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시작 되면 말을 묘하게 돌릴 것 같았는데, 예상대로네요.

"오해할 만한 소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얘기다. 제가 지지를 한다는 게 아니다. 이 사람들의 인권, 인격이 차별받는 것은 안된다는 얘기다. 차별을 받지 않도록 여러가지 정책에 대해 지지한 것이다. .... 다른 특정한 행위를 인정하는건 아니다." (2017.1.24 반기문 답변) (링크)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 오늘, 저는 당신들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에게 당신들 편에 함께 서라고 요청합니다." (2012.3.7 반기문 유엔 총회 연설) (링크)


- 성소수자를 지지를 한다는게 아니다 / 한국 대선후보 반기문 (2017.24)
- 성소수자 "편에 선다"(stand with) /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2012.3.7)

이건 뭐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존재에 대해서 지지하냐 마냐는 것을 논하는 자체가 ('흑인 지지', '외국인노동자 지지'가 말이 안되는 것처럼) 부적절하죠. "특정한 행위를 인정하는건 아니다" 이건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그럼 동성애 행위를 인정하지는 않는데,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숭고한 의사를 표명한 것인가요? 나 원 참.... 반면에 그가 유엔사무총장 시절 말했던 "그들 편에 서서 함께 하겠다" 이건 참 적절한 표현이죠. 유엔 차원에서 그들의 투쟁에 동지적 연대를 표시(앨라이선언)하는 것이니까요.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표시할 때 적절한 표현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아는 전직 유엔사무총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적절한 말을 하게 되면, 바로 이러한 여처구니 없는 해석이 뒤따릅니다.

"면담에 참여한 이용규 목사는 반기문의 말에 동감한다면서, '동성애를 차별하는 것은 안되지만 반드시 치유해야 한다 ... 반 전 총장에게도 그 얘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링크)

치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뭐라고 덧붙였을까요? 유엔 사무총장이었다면, "아 제 말을 그렇게 해석하시면 안됩니다. 치유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차별적인 것입니다"라고 했겠지만, 대선 후보 반기문은 아마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겠죠? 지금 발언을 하나하나 모아서 유엔에 '신고'라도 해야겠습니다. 퇴임 후 한 달도 안되서 저런 말을 하고 다닌다고.. 정말 나라 망신 수준이 심각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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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는 유엔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것>


아래의 내용은 반기문이라는 특정인물을 염두에 둔 것이 절대 아니고(!?),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특정 국가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에 대한 '일반론'임을 밝힙니다.


1. 당연한 얘기지만, 유엔 사무총장은 특정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자리가 아니죠. 그런데 유엔 사무총장을 하고 나서 특정 국가에서 정치를 하게 되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얻게 된 지식, 경험을 특정 국가를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특히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얻게된 기밀정보도 있는데 이걸 특정국가를 위해 사용한다? 말도 안되는 것이죠. 유엔사무총장 퇴임 후 공직 취임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유엔 결의문"(전문과 해설기사 링크)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4-(b)항. 사무총장은 여러 정부들의 비밀을 다루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든 회원국은 그에게,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그의 비밀 정보가 다른 회원국을 당황시킬 수 있는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공해서는 안 되며, 사무총장 자신으로서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Because a Secretary-General is a confident of many governments, it is desirable that no Member should offer him,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 any governmental position in which his confidential information might be a source of embarrassment to other Members, and on his part a Secretary-General should refrain from accepting any such position.) 


