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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사시/로스쿨의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by transproms 2015. 12. 8.

* 요즘 쓰고 있는 논문 "로스쿨은 공정한 제도인가?"(가제)의 아이디어 정리 일부입니다.



사시/로스쿨의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공정성(fairness)이란 뭘까? 단행본 한 권에서 다뤄도 부족한 논의지만, 대략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a) 각자에게 합당한 자기 몫이 주어지는 것

b) 자의와 편견의 배제


물론 이 둘은 연결되어 있고요. 일단 편의상 공정성에 이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전제하고, 사법시험과 로스쿨 입시를 한 번 검토해보겠습니다.

 

1) 사시 1(객관식 시험)의 공정성


a)에 있어서는 약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객관식으로는 법조인에게 필요한 실제 역량을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b)에 있어서는 완벽하죠. 그 어떤 부당한 개입이 불가능합니다. 채점을 아예 컴퓨터가 하거든요. 하지만 객관식시험은 a) 측면에서 약점이 워낙 많아서 순수자격시험이나 1차에서 한번 거르는 정도로만 활용되어 왔습니다.

 

2) 사시 2(주관식 시험)의 공정성


a)에 있어서 객관식 시험보다 월등합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답안을 적어내는 능력은 실제 법실무능력과 일치하진 않으니까요. 실제 능력에 더욱 가깝게 평가하려면, 24시간 동안 이론판례를 참조하여(, 오픈북으로) 법률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을 평가하면 좀 더 실제 실력을 평가하는 것과 가까워질겁니다.


b)에 있어서도 아주 훌륭한 제도입니다. 누구 답안지인지 모르고 채점하니까요. 특히 한국처럼 정실과 인정에 약한 좁은 사회에서는 이게 결코 무시 못할 장점입니다. 그런데 자의성이 완벽히 배제되는건 아닙니다. 만약 같은 답안지를 다른 시험위원이 채점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가정을 해보죠. 2014년 채점위원에게 답안지를 다시 보내 동일한 답안지를 재채점하게 해보는 겁니다. 2015년에도 과연 똑같은 점수를 줄까요? 심지어, 그 차이 때문에 당락이 바뀌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시 2차처럼 합격권에 수백 명이 몰려 있는 시험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워낙 출중한 실력자들 다수가 뛰어드는 시험이다 보니, 합격자들의 실력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불합격자들 중에서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빠서 떨어진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a) “각자에게 합당한 자기 몫이 주어졌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고, b) (채점자의) “자의성도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이 대체로실력도 좋으며, 상위권 합격자라면 누가 언제 어떻게 채점하건 역시 합격할 겁니다. 제가 볼 때, 법조계는 '시험 실력'과 '실제 능력'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특이분야기도 하고요. 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주관식 시험제도의 공정성이란 딱 이 정도입니다

 

3)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


일단 로스쿨 입시는 a)에 있어서 시험제도와는 다른 의미의 공정성을 추구합니다. , “각자에게 합당한 몫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잠재력이 평가요소로 들어갑니다. 아직 실력발휘를 못했고, 법공부를 잘할지조차 알 수 없는데, 잠재력을 보고 합격을 시킵니다. 적극적 조치도 가미됩니다. 장애가 있거나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별도로 뽑기도 하죠. 미국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합격자 조정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학교가 원하는 인재를 뽑기 위한 것으로서 정당화됩니다. 이런 식으로 법조인 후보자를 뽑아서 교육으로 양성한다는 것이 로스쿨 제도의 취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시험제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그런데 이런 입시를 보고 불공정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각자에게 합당한 자기 몫에 대한 개념 이해 자체가 다른 겁니다. a)와 관련하여 로스쿨 입시는 로스쿨식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적극 고려되지 않으면, 이미 많이 성취한 사람이 유리해집니다. 근데 로스쿨이 요구하는 성취 중에는 경제 사정이 넉넉해야 가능한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로스쿨식 공정성이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전반적으로 로스쿨식 공정성은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시키는게 상당히 까다로운 편니다. 사회에서도 입시 결과에 대해, “로스쿨에서 자신들의 생각하는 미래 인재를 차별과 편견 없이 잘 고려해서 뽑았을 것이다라는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가는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무엇보다 사시의 공정성은 직관적으로 확 와닿는게 있는데, 로스쿨의 공정성은 이해하기가 까다롭고 아직까지는 한국사회에 낯선 개념이죠.

