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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회_UK

영국 노동당 당대표 선거: 코빈 돌풍에 대한 몇가지 메모

by transproms 2015. 8. 21.

영국 노동당 당대표 선거: 코빈 돌풍에 대한 몇가지 메모

- 낡은 좌파구호인가?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매력적인 새로운 정치인가?

 

1. 미국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영국에서는 긴축반대, 재국유화, 무상대학교육, 부자증세 등을 내건 정통좌파 제레미 코빈이 연일 미디어를 강타하고 있음. 샌더스는 결국 힐러리한테 질 가능성이 높지만, 코빈은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음.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연 선두 질주 중. 이변이 없는 한 무사히 당대표로 선출될 듯.

 

2. 변수는 New Labour을 이끌었던 세력들이 총동원되어 견제에 나서고 있다는 점. 토니 블레어가 직접 나서서 코빈은 안된다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고, 당시 내각을 이끌었던 주요 멤버들인 Alan Johnson, Jack Straw, Alastair Campbell 등까지 나서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음. 특히 당내에서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가 관심거리였는데, 며칠 전 코빈의 당선은 노동당을 집권정당이 아니라 반대하는 정당으로 만들 것이라며 코빈 비판을 거든 상황.

 

3. 노동당 의원 중에는 코빈 지지세력이 거의 없지만, 노동당 당대표 선거방식은 코빈에게 유리하게 되어 이음 이번 노동당 당대표 선거인단은 당원 30만명, 등록지지자(3파운드 내고 선거 참여) 12만명, 노동조합 연계 선거인단 19만명 등 총 61만명. 지난 총선 이후 무려 105천명의 당원이 새로 가입했고, 12만 명이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등록할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운 상황. 특히 12만 명의 등록지지자 숫자는 SNS 등을 통해 젊은 층에서 코빈지지를 위해 대거 참여한 결과. 일부 보수신문에서 “3파운드 내고 코빈을 당선시켜서 노동당을 망하게 하자고 선동하여 일부 위장세력들이 등록한 것으로 추정되나 그리 유의미한 숫자는 아닌 듯. 참고로 최근 노동당은 노조 연계 선거인단 가중치(3분의 1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가중치 부여)제도가 폐지되어, 노조 영향력이 다소 줄었음.

 

4. 당 내에서는 코빈에 대한 견제가 심하지만, 당 외부에서는 젊은이들의 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음. 또한 윌킨슨(Richard Wilkinson)27명의 영국 대학 교수들이 가디언에 편지를 보내, “코빈의 정책은 구노동당정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라며 공개지지를 선언했고, 35명의 경제학자들이 코빈의 긴축 반대 등의 경제정책이 합리적(sensible)이라고 공개지지 선언.

 

5. 제러미 코빈은 66세로 영국에서 득세하는 젊은 정치인도 아니고, 블레어나 카메론처럼 비디오형 달변가도 아님. 물론 트럼프처럼 기행을 일삼는 것도 아님. 코빈 열풍은 1990년대 이후 신노동당과 보수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됨. 특히, 보수당 정책에 대한 반발임과 동시에, 노조와의 결별, 시장주의, 지구화, 공공부문 축소 등으로 구노동당의 색채를 벗어던진 블레어의 New Labour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음. 영국을 더 이상 더 불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시민들, 특히 젊은층의 지지가 반영된 결과. 긴축, 공공부문 축소, 복지 삭감, 반이민정책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보수당정권에 맞서는 대안이 블레어식 중도정치일 수는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6. 하지만,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다음 총선에서 집권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 보수에서 코빈을 쉬운 상대로 여기고 있는 것도 이해못할 바가 아님. 세련된 중도정책으로 노동당 혁신에 성공한 블레어는 생각보다 매우 위력적인 존재였음. 1979년부텨 1997년까지 보수당 장기집권을 저지한 것이 바로 블레어의 New Labour. 199441세의 나이에 노동당 당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는 1992년만 해도 271석을 얻는데 그쳤던 노동당을 5년 만에 418석을 차지하는 집권여당으로 변신시키고 이후 두 번을 더 집권하여 2010년까지 노동당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던 장본인. 당시, New Labour가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는 신문사 지지(newspaper endorsements)를 봐도 알 수 있는데, 1950년 이후 줄곧 보수당을 지지해왔던 중도보수지 Times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는 노동당을 지지했고, 대처 시절에는 보수당 지지였던 '1등 신문'(^^;;) Sun도 블레어 시절에는 항상 노동당 지지, 2015년에는 극우정당 UKIP을 지지했던 Daily Express2001년에는 노동당을 지지했을 정도. 잉글랜드의 중도층(현재 런던을 제외한 잉글랜드 대부분의 지역은 보수당이 석권한 상태)을 잡아야 집권이 가능한다는 블레어 세력의 확신은 이러한 대성공의 경험을 바탕에 둔 것. 그들은 아마 진심으로 80-90년대 노동당 암흑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임.

 

7. 물론, 불평등 심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영국의 현실에서 여전히 이러한 블레어식 중도정치가 먹힐지도 역시 미지수임. 결국 유권자들이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가에 달려 있을터인데.... 예컨대 철도 재국유화라는 정책이 낡은 좌파정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일자리도 창출하고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는 것임. '긴축 반대'라는 수세적인 구호가 현실의 고단한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할 것임. 코빈의 정책이 낡은 좌파 구호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할 때 현재의 인기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 듯. 최소한 현재까지는 후자 쪽의 기대를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임은 분명함!


"제레미 코빈: 당대표가 되면, 노동당을 대표하여 이라크전에 대해 사과하겠다" (가디언 기사 링크): ㅎㅎ 이거 참 재미있는 한 수. 코빈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는 토니 블레어 등 노동당 주류의 최대 약점은 바로 '이라크전'. 반면, 당시 '전쟁반대운동'을 맨 앞에서 이끌면서 토니 블레어에게 반기를 들었던 코빈은 이라크 전에 관한 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 중 한 명. 저 같으면, "토니 블레어는 이라크전 책임질 생각이나 하셔~"라고 말할 것 같은데, 코빈은 "내가 당대표로서 노동당을 대표하여 사과하겠다"라고 절묘한 한 수를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