2. 반기문 측에서는 "결의문"에 구속력이 없다고 나선 모양인데, 이건 정말 전 유엔사무총장이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결의안 뿐만 아니라, 유엔이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회원국들이 유엔의 결정에 따르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바로 유엔사무총장이죠. 여태 그 일을 하다가, 자기가 당사자가 되니까, "구속력이 없다?" .... @.@ "구속력이 없다"는 팩트지만, 유엔 사무총장이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안되는겁니다. 그럼, 유엔 사무총장을 하고 특정 국가에서 공직에 취임하면,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여 징역형을 살게 하는 규정이라도 만들까요? 그런 강제성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취지에 맞게 준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래도 유엔이 지금껏 운영되어 왔던겁니다. 근데 유엔사무총장 출신이 유엔 결의문을 '구속력'이 없다고 하면, 그건 유엔의 존립근거와 본인이 했던 일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3. 심지어, "결의문"에 '적어도 퇴임 직후'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기 때문에 "직후"는 아니지 않냐는 주장도 있더군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퇴임일이 2016년 12월 31일이었고요. 귀국하면서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게 2017년 1월 12일이었습니다. (재직 중에도 이런저런 사전작업을 했다는 '의심'은, 증거가 없으니 일단 접어 둡니다) 이게 즉시가 아니면 뭡니까? 게다가 탄핵결정이 내려지면, 대선 후보로 2-3월에 나가야 하고, 4-5월이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결의안"에 저런 표현을 쓴 것은 사무총장 재임 후 정부 자리를 '영원히' 맡지 말라는 얘기까지는 아니라는 뜻 정도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사무총장 재직 이후 어느 정도 '단절'의 시간이 있었다면 괜찮다는 뜻이지, 반기문처럼 퇴직 후 기다렸다는듯이 출마하는 것은 안된다는 뜻입니다.


4. "결의안"에 '회원국'이 'governmental position'(정부직)을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문구 그대로 해석하여, 어떤 '임명직' 취임이 제한되는 것이지 선출직인 대통령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문구를 그대로 해석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기밀정보가 특정 국가에 유리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는 결의안의 취지로 보면, 임명직이건 선출직이건 마찬가집니다. 선출직에게도 적용되도록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5. 꼭 결의문이 아니어도, 유엔사무총장의 대통령 출마는 '후임자'에게도 아주 나쁜 선례를 남깁니다. 당장 구테흐스 신임 유엔사무총장이 출신국인 포르투칼에 조금이라도 유리해 보이는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무슨 말이 나오겠습니까? "당신, 반기문처럼 포르투칼에서 정치하려는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죠. 전관예우를 누리는 퇴직 공직자들에게 후배 현직 공직자들에 폐를 끼치게 되는 것하고 동일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죠.


6. 또한 유엔사무총장은 퇴임 후에 할 일이 무지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로 유엔 설립 취지에 맞게 사용하는게 바로 '도덕적 책무'죠. 전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 문제에 투신할 수도 있고, 난민을 위한 세계연대를 조직할 수도 있고, 세계 유수기업들 손목을 비틀어서(?) 공익 재단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퇴직자가 본인의 도덕적 지도력을 활용해서 부자들 돈 받아내서 재단 만드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박근혜/최순실과는 다른 사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쓰고, 강연도 다녀야죠. 정말 할 일이 수두룩 합니다. 그런데 그걸 다 제쳐두고, 겨우 특정국가의 대통령이 된다? 이건 정말 유엔의 설립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실제로, 

유엔 사무총장을 하면서 쌓은, 세계지도자로서의 경험, 지식, 그리고 네트워크는 정말 어마어마한 겁니다. 그런 자리는 10년 마다 한 명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은 퇴임 후에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즉, '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써야 마땅합니다. 결의안이고 나발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세계지도자로서의 당연한 '책무'이자, '양심'인 것이죠.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도 퇴임 직후 가나 대통령 직을 제안받았습니다만, 그는 일국의 대통령 대신 '세계'를 위한 일에 투신합니다.

- 2007년에는 더 공정하고 더 평화로는 세계를 위한 공익재단, "코피 아난 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 전개중
- 2007년 케냐선거에서 폭력사태가 발발하자, 코피아난이 중재자로 나섰고, 양 정치세력이 연합정부협정을 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 수행
- 2012년 코피 아난은 시라아 내전이 발발하자, 유엔-아랍연맹 공동 시리아 특사로 파견되어 휴전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여 특사 직을 사퇴 ㅠ)
- 그 외에도 아프리카녹색혁명연합 결성 주도, 세계인도주의 포럼 의장, 세계 퇴직 지도자들의 인권/평화를 위한 모임 The Elders 의장, 아프리카진보패널, 가나대학 (명예)총장, 싱가폴국립대학 교수, 다원주의 글로벌센터 의장 등 자신의 유엔사무총장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수많은 활동 수행 중.