 

더 큰 문제는 b)입니다. (아는 사람 합격시켜주는 식의 비리성) 자의와 편견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는 '시험'과는 달리 로스쿨 입시는 빈틈이 많습니다. 관계자들이 고도의 윤리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구멍이 뚫리는 제도입니다. 친척/지인이 지원하면 입시위원에서 배제된다는 정도의 규정은 가지고 있지만, ‘지인이라는걸 도대체 어떻게 가려내겠어요. 그냥 그건 입시위원들의 양심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는 현재의 로스쿨 입시 공정성에 대한 이런 저런 의심은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봅니다만, 그런 의심이 들게 빌미를 준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로스쿨을 불신하는 분들은 한국에선 이런거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한국은 안돼라고 단언하고 싶진 않지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4) 로스쿨식 공정성은 가능한가?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각 제도가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사시제도의 간명하고 쉽게 실현가능한 공정성이에도 장점이 있지만, 로스쿨식 공정성도 상당히 매력적인 지향점임은 분명합니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선택할지는 우리 사회가 결정해야 할 몫이고요.

 

그런데 로스쿨식 공정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다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점은 유감입니다. 심지어, 로스쿨이 이렇게 다른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로스쿨식 공정성은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실현이 가능합니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제도입니다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건 로스쿨 도입·운영 관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라, 교육부, 법무부 등 관계기관은 물론 사시존치를 외치는 일부 변호사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얘깁니다. 예컨대, “정성요소 축소하라!”는 주장은 로스쿨식 공정성이 잘 실현되도록 보완하라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식 공정성포기하라는 주장일 뿐입니다. 로스쿨이 정성요소 없이 학생을 선발한다면, 예컨대 리트/영어 점수로 줄 세워서 합격시키는 제도로 전락한다면, 그냥 사시로 일원화하는게 훨 낫습니다. 우리가 그런 제도를 굴릴 역량이 안되는 수준이라면 다시 원위치로 가는게 낫지, 로스쿨답지 않은 로스쿨을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정말 최악이라고 봅니다.

 

로스쿨식 공정성의 실현은 쉽지 않지만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입시 사정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걸 모두 외부에서 검증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일단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약간의 글을 정리해 놓았으니 참고바랍니다. http://transproms.tistory.com/131

 

 

5) 공정성은 고려되어야 할 '하나의 요소'에 불과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법조인 양성에서 고려해야할 요소에 공정성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공정성에 집착합니다. 공정성 절대주의(fairness absolutist)’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물론 우리사회가 공정성에 집착하게 된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공정성 외에 다른 가치에 눈감게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어차피 완벽한 공정성은 불가능하며, 또한 공정성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전부도 아닙니다. 공정성만 놓고 보면, 저는 로스쿨식 공정성이 이상적으로는 우위에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시가 더 장점이 있는 제도라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공정성 이외의 요소들은 대부분 로스쿨제도 쪽에 우위가 있는 것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생략). 그것이 곧 로스쿨 도입의 취지였던 것이죠. 저는 공정성 문제만 지혜롭게 해결될 수 있다면 로스쿨이 훨씬 더 장점이 많은 제도라고 봅니다. 하지만 공정성에 발목이 잡히면 이런 장점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공정성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잃고 있는게 작금의 상황입니다. 물론 제 의견은 공정성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니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고요. '로스쿨식 공정성'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정말 그렇게 실현불가능하고, 또 우리 사회가 로스쿨식 공정성이 전면화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 수 없다면, 보충적이고 예외적으로 시험에 의한 선발(전 사시보다 예시를 더 선호합니다)도 병행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합니다.


 

* 다만, ‘공정성 문제외에, 로스쿨체제가 최소자격자를 걸러내는 실패했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