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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로스쿨·사시 출신 모두 ‘부유층 자녀’ 늘어" 기사에 대한 생각

by transproms 2015. 6. 22.

[한겨레 단독] 로스쿨·사시 출신 모두 ‘부유층 자녀’ 늘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6927.html


이재협 교수님이 이 연구를 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드디어 결과가 나온 모양. 정말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원문 전체가 공개되었으면... 암튼 제 잠정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1. 이 문제에 관련해서 나의 추론은, "로스쿨에서 사회계층이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맞는 얘기지만, 이건 사시 막판에도 이미 나타났던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계층이동 문제는 로스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이며, 설사 로스쿨 도입 없이 사시가 유지되었어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걸 입증하려면 사시/로스쿨 비교연구가 절실했는데, 이 논문이 바로 그 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내 추론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 이건 수능체제가 문제 많다고 학력고사로 회귀하면 사회계층이동 문제가 해결될까? 의 문제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련해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곤 한다. 예컨대, "내가 연수원 다닐 때는 말이야...."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사시와 로스쿨의 차이 못지 않게, 1990년대 사시와 2010년대 사시의 차이도 크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그래서 동일 시기의 양 제도를 비교하는 이런 연구가 필요했던 것.


2. 암튼, 이 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사회계층이동을 위해 사시로 회귀하자는 것은 타당한 얘기가 아니다. "로스쿨=귀족학교", "사시=계층이동 희망사다리"라는 공식도 전혀 맞지 않다. 제발 이 근거 없는 공식은 그만 사용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로스쿨제도를 유지한 채 사시로도 일부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주장"(사시 존치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사시와 로스쿨 두 제도는 사회계층이동에 있어서 각각의 장점과 약점이 있기 때문에, 두 제도가 '병존'한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사회계층이동의 측면에서는 가장 유리할 수도 있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인데, 나의 가설에 따르면, 저소득층에게는 로스쿨이 유리하고, 중하위층에는 사시가 유리하다. (참조 http://transproms.tistory.com/130) 또한, '어느 대학을 나오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로스쿨이 유리하지만, '어느 대학을 나오건 엘리트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사시가 유리하다. 

따라서 '사시체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로스쿨-사시 병존'은 충분히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우 사시 존치는 로스쿨 제도를 위협하지 않는 방향으로 셋팅되는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 조건 하에서만 말그대로 '병존'할 수 있다. 사시존치를 하려면, - 만약, 사시존치가 로스쿨을 흔들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 그 반대급부로 '로스쿨 정상화'를 보장해줘야 한다. (이와 관련한 얘기는 예전에 정리해둔 글 참조 http://transproms.tistory.com/129) 진정한 경쟁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서 원하는대로 해줘야 하며, 그렇게 해서 로스쿨은 로스쿨대로 그 장점을 극대화하고, 사시는 사시대로 그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 복잡한 얘기로 흐를까봐 생략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시보다는 예비시험이 여러모로 더 낫다고 생각한다.


3. 또한 이 논문의 결론이 "현재 로스쿨이 잘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건 곤란하다. 논문의 결론은 "사시나 로스쿨이나 별반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지 로스쿨이 더 낫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로스쿨은 사시보다 '더 나은 제도'로서 설계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로스쿨은 '사회계층이동'에 관한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도 될까말까한 문제인데, 로스쿨은 언제나 "취약계층 5% 선발'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며 이걸로 모든 책임을 다한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사회계층이동'에 관련한 로스쿨은 사시보다 훨씬 유리'할 수도 있는' 제도다. 그렇게 운영을 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4. 이 연구의 또다른 한계는 '전체 로스쿨'로만 통계를 냈다는 것이다. 이건 과거 참여연대 보고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문제다. 입학생의 '다양성 지표'는 전체 로스쿨로 놓고 보면 사시보다 오히려 우월하지만, 상위권 로스쿨만 놓고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전체 로스'쿨을 놓고보면 다양한 학부 출신을 선발한 것 같지만, '상위권 로스쿨'만 놓고 보면 전혀 아니다. 서울대의 경우, 6년 내내 150명 정원을 서울대 약 100명, 연/고대 약 30명, 나머지 특수대(경찰대, 카이스트 등), 외국대학 출신 약 20명으로 채워왔다 (참조: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00). 나머지 상위권 로스쿨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연령을 봐도 2015년 입학생 중 31세 이하가 고려대 100%, 서울대 97.4%, 성균관대 97.6%, 한양대 96.3%이다(참조: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075). 이런 현실을 두고, '전체 로스쿨 평균을 내면 다양성이 증진되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 부분은 이재협 교수님이 인터뷰를 통해 추가 연구를 한다고 밝혔다. 기대가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보자. 지방대에 다니는 학생에게 "얼마든지 서울의 상위권 로스쿨에 갈 수 있으니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을거다"라고 덕담이라도 건낼 수 있을까? 나이 서른이 넘은 한 직장인에게, "좋은 경력이 있으니 상위권 로스쿨에 지원해보라"고 조언할 수 있는가?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5. 마지막으로 이런 통계는 연구/조사하기 이전에 로스쿨과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공개를 해야 한다. 공개를 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스스로 책임있게 행동하게 된다. 공개의 힘! 하버드 로스쿨 같은 데서 매년 입학생 프로필을 상세하게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기시험 선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걸 해체하는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정말 문제다. 비단 로스쿨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경력법관 선발, 공무원 경력자 특채 등 다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