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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칼럼]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by transproms 2014. 4. 30.


[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서울의 영국문화원에서의 일이다. 영국인 강사는 첫 수업시간의 20분을 '안전교육'에 할애했다. 자신은 이 교실의 안전책임자이며, 유사시 수강생 전원이 건물을 빠져나갔음을 확인할 때까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수강생들과 함께 비상구를 통해 탈출해 보는 모의훈련까지 했다. 참고로, '영어' 수업이었다. 영국의 대학기숙사에 머물 때 일이다. 화재경보기가 워낙 예민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빵만 태워도 경보가 울리곤 했는데, 소방관이 출동해서 이상 없음을 확인해줄 때까지 기숙사생 전원은 무조건 기숙사 밖에 나가 대기해야 했다. 그때마다 기숙사 층마다 배치된 부사감(층장)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방마다 사정없이 문을 두드려 기숙사생들을 깨웠고, 자기 층의 학생들이 완전히 탈출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도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직접 안전책임자가 되어 볼 기회도 있었다. 대학의 시험감독관으로 일할 때다. 시험감독 지침서 중 안전에 관한 지침은 무척이나 상세했다. 지침에 따르면, 나는 시험장의 안전책임자였고 경보가 울리면 정해진 경로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수험생들을 이동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연구원이나 학생이 안전요원이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 연구실 출입을 하려면 특별허가가 필요했다. 허가 조건은 딱 한 가지, 매달 2시간씩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내용 핵심은 안전요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건물을 탈출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영국인 친구에게 슬쩍 말을 건네 봤다. "안전도 좋지만, 솔직히 너무 지나친 것 아니요?" 돌아온 답변이 놀라웠다. "우리는 1666년 런던 대화재를 기억하고 있소." 자존심 센 영국인들의 허풍을 익히 알고 있기에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나중에 런던 대화재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고 나선 충격을 받았다. 오늘날 런던에 석조건물이 즐비하게 된 것도, 건물 복도 사이에 이상하리만치 많은 문(방화문)이 설치된 것도, 사상 최초로 소방대가 창설되는 등 화재예방ㆍ진압에 관련한 각종 기술과 제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지금과 같이 유사시 상세한 매뉴얼이 작성되고 안전책임자를 훈련시키게 된 계기가 된 것도, 바로 런던 대화재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비극적인 참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았다. 씨월드화재, 서해훼리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세모유람선사고, 대구지하철화재, 대구가스폭발, 그리고 몇 달 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까지…. 하지만 이러한 참사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큰 충격은 선장과 선원들이 태연히 구조선에 탑승하는 장면이었다. 왜 살아 돌아왔느냐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선실에 승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 선장과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구명복을 입고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마지막에 바다에 뛰어들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뱃사람들이, 어떻게 수많은 승객을 두고 구명보트에 오를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일반인 수준의 책임의식조차 없어 보이는 세월호의 안전책임자들은 엄벌에 처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처벌이 전부일 수는 없다. 위험이 예상되는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책임자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려면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안전에 관한 규범과 문화가 위험이 있는 모든 곳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것이 구조화되려면 시간과 비용에 관한 사회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효율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선진기업들이나 잘 사는 나라들이 안전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유를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에게도 어떤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십수 년이 지나 누군가 "한국은 안전에 대해 왜 이렇게 유난스럽나요?"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2014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부교수)