퇴임 후 이런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는 10년마다 딱 한 명의 지구인에게만 주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고요?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에 출마하는 거지만,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국가'의 대통령에 출마하는거고, 본인의 지식과 경험을 '특정 국가'를 위해 쓰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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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군 복무자 대학학점 인정제 도입-반대

실질적 보상 안 되고 형평성에도 위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대학생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최대 6학점을 인정해주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가 복학생이 군에서 받은 교육훈련을 소속 대학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포괄적 학점 인정제를 제안하고 최근 공청회도 열었지만 대학 자율성과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학계 및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다. 학점 인정제를 찬성하는 측은 병역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합리적 보상이 필요하며 병사 가운데 80% 이상이 대학 재학생임을 감안할 때 필요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군과 대학에서의 학습 성격이 확연히 달라 실효성이 없고 중고교만 졸업하고 입대한 장병이나 장애인과 여성 등에게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군 당국이 군 복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군 가산점제와 마찬가지로 형평성에 어긋나고 원칙에 반하고 실효성도 없는 대책이 또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군 복무와 학점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군 복무경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학이 추구하는 바와 군 복무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3학점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하고 강의하고 과제를 하고 복습하고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지식의 상호작용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군 복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도 강의실 밖에서의 실습이나 산업체 근무 등을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 스스로 그런 경험이 학점과 ‘등가성’이 있다고 개별적으로 판단해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일률적으로 군 복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해야 한다면 대학의 자율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설사 대학들이 군 당국의 ‘제안’에 자발적으로 응한다고 해도 학점인정이 군 복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 4년제 대학의 졸업학점이 보통 120~130학점이다. 매학기 18학점씩만 수강해도 한 학기가 통으로 남을 정도인데 6학점이 군 복무로 대체된다고 한들 대단한 혜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정상 학점인정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학점인정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될 수 없다. 대졸자를 채용하는 기업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듣고 120학점을 취득한 졸업생을 선호할까, 아니면 114학점을 수강하고 6학점은 군 복무로 대체한 졸업생을 선호할까. 더욱이 대학졸업자나 고졸자에게는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군 복무 중인 대학 재학생은 78% 정도라고 하니 나머지 22%에 달하는 군 복무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책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단절문제 해소’를 도입 취지로 내세운 것만큼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살리려면 군 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군 복무 중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군 복무 중 자유시간을 활용해 원격수업을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된다. 다행히 군 복무 중 원격강좌로 학점을 이수하는 훌륭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좋은 제도의 수혜자가 대학 재학 중 입대자의 불과 2.7% (2014년 기준)뿐이라는 점에 있다. 이들에게 학업단절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면 이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원격사이버수업은 이미 보편화됐으니 일과 후 자유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동영상 시청과 예습·복습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마련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원격수업 수강이 가능해지면 21개월의 군 복무 기간 동안 12학점 정도 이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6학점을 군 복무경험으로 대체하는 것보다 더 큰 혜택이며 학업단절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면 대학 재학생이 아닌 전체 군 복무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에게 문제는 학업단절이 아니라 경력단절이다. 휴식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사회복귀에 필요한 독서·자료검색·취업교육 등 경력단절을 메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자살 등의 문제의 원인은 대개 내무반 생활에 있다. 군인들이 충분한 휴식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학업·경력단절을 메우기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군 복무 만족도도 높아지고 각종 사고 발생률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군 복무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실질적 보상이다. 군 복무 중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일과 후 자유시간을 보장받으며 사회복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가장 원칙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 틈만 나면 군 복무 학점인정제나 군가산점제 도입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이들 제도가 별다른 추가 비용도 없이 군 복무로 인한 문제를 군대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손쉬운 대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대책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처지의 군 복무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 해소 문제에 관한 한 ‘손쉬운’ 해법은 없다. 

