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과연 공정한(정의로운) 제도인가?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에 대하여 



지난 주에 썼던 글에 이어서 씁니다. 이게 마지막 글입니다. 사실 논문을 쓰려고 준비했던 주제인데, 아무래도 논문 수준이 되려면 좀 더 이론적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고 자료도 더 수집해야 해서, 언제 쓸 수 있을지 기약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단상이라도 여기에 끄적거려 놓습니다.

 

먼저 사법시험은 공정한 제도냐? 일단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공정한 제도라고 봅니다. 물론 최근에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쉽지 않은 시험이 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만... 제가 볼 때 그런 경향이 일부 있다고 해도, 여전히 공정성 면에서는 매우 우수한 방식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공정하다는 것은 각종 차별적 요소들, 소득, 성별, 학력, 학벌, 출신지역 등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서는 그 성적이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라, 검사, 판사 임용은 물론, 사기업이나 로펌에서조차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으니, 사회 전반에서 실력대로라는 목표를 충족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합니다.

 

*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을 배제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즉 실력대로라는 말에 표상하는 한국의 능력주의’(meritocracy)가 다른 차별문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만, 일단 이 논점은 배제하겠습니다. 또한 사법시험이 과연 실력을 평가하는 정확한 도구인지에 대한 의심도 접어 놓습니다. 저는 주위에서 출중한 법학실력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에 연달아 낙방하는 여러 동기 선후배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이 과연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가? 변호사로서의 역량이 부족한가? 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지독히 시험운이 없는 경우도 있고, 또 단 번에 승부를 겨루는 시험이라는 평가방식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다만, 일정한 경향 시험 잘 본 사람이 대체로 실력도 좋다 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법시험 1등한 사람이 5등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거나, 1000등으로 합격한 사람이 1001등으로 불합격한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1등한 사람이 불합격한 사람들보다 실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재밌는 실험을 하나 제안해 보고 싶어요. 과거 사법시험 2차 답안지를 채점했던 채점위원에게 다시 채점해 보라고 해보는 거에요. 과연 얼마나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제 추측으로는 유사하게 나오긴 하겠지만, 당락을 뒤엎을 정도의 오차도 꽤 많을 겁니다. 60점 짜리 답안지에 38(과락)을 다시 부여하진 않겠지만, 58, 59점을 부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죠. 그런 미세한 차이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한다면 과연 이 채점이 공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보려는 것이죠. 여튼 여기서 이런 능력주의 문제는 논점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법시험은 실력대로라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어 유용한 제도다는 점을 유보 없이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반면, 법조인이 되는 관문인 로스쿨 입시는 사법시험과 매우 다릅니다. 학점, LEET, 영어성적, 서류전형(자기소개서), 면접이 이른바 5대 요소입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평가에서는 평가자의 주관과 재량이 개입된다는 점입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재량이 공정한 방향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학교별로 특유의 전통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량이 발휘되기도 하거든요. 서열이 분명한 영미 명문대학의 입학사정에서는 입학생의 인적 구성을 사실상 조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조정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정량지표에 따라 단순히 줄을 세워가지고는 도저히 그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이 기준을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입시부정이 되지만, 영미권 대학에서는 이것을 대학의 재량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학은 사회적 정의에 반하지 않는 한, 자신이 뽑고 싶은 사람을 (심지어 정량지표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일례로 미국에서 랭킹 20위 쯤 되는 대학에 떨어졌는데, 하버드나 예일에 합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입시부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죠. 그냥 그건 합리적으로 결정된 대학의 입시방침이라고 보는 겁니다. 어느 학교를 가건 그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추후에 역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측면도 있고요 (*실제로 미국의 대법관이나 노벨경제학 수상자 등의 출신학교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출신 학부가 정말 다양합니다. 반면 (전문)대학원은 거의 예외 없이 명문대고요. 무식하게 정리하면, 어떤 대학을 졸업하건 명문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만회가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하버드 로스쿨에서 171개 대학 출신이 합격한다는 얘기를 일전에 말씀드린 겁니다). 또한 학교 서열이 있긴 하지만, 한국보다는 다소 느슨하다는 점도 있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건, 부당한 차별적 요소들이 작동하지 않았을거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는 것이죠. 즉 자신이 불합격했어도 그건 그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에 자기가 부합하지 못했을 뿐이지, 대학이 나를 사회적 신분이 낮아서, 여자라서, 유색인종이어서,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회, 정치, 문화적 이유에서 대학의 입시정책을 사회가 승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대학의 사명과 관련한 챕터에 이런 미국식 사고가 잘 드러나 있죠)

