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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회_UK

영국의 자문기구/위원회 제도

by transproms 2015. 6. 12.


Surveillance powers: New law needed, says terror watchdog / BBC

http://www.bbc.co.uk/news/uk-33092894


기사 내용 요약: David Cameron 영국 총리가 경찰과 정보기관의 온라인 감시를 강화하는 테러방지법들(Anti-terrorist laws)을 개정하고 싶어서 David Anderson에게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는데, 보고서 결과가 총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왔음. 참고로, 이 사안은 보수당-자민당과의 연정 때는 자민당 반대로 밀어붙이지 못한 사안이지만, 이번에 단독집권으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는데... 암초를 만난 겁니다.

 

보고서 내용은 여기 참조: https://terrorismlegislationreviewer.independent.gov.uk/

 

테러방지법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보고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제가 눈여겨본 또 다른 포인트는 영국에서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가 활용되는 방식. 영국에서는 논란이 많은 문제가 생기면, 독립위원회나 권위자/전문가에게 보고서 작성을 의뢰하곤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정부가 의뢰한 보고서의 결과가 정부의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런 위원회/전문가가 정부 눈치를 안보고 말그대로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이죠. 이번에도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은 David Anderson 변호사는 정부가 원하는대로 보고서를 작성해주지 않았죠. 당장 Article 19 같은 인권단체들이 "앤더슨 보고서의 권고를 수용하라"고 나섰고, 정부는 곤혹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보수당은 밀어 붙일 태세지만요...;;

 

지난 번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부결된 후에는 스미스 위원회(Smith Commission)가 구성되었습니다. 2014Cameron 총리는 Kelvin Smith에게 스코틀랜드 분권에 대한 검토를 의뢰한 것입니다. 자기 편 사람이 아니라, 무당파 상원의원이자,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BBC Governor를 역임한 스코트랜드의 대표적인 명망가에게 중책을 맡긴 거죠. 이 위원회의 최종 보고결과의 상당 부분은 보수당의 총선정책에 반영되었고요. 아마 이 보고서 내용 그대로 개혁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참조: https://www.smith-commission.scot/)

 

이런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은 위원회/전문가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특히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갖게 됩니다. 앤더슨도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관련 문서나 경찰, 정보기관, 검찰, 공무원, 장차관 등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접근(a very high degree of access)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법률가, 법관, 언론인, 정치인 등의 의견도 충분히 청취했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이런 위원회/전문가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자문기구이자, 사회적 협의기구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이런 위원회나 연구용역의 결과물에는 그 책임자의 이름을 명시됩니다. 테러방지법 보고서는 Anderson's Report라고 명명되었고, 스코틀랜드 분권정책 보고서에는 Smith Commission Report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렇게 책임자의 이름을 붙여서 responsibility를 부여하는 것이죠. 이 보고서의 이름은 그대로 역사에 영원히 남는거니까요.

 

영국은 의견 대립이 심하거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이런 독립 위원회/전문가를 활용하곤 합니다. 이러한 자문기구가 독립적이고 책임있게 운영되고 또 그 결과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걸 움직이는 힘은 법/제도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문화, 사회문화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물론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위원회 보고서처럼 보고서의 권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앤더슨 보고서처럼 의뢰한 당사자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각종 자문기구, 위원회, 사회협약기구, 정부용역보고서가 형식적으로야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그 권위가 존중되지도 않고요. 그런 일을 맡길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모적인 의견대립이 해소되지 못하고 허공을 멤도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영국의 정부 보고서(연구용역 보고서 포함)의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저도 관심분야에서 영국 정부보고서가 큰 도움이 된 적이 많았습니다. 관련 논점을 워낙 잘 정리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런 '월척' 하나를 잡으면 그 다음 연구가 술술술~ 풀리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