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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이상돈, 인권법

by transproms 2008. 7. 23.

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102호, 2006.3.8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ongsungsu&nnew=2&y_number=3


근대적 인권개념을 넘어서

이상돈, <인권법: 현대사회에서 인권패러다임의 변화와 인권의 실현>(세창출판사, 2005)>



1. 인권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담론화된지도 이제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은 ‘인권’을 이야기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인권’이라는 담론이 갖는 의미를 차분하게 평가해 볼 시점이 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상돈 교수의 <인권법>이 다루고 있는 몇 가지 쟁점들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쟁점은 “인권의 보편성”과 “근대적 인권개념”에 대한 의문이고(제1부), 두 번째는 그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해서 “인권개념의 재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고(제2부, 제3부), 세 번째는 그런 이해를 토대로 어떻게 “인권실현의 모델을 만들 것인가”(제4부) 하는 것이다.


2.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

 이 책은 먼저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에서부터 시작한다.(제1부) 근대적 인권개념은 18-19세기 근대시민혁명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권이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고정불변하는 권리이며(보편성), 이것은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받아서는 안되며(불가침), 누구에게 양도할 수도 없는(불가양) 권리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근대적 인권사상’이 ‘정치적 소외, ’사회경제적 소외‘, ’문화적 소외‘라는 세가지 실천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정치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민주주의적 주권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며, 사회경제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사회적 약자의 실질적 자유보장에 취약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타문화권 고유의 이념을 폭력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 인권개념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개념이다. 현대적 인권문제가 인권과 주권의 충돌, 사회·경제적 권리이나 문화적 권리의 위상 문제, 문화적 상대주의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의 세 가지 소외를 낳는) 근대적 인권개념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권은 보편적이다’, ‘인권은 불가침, 불가양의 천부적 권리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기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그 수사학적 기능은 중세봉건권력과 맞서 싸웠던 부르주아혁명 시기에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의 접근권은 ‘천부인권’이다”라는 근거로 장애인 엘리베이터 설치를 주장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위력적인 논거가 된다. 하지만 점심을 굶는 어린이의 인권, 최소한의 주거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독거노인의 인권 또한 천부인권라면,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천부인권보다도 장애인 접근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당장 서울 시내에서 수만명의 어린이가 점심을 굶고 있는데, 수억의 예산을 들여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비를 하는 것은 어떠한 타당성이 있는가? 절대적인 권리가 이렇게 어느 하나를 위해 어느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합당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소위 ‘근대적 인권개념’은 적절한 이론적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적 인권개념은 재화가 풍부한 서구선진국의 이해관계를 편파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전체 국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줄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재화를 가진 선진국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확보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재화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어떤 인권부터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장애인접근권과 최소한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충돌할 때, 후진국은 어느 한 권리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서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권’을 부당하게 ‘선택적’으로만 실현하는 것일 수 있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러한 인권침해국에 대한 ‘응징’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어이없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근대적 인권개념으로는 이러한 난관에 대해 어떠한 답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저 ‘인권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다’는 ‘공문구’만을 남발할 뿐이다.
 

3. 인권개념의 새로운 모색과 대안

 그렇다면 근대적 인권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권개념의 재정립은 인권학과 인권운동의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린다. 저자는 하버마스(J. Habermas)의 토론정치이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제2부), 인권개념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한다.(제3부) 그것은 한마디로 “인권개념은 실체가 아니라 (대화적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107쪽)는 명제이다. 즉, 저자는 인권이 원래부터 보편적으로 일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인권담론에 대한 공정한 공론경쟁을 통해 비로소 ‘절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권과 주권,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하버마스의 후기 법-정치이론을 응용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보면, ‘인권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명제는 기각되며, 대신 인권담론의 ‘형성절차’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점으로 부각된다. 어떠한 인권개념도 선험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되지 않으며, 모든 가치들은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론을 통해 재해석되고, 그러한 합리적 절차의 결과물로서 인권은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권개념을 유동적으로 만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권개념을 역동적인 개념으로 재정립하는 장점도 있다. 특히 인권담론의 해석주체로서의 인권담지자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자칫 시혜적이고 후견적(paternalistic)이기 쉬운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제4부에서 이러한 새로운 인권개념에 기반했을 때, 다양한 인권의 실현기제들이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지를 논한다. 인권이 절차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 절차를 세심하게 가다듬는게 당면과제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 국가기구의 역할, 그리고 시민적 공론을 형성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여기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중간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의사소통촉매기능’(241쪽)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실천적 제안이다.


4. 해결되지 않은 과제

 이 책은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인권개념을 이론적으로 도출해 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인권실현기제까지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이른바 ‘자기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인권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대개 사회학적 현상분석이나 철학적 고찰에 머물거나, 법제도에 대한 피상적 접근을 넘어서지 못하며, 학제간 연구라고 해도 대개 여러 학문분과의 시각이 나열되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인권관련출판이 이미 ‘거대산업화’되어 버린 서구에서도 이러한 종합적 고찰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주장이 안고 있는 ‘실천적 난점’이다. 형사피의자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재소자의 인권을 주장할 때, 장애인의 인권을 옹호할 때, “인권은 보편적이고 불가침의 권리이다”라는 모토만큼 선명한 주장은 없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주장이 사회적 인정을 받는데 크게 기여한다. 대부분의 인권교재가 인권의 절대성/보편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테다. 하지만 이 책은 실천적 우위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권개념의 절차적 재구성을 주장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완성도는 높지만, 그 주장이 시민사회에서 동의를 얻기에는 또다른 난관이 존재한다. 성숙하고 건강한 공론영역이 존재하고, 그것이 정치권력을 적절하게 견제하는 사회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근대적 인권개념’을 포기하고, 인권의 다원성, 절차성 등을 주장하는 것은 실천적 차원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척박한 공론현실을 고려해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 공론에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재소자에 대한 성폭력문제가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강타하고 있다. 당신은 재소자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근거로 항의를 조직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재소자의 인권을 어떻게 정의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주제로, 공론영역에서의 사회적 합의절차를 밟아나가는 지리한 노정부터 차근차근 시작할 것인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된 우리 인권현실이 이제 그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어느 선택지를 택하건 그 치열한 고민은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