 

그러니까, 영미권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과 유사한 우리의 로스쿨식 선발방식이 한국사회에서 무리 없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서도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준비가 미처 안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만 해도 제가 지도한 학생이 어떤 로스쿨에 불합격한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전국의 어느 학생보다도 우수한 정량수치를 가지고 있고 아주 훌륭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 정말 제 이름을 걸고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있는 그런 학생인데, 로스쿨의 입시에서는 불합격을 하는 겁니다. 면접 비중이 들어가는 2차에서 떨어졌다면 면접에서 실수를 했을거라고 자위하면 됩니다 (사실 그 학생의 역량상 면접을 못봤을리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사실상 정량수치로 판가름이 나는 1차에서 불합격을 하면 정말 납득할 수가 없어집니다. 그 학교에 찾아가서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떨어뜨린거냐고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 같이 로스쿨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소개서(서류전형)에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런 신뢰가 없으면 제가 로스쿨 준비반 지도교수를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일반인이라면 단박에 무언가 부당한 요소들이 개입했을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학벌, 성별, 연령, 외모 등등 우리가 그동안 근절하려고 그토록 싸워왔던, 그리고 사법시험제도에서는 아주 손쉽게 배제할 수 있었던 차별적 요소들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자기 부모나 친인적 친척이 사회유력인사라는 사실을 자기소개서에 적어낸다고 합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은, 그런 것이 입시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는 학생들이 자소서에 부모님이 누구신지를 적으면 도움이 될까요?”라고 문의하면, “그런 것을 적어내는 것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는 교수님들이 더 많을 것이니 적지 말라고 진지하게 조언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과연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냐는 겁니다. 올해부터는 로스쿨 자소서에 '부모직업'을 못쓰게 하는 정책이 실시된다고 하니, 아마 그동안 이 문제가 꽤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실제 영향을 주건 안주건 상관 없이 말이죠.

 

여하튼 이 모든 문제들은 그런 요소들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사법시험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입니다. 고시반 지도교수를 할 때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만 받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얘기해줄 수 있었지만, 로스쿨 준비반 지도교수를 하면서는, "경우에 따라서 노력대로 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현실이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고 입시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로 입시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입시제도에서 발휘되는 여러 가지 주관적 요소를 대학의 재량'으로서 승인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학입시도 수시전형 등이 그런 편인데, 제가 종종 친구들한테 요즘 대학의 변화된 입시전형을 얘기하면, "말도 안된다. 그래 가지고 공정성이 보장되겠냐"는 식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아직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일 수도 있고,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에 검사, 판사, 주요 로펌에서까지 사법시험 성적 없이 서류와 면접으로 선발하다 보니, 입시에서 뿐만 아니라 취업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계속 터져 나옵니다. 저는 이미 이 점을 예견하여(!) “로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려고 관련 논문을 두 편이나 썼습니다. 로펌과 같은 사회적 영향이 큰 집단은 취업의 공정성에도 강력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불행히도 사회에 전혀 방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현실은 여전합니다판검사 임용방식도 단순히 '실력대로'를 넘어서야 한다고 틈만 나면 얘기했지만, 뭐 제 말이 영향력이 있을리가 없죠 ^^;;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타파할 노력조차 잘 안보인다는 겁니다.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은 사법시험 시대의 공정성과는 다른 지점에 놓여야 합니다.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공정성이 아니라, 각종 차별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제도적인 개선과 소수자를 우대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떤 자구노력을 하고 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겠다고 나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로스쿨 입시가 사회적으로 공정하다는 것을 승인받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이 나오는 것에는 그동안 로스쿨이 자초한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저번에 하버드 로스쿨이 입학생의 인적 구성을 홈페이지에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점을 소개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버드에선 우리는 이렇게 뽑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고 그 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로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유수로펌들은 변호사들의 인적 구성을 사회적 책임보고서에 담아 자발적으로 공개합니다. 왜 해외 유수 로펌들은 우리는 신규변호사 중 성소수자 비율이 **%라는 사실까지 공개하고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제가 최근 논문 두 편에서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서울대 로스쿨 정상조 학장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교수들도 사회적 약자, 지방대 학생들을 많이 뽑고 싶은데 지원자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뽑고 싶어도 뽑지를 못하고 있다. 이번에 취약계층 신입생 9명을 선발했다. 특히 새터민 학생 두 명이 입학했는데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하는 사랑샘재단에서 생활비 50만원을 포함한 희망 장학금을 받는다. 현재 15명이 희망장학금을 지급받고 있다." (링크)