* 출처: 서울경제신문, 2016.3.24

http://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KTVXEXE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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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학점 인정 미봉책이다

[ 아침을 열며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국방부가 군복무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대학생들에게는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보편적인 보상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공기관 취업자에게만 혜택이 한정된 군가산점제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 역시 대학생만을 위한 것이며 15%에 달하는 고졸 군복무자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대학생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인지 의문이다. 군복무로 학점을 인정받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21개월의 군복무에 대한 보상치고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일부러 학점을 더 듣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는 마당에 사실상 9학점을 면제시켜 주는 것이 과연 ‘보상’일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으로는 군가산점제에서 학점인정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서 나타난 접근방법을 지적하고 싶다. 첫번째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군복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보상은 군복무자에게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월 10만원 남짓한 현재의 군장병 월급은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은 돼야겠지만 최소한 정치권에서 이미 논의된 대로 30만~50만원 수준까지는 지체없이 인상돼야 한다. 내무반 시설 등 기본적인 병영생활의 의식주 문제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모두 돈 드는 일이다. 의무복무니까 고충이 있어도 감수하라는 식이 아니라 의무복무니까 더욱 최대한의 보상과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예산을 마련할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대안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를 군 내부에서 찾지 않고 군 외부에 떠넘기려고 하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군가산점제나 학점인정제는 공공기관이나 대학 등 군 외부에서 떠맡아야 하는 일이다. 이들 기관들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시행될 수 없는 사안이다. 예컨대 대학의 총이수학점은 대학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설정한 것이고, 수업 외의 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그 활동이 수업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군복무 경험이 과연 일정 학점 취득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대학과 사회의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군복무경험이 대학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군복무 경력을 학점이나 점수로 인정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군복무가 가치 있는 경험으로 사회의 인정을 받고, 자연스럽게 대학과 사회가 여기에 반응하는 것이 순서다.


군복무로 인한 경력단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군복무기간을 최소화하고 근무 외 휴식시간을 보장해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생이라면 원격강좌를 통해 군복무기간 동안 10학점 정도는 학점 취득이 가능하다. 고졸자들도 다양한 자기계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원격강좌를 수강하는 군장병은 1% 남짓이다. IT강국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일과 후 충분한 자기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병영문화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해 이 좋은 제도를 잘 시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까, 아니면 군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해 달라고 군 외부에 요구해야 할까?


열악한 병영현실을 그대로 놔둔 채 외부기관에 군복무를 가산점이나 학점으로 인정받게 해달라는 건 효과도 미미하지만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여성 장애인 고졸자 등과의 차별과 형평성 문제 등 불필요한 갈등까지 야기하고 있으니 더욱 문제다. 안락한 병영시설에서 좋은 상관·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세상살이도 배우고, 건전하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도 익히고, 정당한 임금을 받아 저축도 하고, 일과 후에는 취미생활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18개월 이내로 군복무를 한다면 어떨까? 군복무 보상의 열쇠는 여전히 국가와 군대가 쥐고 있다. 충분한 비용을 들일 용의도 없고 병영문화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꿀 의지도 없으면서 제시되는 모든 대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출처: 한국일보, 2014.6.10


http://www.hankookilbo.com/v/eccefc6fa4ab4ab6be2aa1114b3865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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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탄핵 심판이 소크라테스/예수 재판?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에 적합한 텍스트


대통령 대리인이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하네요 @.@ 이건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 권유'할 때 적절한 텍스트인데 말이죠.


박근혜를 소크라테스/예수와 비유하다니 참 흥미로운 논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매우 기발한' 발상이라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이 소크라테스/예수 급이냐?"는 반론으로 직행하는 것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싱겁게 논쟁이 종료되니까요.


다만 소크라테스/예수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된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들은, 탈옥을 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무고함을 설파할 기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소크라테스/예수의 '흉내'라도 내고자 한다면, 지금 아무리 억울해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겠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죽음의 길을 택했고,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졌으니까요.


'국익' 차원에서 생각해봅시다. 이미 탄핵의결이 된 상황에서 탄핵심판이 늘어져서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진다면, 국익 손실이 너무 큽니다. 만에 하나 기각이 된다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겁니다. 지지율 5%의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여 나머지 기간을 채운다고한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억울해도'(물론 과연 억울한지 의문이지만;;) 자리에서 내려오는게 맞습니다. 닉슨 대통령도 그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중도사퇴를 단행했었죠. 소크라테스나 예수가 박 대통령과 똑같은 상황이라면, 일단 사퇴함으로써 오히려 무고함을 호소했을 겁니다. 요컨대,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의 예는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를 권유할 때 활용하기에 딱 좋은 사례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으니, 대통령께서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지금 사퇴하셔야 합니다"라고 눈몰로 호소할 때 말이죠.


