서 보통 6개월 정도 준비합니다. 심지어, 아무런 준비 없이 합격할 수도 있는 입시제도입니다. 리트는 적성시험이라서 심지어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쳤는데도 고득점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거든요. 로스쿨 준비에는 사실상 돈이 들지 않는다고 봐야 맞습니다. 로스쿨 학원도 있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학원을 권하지 않습니다. 왜냐? 그동안 학원 전혀 다니지 않고도 로스쿨에 진학한 수많은 사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도 경쟁률이 있으니 떨어질 수 있고, 리스크가 있긴 매한가지 아니냐는 분들도 있는데, 사정이 좀 많이 다릅니다. 로스쿨 경쟁률은 51정도 되는데, 불합격 시 벌어지는 상황이 고시 불합격했을 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로스쿨지망 학생들에게 취업 준비도 병행하라고 권합니다. 취업준비를 함께 해도 전혀 문제될게 없거든요. 준비하는 방법이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심지어 리트 시험은 기업에서 보는 각종 적성시험(삼성 SSAT )과도 유사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로스쿨에 떨어진 학생들도 동시에 취업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로스쿨 준비에 적합하게 학점, 경력 등을 관리해온 학생들은 취업에도 유리하거든요. 한 번 떨어졌다고 로스쿨 진학의 꿈을 바로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또 준비하면 되니까요. 로스쿨은 직장 다니면서 준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지도한 학생 중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일단 취업을 했다가 그 다음 해에 진학에 성공한 학생도 있고, 로스쿨에 떨어지고 취업을 했는데, 회사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아서 그냥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취업을 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즐겁게 다니고 있고, 로스쿨은 한 3-4년 뒤에 제대로 경력을 쌓아서 재도전해보겠다고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재수, 삼수하는 경우도 있지 않냐고요? 네 있습니다. 재수하는 학생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에서 재수는 좋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아무런 경력이 추가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이를 먹는 것은 오히려 합격가능성을 낮추는 일이거든요. 리트는 재수 한다고 점수가 오르는 시험이 아니고요. 학점은 어차피 그대로죠. 경력도 달라질 게 없거든요. 재수에 성공한 학생들은 대개 리트점수와 영어점수를 끌어올린 경우인데요. 첫해에 영어나 리트 준비를 거의 안했기 때문에 점수가 올라가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실제로 첫해에 리트 공부를 6개월 이상 했는데도 점수가 안나온 학생은 그 다음 해에 열공해봐야 성적은 거의 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점수가 올라가면 리트 시험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리트는 단기간 공부해서 올릴 수 없는 적성시험이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처음에는 저의 조언을 무시하고(!) 로스쿨에 올인한 학생들도 재수할 때는 다 취업과 병행합니다. 여하튼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일단 직장 다니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로스쿨에서도 불합격자가 불가피하게 발생하지만, 고시제도 때처럼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요컨대, 중위소득자에게 로스쿨은 장벽이 되긴 하지만, 그 대안으로서 사법시험 존치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중위소득자에게는 사법시험 역시 리스크가 너무 큰 선택지니까요. 그래서 만약 소득에 따른 불평등이 유일한 문제라면, 로스쿨 장학제도를 보완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과도한 규제만 없애면 로스쿨 등록금을 연 1천만 원 정도까지 낮추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기에 기존 장학제도를 유지하면 훨씬 사정이 나아지겠죠? 원칙적으로 변호사 될 사람에게 국가돈을 쓸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굳이 국가재정을 쓰겠다면 수백억에 달하는 사법연수원 운영 비용을 로스쿨 장학금으로 돌리는 편이 나을겁니다. 본인 부담으로 한다면, 흔히 등록금 후불제라고 불리는, 초저리 장기대출제도를 잘 설계하면 됩니다. 국가돈을 써야 한다면 차라리 여기에 이자비용을 대는 것이 낫죠. 더 좋은 방안은 원래 참여연대 안처럼 졸업 후 1-2년간 공익봉사를 하는 조건으로 로스쿨 학비를 선지급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로스쿨체제에 문제가 많이 있고,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법시험 존치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근거가 타당해야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로스쿨=돈스쿨, 저소득층의 법조인 진출 기회를 차단한다”, “사법시험 존치로 저소득층 희망사다리를 놓자는 것은 사법시험 존치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라면, 로스쿨제도를 조금 보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논쟁을 할 때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논점을 하나하나 배제해야, 다른 논점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 존치와 관련해서 집중토론을 할 주제는 오히려 학벌차별이나 연령차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법시험이 꼭 필요한가를 토론하자는 것이죠. 저는 여전히 법조인 양성제도와 관련하여 (대한변협이나 서울변회에서 제시하는) ‘공정성이라는 논점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얘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