 

서울대 로스쿨에서 이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입니다. 일부 로스쿨과 로펌에서는 이미 블라인딩 면접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역균형채용을 실시하는 로펌도 있습니다. 다 같은 맥락입니다.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이 무엇인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확하게 읽고 있는 징표로서 유의미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서울대 로스쿨에 사회적 약자, 지방대 학생 지원자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놔두면 "뽑고 싶어도 뽑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 될거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현재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겁니다. 예컨대, 뽑고 싶다는 사회적 약자와 지방대생에 대한 쿼터제를 둬서, 일정 비율에 미달하면 추가모집을 해서라도 뽑겠다는 식으로 적극 나서지 않으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렇게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로스쿨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로펌들도 '공정한 채용정책'을 놓고 새로운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저는 여건만 성숙한다면 고시제도보다는 로스쿨제도가 훨씬 더 좋은 제도라고 확신합니다 (외국과 비교하는 거 별로 안좋아하지만, OECD국가 중 도대체 '고시제도'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나라가 어딨냐고요? ㅠ 우린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고집할 거냐고요? ㅠ) 하지만 현재까지 로스쿨제도가 고시보다 못한 측면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법시험시대의 공정성과는 다른 로스쿨시대의 공정성이 승인받고 잇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이 사회에서 연착륙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신뢰를 쌓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아마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 용도폐기된 사법시험을 존치함으로써 문제를 풀겠다는 것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법시험만의 공정성이 순기능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법시험만의 고유한 문제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요.

 

다만 어느 쪽 입장에 서건 사실에 기반해서 유의미한 논점을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저소득층 희망사다리같은 근거없는 주장 말고, 지금 지적한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이 더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로스쿨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공정성 문제에 대해 자신있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적, 실천적인 대안을 진지하게 마련하고 있는가? 그렇게 체제내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면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서라도 보완책을 만들고 로스쿨을 자극하지 않으면 풀릴 수 없는 문제인가? 저는 이런 논점으로 좀 더 활발한 논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한말씀 더 덧붙이자면, 위에서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로스쿨 관계자들의 답변은 대개 "우리는 매년 100명의 사회적 소수자를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키고 있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왜 이러한 대답만으로는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불충분한 것인지를 설명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이 나름의 공정성으로 사회통합적 기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은 나름대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게 하는데 매우 훌륭한 기능을 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시체제를 고수해야 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법시험시대의 공정성을 대체하는 로스쿨의 새로운 공정성을 사회적으로 승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로스쿨체제는 사법시험과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공정성으로 사회의 승인을 받고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 친절한 세 줄 요약

사법시험 존치론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은 유보적이지만,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은 사법시대의 공정성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우리 사회는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것이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을 받게된 이유이다.

- 지금처럼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을 승인받기 위한 노력에 무심하다면, 사법시험 존치라는 파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쓴 블로그의 글은 이미 제가 발표한 로펌의 사회적 책임(공정성)에 대한 논문들에 대한 속편, "로스쿨시대의 공정성과 로스쿨의 사회적 책임"을 쓰기 위한 단상입니다.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법철학적 이론틀을 가지고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블로그의 글은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쉽게 풀어 써 본 것입니다. 또한, 로스쿨시대의 공정성은 로스쿨뿐만 아니라 법조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혁신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로스쿨, 로펌, 법원, 검찰의 공동노력이 절실한 것이죠. 법원, 검찰의 책임은 너무 자명한 것이라 굳이 논문으로 쓸 내용은 아니고, 왜 사기업인 로펌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이건 이미 썼음), 왜 사립대학인 로스쿨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이걸 쓰려고 함)는 나름 '논문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도 반향이 없어서, 이미 쓴 논문의 링크라도 걸어 둡니다 ㅎㅎㅎ


홍성수,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시론”, 『법과사회』, 제43호, 2012, 297-328쪽.

http://transproms.tistory.com/92


홍성수, "로펌의 성장과 변호사윤리의 변화: 개인윤리에서 조직윤리로, 공익활동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법과사회, 41호, 2011, 145-172쪽.