또 한 가지, 대중민주주의의 위험과 사법통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대통령 변호인을 맡았다면 당연히 주장해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국민 다수가 원해도 헌재가 기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이죠. 그런데 이런 논법을 구사하려면, 소크라테스/예수 재판보다는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한 문헌들을 참고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토크빌의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정치적 문제가 결국 사법적 판단에 의해 해결된다”는 말을 원용하며, 미국 건국 초기에게 헌법을 셋팅할 때 벌어진 논쟁들을 소개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거라는거죠.


아무튼 애꿎은 소크라테스/예수를 원용하여 박근혜 탄핵 반대 근거를 내세우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의 예는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를 권유할 때 활용하기에 딱 좋은 사례입니다!


* 소크라테스 재판 관련하여,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여 잘못 인용되는 경우도 많죠. 실제로 '악법도 법이다'를 명시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베르그봄(Karl Magnus Bergbohm) 입니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소크라테스 재판 역시 '악법준수론'이라고 보기에는 복잡한 텍스트인데, 항상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고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베르그봄을 잘 모르거나, 소크라테스가 베르그봄보다 훨씬 유명하니까 '권위에 호소'하기에 좋기 때문이겠지만요.


* 참고자료

박홍규,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 필맥, 2005

권창은, 강정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5

박원순, 세기의 재판 - 역사를 움직인 10번의 결정적 순간, 한겨레출판, 2016 (1장이 소크라테스 재판, 2장이 예수 재판)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 한길사, 2002.

로버트 달,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16 (최장집의 한국어판 해설도 굿)

조지형, 미국헌법의 탄생, 서해문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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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혐오범죄, 대통령의 입장은

한국일보, 2014.12.16

결국 ‘황산테러’까지 등장했다. 종북세력에 대한 증오가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여기서 ‘혐오범죄’라는 개념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데 유용하다. ‘혐오범죄’(hate crime)란 새로운 범죄유형이라기보다는 어떤 집단에 대한 증오나 편견에 의해 살인, 강간, 폭행, 재물손괴 등 기존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혐오범죄를 ‘편견에 동기화된 범죄’(bias-motivated crime)라고 부르기도 한다. 혐오범죄는 기본적으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실제로 차별사유로 거론되는 인종, 민족, 사회적 지위, 성적 지향, 종교, 장애인 등은 그대로 혐오범죄의 근거가 된다.

특정한 차별적 속성을 가진 집단의 불특정 다수가 범죄대상이 되기 때문에 혐오범죄는 단 한 건만으로도 집단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심을 야기하곤 한다. 증오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잔혹한 범죄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증오나 편견이 사회 전반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도 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혐오범죄의 피해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확장성이 매우 크다. 서구국가들이 일찌감치 혐오범죄에 엄중하게 대처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혐오범죄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주자ㆍ외국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커지고 있음이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물리적 폭력이 현실화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반동성애 시위 현장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동성애 당사자들을 직접 지목해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서구에서 혐오범죄는 주로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에 근거하고 있지만,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한국사회에서는 이념·사상적 차이에 따른 증오와 편견이 특별히 문제가 돼 왔다. 실제로 정치적 반대파들을 ‘종북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는 것은 아주 유용한 공격수단이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통합진보당 조직 사건과 위헌정당해산심판 등으로 압박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부 보수세력들이 ‘종북세력 척결’을 부르짖고 있다. 언론이 이를 조장하거나 부추기기도 한다. 기세등등해진 일부 세력들은 아예 농성장을 직접 철거한다고 행동에 나서거나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기도 한다.

‘황산테러’ 역시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황산테러’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가해자를 ‘열사’로 지칭하며 모금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편견이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가고,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면서 다시 증오와 편견이 강화되고 고착화되는 ‘혐오범죄’의 일반적인 확대ㆍ발전 경로와 매우 흡사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증오와 편견을 낳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체계적인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힌 증오와 편견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장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먼저, 혐오범죄처벌법이 필요하다. 혐오범죄를 가중처벌함으로써 혐오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고립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황산테러’를 어설프게 정당화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들과 철저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황산테러에 대한 입장’을 철저하게 따져 묻고,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는 엄중한 정치적ㆍ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황산테러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 채 하며, 오로지 ‘종북’ 문제만을 언급한 엊그제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동안의 공안대책을 반성하면서 폭력에 대한 불관용 입장을 피력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원인제공자를 탓하고 나선 셈이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야 할 대상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4f55539e2c794e4fb1ebc4329339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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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반응? 아니, 모두의 문제

