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면서 고시공부모델은 유효한가?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닌 제가 당시를 떠올려 보면 대학생들의 경제적 여건이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차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더군요. 놀랍게도 그건 ‘대학생 과외’였습니다. 대학생 과외의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 등록금이 대략 200-300만원 정도였습니다(이하 사립/인문계/1년 기준). 근데 1990년대 중반 대학생 과외는 2시간 주 2회  한 달에 30만원이 기본. 과학고 출신인 제 친구는 50만원까지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학생 내내 과외 1-2개 정도는 꾸준히 해서 용돈으로 썼고,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셨습니다. 집에서 통학할 때는 과외 하나 뛰면 넉넉하게 살 수 있었고, 하숙할 때도 과외 두 개 하면 하숙비(제 경우 23만원) 내고도 충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교 장학금'으로 버텼던 대학원생 때보다, '과외'하면서 생활했던 학부 때가 더 풍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 등록금이 700만원을 넘나듭니다. 하숙비, 책값 등 각종 물가가 대략 2-3배 정도 올랐습니다. 근데 과외는 일단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최상위권 대학생들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근데 과외비는 20-30만원 정도로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90년대만 해도 학원이 대개 대형 단과학원이어서, 대학생과외가 경쟁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학원이 워낙 발달해서 대학생 같은 아마추어가 비비고 들어갈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학원 보조교사나 초등학생 숙제 지도 정도가 그나마 자리가 좀 있는 편이고요. 그 외에 다른 알바는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죠. 시간당 6천원 짜리를 주당 20시간 해봐야 생활비 겨우 버는 정도입니다. 주당 20시간 일하면서 학업에 열중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입니다.

 

“나는 내가 용돈 벌어 고시 공부했다. 로스쿨이었다면 나는 법조인이 될 수 없었다.”라는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죠. 당시로는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고시공부는 안했습니다만, 당시 고시공부하던 제 친구들 중, 집에서 지원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대부분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신림동 가서 공부하는데 50만원 정도면 충분했고, 과외 두 개 정도 하면서 수험생활을 이어나가는데 무리가 없었죠. 과외가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대학생이 할만한 각종 노동의 값어치가 꽤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돈 벌면서 고시 공부’라는 모델이 나름 가능했던거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과외 같은 ‘고액 알바’는 구하기가 힘들고, 다른 알바도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요컨대, 저는 로스쿨 등록금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과연 사시가 존치된다고 해서 부담 없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집안 도움 없이 ‘돈 벌면서 고시공부’하는 모델은 예전보다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아주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로스쿨은 어렵지만, 사시는 해볼만한 경우란, “집에서 3-4년 정도 수험생활비(50-100만원)를 대줄 수 있는 형편”인 경우 정도입니다. 이보다 형편이 어렵다면 로스쿨에서 장학금받으면서 다니는게 나을거고, 그보다 여유가 있다면 그냥 돈 내고 로스쿨 다니는게 나을 겁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정도 형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등록금 인하와 후불제 등으로 로스쿨제도를 잘 손질하면 그게 더 낫습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를 잘 가다듬으면, 거의 모든 계층에게 접근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돈 벌면서 고시공부모델은 이제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로스쿨에 진학하기 어려운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학부 성적이 낮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비명문대 출신, 특별한 경력/성취가 없는 사람, 무슨 수단을 써도 리트 점수가 안나오는 사람

 

그런데 사실 이러한 유형도 대부분 해결가능합니다. 예컨대 비명문대 출신은 소위 SKY로스쿨 진학이 어려운게 현실이죠.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개 대학이 담합을 해서, “우리는 자교 출신은 물론 3개 대학 출신은 서로 선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 게임 끝입니다.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겁니다. 서울대 로스쿨에 가기 위해서는 서울대, 연대, 고대 학부에 진학하면 안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대학 입시에도 큰 변화를 줄겁니다. 허울 좋은 현재의 지방로스쿨 지역인재 선발제자교 출신 3분의 2이상 입학 금지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겁니다. 아예, 모든 로스쿨은 특정 학부 출신을 10% 이상 뽑을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면 어떨까요? 학부 출신이 아주 골고루 섞이겠죠. 로스쿨은 원래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인위적으로 법조인 다양성을 증진시키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모든 계층의 공정한 기회 부여는 사실 로스쿨 제도를 가다듬으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틈 없이로스쿨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시를 존치시켜야 한다? 예컨대, 학부 때 성적이 낮았던 사람도 시험으로 법조인 될 기회를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학점이 너무 낮아서, 이건 좀 혹하긴 합니다^^;;) 그게 우리 사회의 강력한 요구라면 해야지 어쩌겠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다른 포스팅(링크)에도 썼지만, 사시 존치를 저는 그렇게 큰 변수로 보진 않습니다. '시험'제도를 둘거라면 그마나 부작용이 덜한 예비시험이 낫다고 보긴 하고요. 암튼 사시든 예시든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고 현재 제기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봅니다. 설사 사시/예시가 존치된다고 해도, 로스쿨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는 별도의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겠고요.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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