http://transproms.tistory.co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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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원 2014.05.12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앞의 포스팅에서 이번에는 '학벌차별'과 '연령차별'에 대해서 논의하실거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은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참고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의 인터뷰에서 희망을 얻고 계시는데 찬물을 끼얻는 것같아 죄송하지만 2013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합격자 중에서 30세 이상은 0명이었습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309258). 학벌차별에 대해서는 교수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2. 학벌과 연령으로 차별하면 한번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을 실패하면 다음기회는 없습니다. 앞의 포스팅에서 말씀하셨다시피 법학전문대학원에 실패하고 재수, 삼수 해봐야 학벌도 그대로, 학점도 그대로, 법학적성시험 성적도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자기소개서는 다른 길을 찾아 경력 좀 쌓고 오면 만회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만 이때는 나이에 걸리기 때문에 이또한 법학전문대학원진학에 재도전 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여 법조인으로 만든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설립취지에도 반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이 사법시험과 가장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 중 하나입니다. 사법시험 합격수기들 중에는 매년 최고령 합격기가 나오는데 물론 이들 중에는 고시에만 매달리다가 나이를 먹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사법시험에 재도전하거나, 전혀 사법시험과 무관하게 살다가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사법시험에서 학벌은 물론이고 나이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3. 이렇게 사법시험에서는 돈은 물론이고 학벌 학점 연령을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고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잠시 접었다가도 언제든 돌아오면 받아주는 그것, 전혀 다른 길을 걷다가도 한번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걸어볼 수 있는 길, 그것이 바로 사법시험인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전형이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된다면, 법조계에서는 7전8기의 드라마 따위는 옛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변호사가 되고싶다면 형편이 어려워 또는 다른 어떤 사정이 있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졸자에게도, 학창시절 도전과 열정으로 학점을 날려먹은 자에게도, 제2의 인생을 꿈꾸는 50대에게도 그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transproms 2014.05.31 0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2.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현재의' 로스쿨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법시험이 학벌이나 나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닙니다. 직장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사법시험에 도전하려면, 생업을 중단하고 몇년 동안 시험에 뛰어 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장벽이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로스쿨 제도가 잘 운영되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훨씬 더 좋은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학벌 문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전체적으로 보면, 학부 출신 다양성은 사법시험보다 로스쿨이 '현재'에도 더 잘 확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른바 '상위권 로스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봅니다. 바로 그 점이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지. '현재' 기준으로도 로스쿨의 학부 다양성은 사법시험에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법시험에서 학벌과 나이를 문제삼지 않지만, 실제로 학벌과 나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로스쿨제도입니다. '현재' 로스쿨이 이 점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서 문제인 것이죠.

      3. 마지막 말씀은 잘 이해가 안가네요. 7전8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낙오해야 만 하는 상황을 왜 그대로 두자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으로 고시에서의 '드라마'는 낙오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만들어지는 거 아닌지요? 그런 문제를 간과하면서,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잘 안갑니다.

  2. 김재원 2015.03.10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사법시험에 도전하려면 생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장벽이 있다고 하셨는데, 2014년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가 현직 경찰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공익근무요원, 공중보건의 등이 사법시험에 합격사례도 있습니다. 즉 사법시험은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도전이 가능한 제도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이라도 열린 제도와 애초에 불가능한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출석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출석을 전제하지 않고는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제도취지 달성이 어려우므로, 그리고 방송통신대학이나 야간대학원도 없으므로) 그야말로 생업을 포기해야만 도전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최소한 휴직이라도 해야 하는데 3년이나 휴직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휴직은 사법시험 도전을 위해서도 고려될 수 있으니 법학전문대학원의 장점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2. 학벌 문제는 사법시험은 한 해 합격자의 최대 인원이 1000명이 고작이었고, 법학전문대학원은 한 해에 2000명씩 뽑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학부출신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시대에 그 합격자의 학부 다양성이 늘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만약 사법시험을 통해 1500명의 법조인을 배출할 경우 학부 다양성(또는 고졸출신, 대학재학 중 합격자=고졸)이 훨씬 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서울변호사회장에 당선된 김한규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김 변호사의 모교인 가천대에서는 판사는 나왔지만 로스쿨 입학생은 없다고 합니다.