강남역 사건, 법적 혐오범죄로 단언하기 어렵지만 ‘여성혐오’ 공론화는 성차별 사회의 필연적 결과


한겨레21, 제1114호, 2016.6.6


링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1808.html



서울의 번화가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범행 동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여성들은 곧바로 ‘나의 문제’라며 ‘집단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 근처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가 붙었고, 온라인에서도 그 열기가 이어졌다. 다들 집에서 나오기조차 무섭다고 했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삼삼오오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둘러앉아 그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상적 조롱과 비하, 노골적 차별과 적대, 그리고 크고 작은 폭력까지 그동안 공론화되지 못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있는 침묵의 소수자가 아니었다.


이것은 지난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벌어진 상황이지만, 소수자에 대한 어떤 상징적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수자 집단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건 발생 초기 누군가 이것을 ‘여성혐오범죄’라고 하면서 이 사건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심지어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아직 대한민국에는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여성혐오, 잠재적 가해자 등의 말이 불편했던 일부 남성들의 역공이 시작되었다. 있지도 않은 ‘여성혐오범죄’를 빌미로 쓸데없는 대립과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며 억지주장을 중단하라고 나선 것이다.



‘여성혐오범죄’ 맞다 vs 아니다


혐오범죄의 개념부터 살펴봐야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혐오범죄(Hate Crime)는 ‘편견의 동기’(Bias Motive)를 가지고 폭행, 성폭력, 살인 등 기존 범죄를 행하는 것이다. 이때 편견은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 차별, 적대 등을 말한다. 편견에 근거한 범죄가 비난가능성이 더 높고 해악도 더 크기 때문에 가중처벌하는 것이 혐오범죄법의 취지다.


그런데 법치국가에서 형벌의 가중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범행의 ‘주된’ 동기가 편견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을 입증할 만한 범행 전후의 정황이 있어야 하다. 이러한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는 한 법적 혐오범죄는 성립할 수 없다. 경찰이 혐오범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자신 있게 ‘혐오범죄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 보도된 것만 가지고 주된 범행 동기가 여성혐오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여성혐오범죄 규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담론 형성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남역 사건을 두고, 우리가 ‘여성혐오’를 이야기할 수 없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편견 동기가 지배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든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여전히 이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여성혐오범죄 혐의를 가해자에게 귀속시킬 수 없다고 해도, 범행이 여성혐오와 관련 있는 한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혐오범죄법이 실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경찰이 범죄 성격을 정했다고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경찰은 “(여성혐오범죄가) 처음 접해본 용어라 정확한 입장 표명은 어렵다”(서초경찰서 형사과장, 2016년 5월26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래도 여전히 경찰학적·형사법적으로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게 무리이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여성혐오‘적’ 범죄, 여성혐오와 ‘관련 있는’ 범죄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언어의 ‘전유’를 중시하는 것도 타당하지만, 불필요한 논쟁과 대립을 피해서 진짜 핵심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에 무리하게 ‘여성혐오범죄’라고 규정한 것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거꾸로 그렇게 규정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론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혐오’ 용어의 의미