출처: 한국일보 4월 29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404/h20140429210223243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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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영국 유학 시절 때 생각나던 이야기들을 묶어서 글을 써봤습니다. 한국의 안전불감증과 법의 역할에 대해서 수업을 할 때도 항상 들려주는 에피소드인데, 원래 정리해두었던 얘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장면1: 영국을 처음 만난 것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문화원을 다니면서 부터였습니다. 수업 첫날 맘씨 좋아 보이는 영국인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안전' 교육을 하겠다면서, 유사시 대피 통로와 안전수칙을 알려주더군요. 교사인 자기는 사고가 나면, 이 클래스의 안전책임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클래스 수강생 전원이 빌딩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저는 빌딩을 한 발짝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유사 시에는 저의 지시에 따라서 재빨리 빌딩 밖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장면2: 유학생활 초기 2년 동안에는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기숙사에서 가장 큰 고충은 화재였습니다. 일단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는 항상 화재경보기가 5초간 울립니다. 경보기가 잘 작동하는 확인하는거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 아침잠이 많은 저는 엄청 짜증났습니다. 그래도 2년 내내 매주 월요일 그 시간에는 화재경보기가 울립니다. 

장면3: 기숙사 곳곳에 있는 화재경보기가 무척 예민하게 설정이 되어 있어서, 조금만 연기가 나면 경보기가 울립니다. 경보기가 울리면 '무조건', '지체없이' 기숙사 밖으로 나가서 정해진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층마다 대학원생이 '부사감'(subwarden)으로 임명되어 있는데, 이 사람이 방마다 찾아다니면서 다 깨워서 나갑니다. 규정상 자기 층의 기숙사생이 다 빠져나갔는지 확인되기 전까지 본인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경보기가 엄청 시끄러운데 이불 뒤집어 쓰고 안나가려고 버티는 넘들이 꼭 있습니다. 문을 부셔서라도 다 깨워서 데리고 나가는 게 이들의 임무입니다. 경보기가 하도 민감해서 한 달에 1-2번은 꼭 한 밤 중에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기숙사생들을 졸린 눈을 비비고, 건물 밖으로 나섭니다. "누가 또 빵 태운거야?" 짜증도 나지만 무조건 나가야 합니다.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면서도, 소방관이 직접 와서 화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나서야, 건물에 다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꼭두 새벽에 파자마 차림의 기숙사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못다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또 하나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2년 동안 거의 매달 이렇게 건물 밖으로 탈출해야 했지만 실제로 불이 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죄다 토스트기의 빵이 탔거나, 쥐포를 구워먹다가 생긴 일이었죠.

장면4: 기숙사에서 사감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있는데.... 바로 방문을 열어 두기 위해 복도에 있는 소화기를 방문 사이에 놓아 두었을 때였습니다. 소화기는 항상 지정된 자리에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혼을 내던지.... 다른 일에는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들이 참 모질게 굴더군요. 

장면5: 시험감독관(invigilator)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시험감독 관리 지침서가 10여 쪽 정도로 되더군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유사시 시험장 관리였습니다. 기억 나는 것은 대략 이렇습니다. 1)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일단 시험지를 덮고, 중요한 소지품만 들고 빠져 나간다 2) 시험감독관은 전원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한다. 3) 수험생과 시험감독관은 지정된 장소인 **에 집결한다, 4) 집결 장소에서는 수험생 간 대화를 금지한다, 5) 소방관등 안전책임자가 별 문제가 없다고 확인해 주면 다시 시험 장소로 이동해서 남은 시험을 치룬다. 4번에서 왜 수험생간 대화를 금지하는게 특이하죠? 왜냐하면 일단 탈출은 했지만 별거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거든요. 약간의 위험만 있어도 일단 탈출하게 되어 있는거니까요. 그런데 치루던 시험을 속행하려면 시험에 대해서 수험생들이 대화를 나누면 안되는 것이죠. 일종의 커닝(치팅)이 되는 것이니까요. 진짜 불이 난거면 시험은 무효가 되는 것이고요.

장면6: 옥스퍼드에 있을 때는 제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 밤 10시 이후, 토요일 6시 이후, 그리고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닫는데, 허가받은 연구원/대학원생에 한해서는 카드를 받아서 24시간 출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매달 2시간 씩 건물안전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달에도 24시간 이용이 가능합니다. 토요일 6시 이후와 일요일에는 안전요원이 건물에 상주하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유사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육받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