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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선고요지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탄핵 결정문 내용

by transproms 2017. 3. 10.

오늘 이정미 재판관이 읽은 것은 '선고 요지'인데,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알아 듣기 쉬운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참 좋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덕분에 수업시간에 딱 맞춰서 지켜볼 수도 있었고요^^


방금 결정문 전문을 입수해서 읽어봤는데, 총 89쪽. 선고요지보다는 훨씬 길고 자세합니다. 


결정문 전문 파일 다운로드 링크


다음은 선고요지에서 언급되지 않은 결정문 내용 중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


1) 선고일시가 "2017.3.10. 11:21"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선고요지를 21분 내로 읽을 것을 예정하고, 분까지 특정해서 적어놓은걸까요? 그렇다면 이정미 재판관은 전날 스톱워치 켜놓고 읽는 연습을 했을지도.. 아침에도 시간 맞춰 읽기 연습을 하다가 헤어롤을 꼽고 나오신게 아닐지 ^^;; 암튼 이번 결정은 정확히 언제부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는지 그 시점이 매우 중요했던 결정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2) 뇌물죄 여부가 형사재판에서 다퉈질텐데,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대통령의 기업경영 개입이,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한 것",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구속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3) 세월호 참사가 탄핵소추사유에서 배제된 것을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시는데, 김이수/이진성 재판과의 '보충의견'을 보니, 대략 사정이 짐작이 됩니다. 추측컨데, 이 두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를 탄핵소추사유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을 듯 합니다.그런데 그걸 밀어붙이면 '전원일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 부분을 다수 의견에 양보하여 '전원일치 결정'을 만든 뒤, '보충의견'으로 대통령의 의무 위반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충의견은 비록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는 사실을 무려 17쪽에 걸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파면사유가 아니라고 해서 잘했다는 뜻인 것은 아니고, 헌재 결정문은 대통령의 대처가 적절했음을 인정한 것도 전혀 아닙니다. 보충의견을 읽으면서, 세월호 부분이 기각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습니다.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 또 시작입니다.


4) 안창호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일종의 개헌론을 15쪽이나 썼는데, 이 부분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 대통령이 그런 행위를 한 배경에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었고,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인데요. 탄핵 결정을 내리는데, 피청구인 행위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나요? 특히 탄핵결정을 계기로 권력구조를 개편하자는 거창한 제안까지 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탄핵결정문에 들어가는게 적절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5) 김이수/이진성 재판과의 보충의견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아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법률의 중대한 위반을 '사법절차'로 판단하는 탄핵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박근혜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을지언정, 헌법재판소가 탄핵이라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사정이 있음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고 박근혜를 직접 조사하게 되어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점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할 부분을 남겨놨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아무튼 보충의견 중 특별히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있어 옮겨옵니다. 이런 구절을 '결정문'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장, 한 문장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꾹꾹 눌러 썼을 것 같은 구절입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진정한 지도자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 4. 16.이 바로 이러한 날에 해당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 모두가 어느 때보다도 피청구인이 대통령의 위치에서 최소한의 지도력이라도 발휘해 국민 보호에 앞장서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최상위 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승객 구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은 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400명이 넘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그 순간에 피청구인은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