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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_comments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by transproms 2013. 11. 21.

흔히, 아크로폴리스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이란 의미이며, 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종교축제가 열리던 신성한 곳이죠. 서양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서울시청앞 광장이 한국의 ‘아크로폴리스’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 서울광장이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언덕이 되었다고요?


"(아크로폴리스 직원 파업으로 아크로폴리스 정문이 봉쇄되자) 그리스의 주수입원이 관광업인데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번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주의의 상징이라서 파업에 강력히 대응한 것은 아닐겁니다.


"신(新)아크로폴리스 -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 (동아일보) 

-> 민주시민 강좌가 아니라, 서양문명사 강좌나 그리스 신화 강좌라면 적당한 제목이었을 듯 하네요.


그런 점에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엉뚱한 작명입니다. 실제로 가보면 높은 곳도 아니고, 신전도 없고,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왔다면 더더욱 오류겠죠. 하지만 신문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네요..;;


"서울대에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있다. 서울대 대학본부와 도서관 사이에 있는 이곳은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자연스럽게 재학생들의 집회 장소로 자리잡았다. 고대 그리스 시대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졌던, 교류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스포츠서울) 


"그리스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온 이 광장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재야단체 집회 등 굵직한 시국 관련 행사의 주무대였다." (한국일보)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면, 아크로폴리스보다는,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이나 공공활동의 중심지이자, 토론의 장이고 시장구실도 했던 '아고라'가 어울립니다.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사도바울이 논쟁하던 곳도 바로 아고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터젯의 저잣거리 구실을 하는 '다음 아고라'나 파주 헤이리의 정치박물관 '아고라'는 작명센스가 괜찮았던 겁니다 ㅎㅎ


실제 사진을 보시죠. 




아크로폴리스는 이렇게 도시 한 가운데에 솟아 높은 언덕입니다. 평평한 언덕 위에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습니다. 고대그리스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거기에 신전을 세웠는데, 폴리스 중 하나인 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에 아테니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셨습니다. 좁은 의미의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뜻합니다. 여하튼 상식적으로도 저 높은 곳에 기어올라가서 무슨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겠어요...^^;;


아래 사진이 파르테논 신전을 가까이서 본 것입니다.




유네스코의 상징도 파르테논 신전에서 따 왔죠. 가까이서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건축물을 당시에 지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건축물에 얽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면, 이건 거의 '불가사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상단의 장식물이 파괴되어 있는데, 영국에서 뜯어간 겁니다.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아고라'는 아래 사진처럼 이렇게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장면입니다.




시장바닥이었으니 신전 같은 멋진 건축물이 없는 것은 당연하죠. 여기서 아테네인들은 토론도 하고 시장도 열고, 공공시설도 있던 곳이죠.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바로 이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아고라에 내려가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흔적만 대충 남아 있습니다. 



2010년 제가 그리스 아고라를 직접 방문했었는데, 기원전 5세기 때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현혹시키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저러다가 사형을 당했다는 ㅠㅠ (*사진 위쪽의 언덕이 아크로폴리스고요. 파르테논 신전이 아주 작게 보입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