    3.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돈이 되거나 권력에 가까운 자격, 직업은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당연히 경쟁에서의 패배자가 생깁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비단 사법시험에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대학에 떨어지는 사람, 취업에 실패하는 사람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서도 매년 70~80%의 응시자가 경쟁에서 져서 패배자가 됩니다. 결국 7전8기의 드라마는 경쟁사회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은 일반인들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물론 사법시험의 경우 사회적으로 엘리트로 분류되는 이들이 사회에 대한 기여없이 수년의 세월을 수험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최소화 하거나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분야로 유도하는 방법은 경쟁을 공정하게 하는 가운데에서 다른 자격, 직업군의 장점을 높이는 쪽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경제력 등 경쟁요소를 개인적 역량보다는 사회적 신분으로 삼아 법조계 진입희망자를 다른 분야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변호사 수의 급증시키는 정책(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가 대거 배출되었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법시험으로도 달성 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은 법조직역에 대한 메리트가 급감하게 하여 인재들이 법조계가 아닌 다른 분야로 가게 한 정책으로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수 급증에 대한 부작용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 transproms 2015.03.10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극히 드문 예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휴학이나 생업의 중단 없이 입학이 가능한 것이 로스쿨제도의 분명한 장점이고 사시제도와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저는 사법시험 존치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로스쿨의 장점을 애써 무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2.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일부 상위권 로스쿨의 학벌 편중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지극히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전체 로스쿨을 놓고 보면 다양성이 증대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은 2013년 참여연대의 로스쿨 점검 보고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3.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좀 산다는 나라 중에, 한국의 사시제도와 같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요. 그 정당성을 옹호하려면, 차라리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저는 차라리 그런식의 정당화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4. 제도 자체를 건드리지 말고, 다른 자격/직업군의 장점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고, 그런 방향도 적극 추진해야겠지요. 근데 그게 너무 힘든 일이니까, 제도 자체에도 손을 댈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다만 현실의 로스쿨제도가 그런 기능을 제도로 수행하지 못하도 있다는 지적은 저도 동의합니다.

    • 지나가던 이 2015.05.2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천대(경원대) 출신 로스쿨생 보여드립니다.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01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53

      경원대 개교 1982년. 33년간 사시합격자 총 5명
      로스쿨 개교 7년 현재 확인자만 3명(더 있을 것으로 추정)

  3. 김재원 2015.03.11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참여연대의 자료는 1000명 중 200명(20%)과 2000명 중 200명(10%)을 동일하게 평가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의 성과를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 후 학부의 다양성이 늘었다는 사실자체는 인정하지만,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회에 2000명이라는 사법시험의 몇 배나 많은 인원을 뽑는데서 오는 효과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즉 사법시험도 2000명 뽑으면 비슷한 수준의 학부다양성 뿐만 아니라 전문대, 고졸 출신의 법조계진입이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 경쟁이 있는 곳에 패배자가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법시험의 경우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유독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지 않는다는 특이점이 있으나, 크게 보면 외식업에 실패했다가도 다시 외식업에 도전하는 사람과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좀 사는 나라 중 일본에 신사법시험이 있습니다. 일본이 로스쿨체제라고는 하지만 예비시험의 도입과 사법연수소의 존재로 실상은 신사법시험-사법연수소 체제인 것을 교수님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좀 사는 나라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명실공히 세계 넘버 2인 중국에도 전국통일사법고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는 법조인 선발 방식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모두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같은 영미법계로 분류되는 영국과 미국도 다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비록 이들 국가 대부분이 일정학력 이상의 자들에게만 변호사자격시험 응시기회를 주고 있습니다만, 그 학력을 취득하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우리가 수용할 수 없거나(독일, 프랑스), 매우 큰 비용으로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미국).

    문득 소위 서양국가들이 사법시험제도를 경험해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다면 아마 사법시험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transproms 2015.03.11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 글쎄요. 뭐 이건 서로 근거를 뚜렷하게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더 말씀드리는게 별 의미는 없어 보이네요. 물론 숫자가 늘어나면 다양성이 증대되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고요. 마치 3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나면서 다양성이 증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한계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3. 경쟁이 있는 곳에 패배자가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어떤 체제에서도 불가피하죠. 다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걸려내냐가 문제겠죠. 외식업 종사자들의 실패를 막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로스쿨제도가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지금 한국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로스쿨제도는 그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나라 말씀을 해주셨지만, 여전히 사법시험제도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제도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이하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그 나라의 사정에 맞으면 아무리 특이해도 해야죠. 하지만 많이 특이하다면, 그 특이한 만큼 좀 더 높은 수준의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우리나라는 이러저라하게 매우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매우 특수한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논거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예비시험이나 사법시험제도가 우리 현실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예비시험 도입이나 사법시험 존치에 반대하지 않고요. 다만 그렇게 할거라면, 로스쿨 제도가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로스쿨이 로스쿨 답게 운영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준 상태에서 예비시험/사법시험 제도를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경쟁'체제가 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한 10년 정도 운영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