강신명 경찰청장은 수사결과 발표 뒤 “대한민국에는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언해 불필요한 ‘혐오범죄’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어떤 말로 이 사건을 규정하건 수많은 여성들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공포와 분노의 본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가 속한 집단 전체에 가해진 충격과 공포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말로 정확하게 표현되었으며, 여성혐오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의제화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보여주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반응은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차별받고 억압받아왔으며, ‘소수자로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혐오범죄의 원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차별’이다. 한국의 여성혐오범죄에서는 그것이 ‘여성혐오’로 담론화되었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편견, 무시, 비하, 멸시, 조롱 등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차별하는 모든 것을 통칭한다. 차별적 의식구조에서 발현되는 행태들의 논리는 유치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이 통념이 되고 이데올로기화하면 단단한 ‘사상적 배경’이 된다.(<인종차별의 역사>,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이것이 남성들에게 은밀한 형태로 산재해 있는 여러 의식을 ‘여성혐오’로 개념화할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남역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한 하나의 비극적 ‘결과’이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혐오범죄는 공동체에 만연한 편견의 폭력적 발현”(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보고서)이다. 혐오와 차별이 있는 곳에서는 혐오범죄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곳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이주자 차별과 적대가 있는 곳에서는 이주자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혐오, 차별, 혐오범죄는 하나의 메커니즘에서 작동한다. 유럽에서 혐오표현을 ‘표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금지한 이유는 바로 혐오의 의식이 표현되는 순간 언제든지 구체적 ‘행위’(차별과 폭력)로 나아갈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쯤에서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며 이 사건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 사회가 정말 ‘진공상태’였다면, 가해자가 굳이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굳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을까?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 규정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그 개념은 포기한다고 치자. 그럼,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보여준 반응의 의미를 과소평가해도 될까? 여성들이 호소하는 일상적 혐오와 차별의 문제들이 언제든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면,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윤리적·시민적 책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비유하자면, 우리는 대형 화산 폭발 사고로 인해 우리 땅 밑에 거대한 용암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그 용암 제거에 나서야 한다. 용암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화산 분출만 막아봤자 별 소용 없다. 용암은 극단적 형태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인식 기저에 있는 여성혐오 역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는 성적 대상화, 성적 괴롭힘(성희롱), 혐오표현, 고용·서비스·교육 등에서의 차별, 스토킹, 데이트 폭력, 폭행, 성폭행,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 강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그 자체로 미봉책이 되기 십상이지만, 설사 일부 효과가 있다 해도 일상의 크고 작은 다른 위험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 해결 환상 버려야


2014년 서울시가 동성애자 등의 인권보호 내용을 담은 인권헌장 제정 인권위원회를 열자 동성애 반대 시위가 강하게 벌어졌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혐오범죄‘법’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혐오범죄법은 처벌되지 않던 행위를 새롭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 범죄가 편견을 동기로 행해진 경우에 가중처벌하는 법일 뿐이다. 어차피 처벌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다만 그 형벌의 강도만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처벌 강도의 상향 조정은 범죄 예방에 직접적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혐오범죄법을 도입한 것은 일종의 상징적 조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혐오범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해 중요한 사회의제로 다루겠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 의지가 자연스럽게 혐오범죄법 제정으로 귀결된다면 모를까, 혐오범죄법 제정 자체를 놓고 다투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거꾸로, 어떤 의지가 분명하다면 굳이 그런 ‘상징’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의지를 가지고 여성혐오를 일소할 수 있는 여러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한다면, 혐오범죄법 없이도 얼마든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면 일단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가 당신들의 편’임을 확인시켜줘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과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섣부른 대책을 내놓거나, 여성혐오범죄라는 점을 애써 부정하는 일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물론 입법적 조치가 가진 위력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위력으로 따지자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욱 우선적 과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혐오와 차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더 분명한 의지 표명이자, 혐오와 차별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는 기제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여성혐오범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서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모든 소수자의 문제다. 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른 소수자로 쉽게 옮아간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그 위기 탈출을 위해, 소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혐오’가 작동하는 전형적 메커니즘이다. 이때 선택되는 소수자는 여성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잔인한 언어폭력을 목도해야 했다. 인터넷에서는 ‘다문화반대론자’들이 이주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게시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는 더욱 노골화되어 성소수자 반대를 표방하는 정당이 버젓이 공직선거에 출마하는가 하면, 성소수자를 겨냥해 면전에서 악다구니를 퍼붓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신질환범죄라는 경찰 발표가 나오자, ‘정신질환자를 모두 감금하라’는 게시글이 베스트에 올랐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면, 지금 당장 ‘혐오범죄’가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주대낮에 오로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주자라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하는 비극적 사태는 이제 ‘임박한’ 현실이 된 것이다.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사건 하나 가지고 과민반응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한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회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차별과 혐오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게 이미 십수 년 전 우리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던 나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교훈이 혐오와 차별에 대한 단호한 법적·사회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여유를 부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혐오범죄보다 증오범죄가 혐오의 격정적 상태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나, 강남역 사건 이후 혐오범죄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관계로 편의상 혐오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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