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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결국, ‘사시 존치’를 지지하기 어려운 이유

by transproms 2015. 12. 11.

<결국, ‘사시 존치’를 지지하기 어려운 이유>


저는 순수하게 ‘이론적’으로는 사시가 존치되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150-200명 배출하는 사시가 존치되어 봐야, 주류는 1500명씩 배출하는 로스쿨일 수밖에 없죠. 로스쿨이 잘 정착될수록 사시 출신 못지않은 변호사를 배출할 수 있을겁니다. 사시 출신보다 젊고, 비법분야 전공학위도 하나 있고, (나이가 있다면) 출중한 경력이 있고, 로스쿨에서 3년간 교육 잘 받고 나왔다면 문제될게 없죠. (다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저런 문제가 있는데, 핵심은 ‘연수’라고 봅니다. 강의실교육 3년은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짧다고 할 수 없는데, 연수 6개월은 질적/양적으로 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독일은 교육 4-5년 + 연수 2년, 영국은 교육 2-3년 + 연수 2년. 이건 너무 긴 얘기라 일단 이 정도만;;)


로스쿨이 정상적으로 잘 돌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가 존치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로스쿨 진학이 어려운 사람에게 기회가 하나더 생기는거니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사시/연수원 운영에 필요한 비용 문제는 굳이 국민 다수가 세금을 거기에 더 쓰겠다면 써야지 어쩌겠습니까? 학부교육 황폐화야 상위 서너개 대학 인문사회계 학과들 문제일 뿐이니 지엽적인 문제라고 하고 넘어가고요. 불합격자 양산은 개인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이런저런 사회적 낭비는 한국은 인재가 넘쳐나니 괜찮다고 해 두면 됩니다. 썩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과 법률가집단이 꼭 원한다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정책이라는게 타협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거고요.


그런데 로스쿨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극구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런저런 반대근거를 대지만 사실 저는 이게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당사자 입으로는 직접 말하기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을 만나보면, 사시 출신 법조인들로부터의 온갖 차별과 괄시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걸 여러 번 들었습니다. 같은 조직 내에서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사시 출신 법조인들이 부당하게 느끼는건 그 나름이 이유가 있지만, 저는 솔직히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문에도 난거 보니, 과장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스쿨 출신들을 선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사시 출신)는 로스쿨 출신들이랑 0.5기 차이로 구분을 했죠. 기수는 그렇게 정리했지만 우리 선배도 후배도 아닌 존재죠. 우리끼리는 당연히 선후배로 호칭을 정리하지만, 로스쿨 출신들은 그냥 ‘누구누구 씨’로 부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술자리에도 개인적 인연이 있던 사람이 아니면 잘 부르지 않아요.” (사시 출신 검사 - 일요신문)


인터뷰가 조작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분은 “전문가단체가 무능하거나, 회원이익만 챙겨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경우는 봤어도, 전체 회원의 30%를 이렇게 대접하는건 첨 봤다”고 하시더군요. 상황이 이런데도, 회원들을 '대표'하는 곳에서는 ‘대화합’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200명 규모 사시 존치도 위협으로 느껴지는거죠. 시작은 미미해도, 결국 로스쿨 폐지로 나아가겠다는 ‘전략’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제3자인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동료로 대접하지 않는게 이상합니다. 상황이 이런대도 변호사단체들은 ‘대화합’을 모색하지 않습니다. 수년 내로 과반을 넘길 동료들인데 걱정이 안되는 모양입니다. (혹시라도 물밑에서 그런 노력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게 없어서 드린 말씀이니 미리 양해 구합니다) 로스쿨 개혁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사시 존치와 무관하게, 미래 동료의 절대 다수를 배출하게 될 로스쿨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시 존치만 되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말합니다. 논리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로스쿨 입시가 불투명해서 사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로스쿨 입시가 불투명하면 그걸 투명하게 바꾸는 게 우선이죠. 불공정한 제도에 의해 매년 1500명이 배출되는데, 공정한 제도로 200명이 배출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가요? 사시 존치에 들이는 관심에 반만 투자해도 좋은 쪽으로 바뀔게 많습니다. 예비시험은 안되고 오로지 사법시험만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로스쿨 교수들 중에서도 (한양대 박찬운 교수님, 영남대 양천수 교수님) 예비시험 도입은 해볼만 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공정한 기회 확대, 희망사다리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예시나 사시나 별반 차이도 없고, 부작용 면에서는 예시가 그나마 낫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로지 사시만 고집합니다. 사시 존치로 후일을 도모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사시만 고집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게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라면 오해를 불식시키면 됩니다. 로스쿨을 폐지하겠다는 전략이 아니라면, “사시 존치는 로스쿨 축소/폐지하고 전혀 관계없다”고 약속하면 됩니다. “사시가 존치되더라도 로스쿨 정원 2000명, 변시 합격자 1500명에 대한 하향조정은 절대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됩니다. 이렇게까지 약속하는게 어렵다면 (제가 봐도 좀 오버입니다;), 최소한, "법조인 배출 경로가 두 개가 되는 것일 뿐, 차별과 반목과 갈등은 없다."는 걸 좀 확인시켜 주고, 최소한 그렇다는 제스처라도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대화합 특위'를 만들어, 출신별 반목과 갈등을 없애겠다는 의지를 밝히면 됩니다. 사시/로스쿨의 ‘병치’, 진정한 ‘공존’을 모색한다면 말이죠.


시선을 바꿔보죠. 투트랙이 되면 법조인 지망생들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이 선택은 “두 진영 중 어느 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이나 다름없습니다. ‘법조인’이 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아니고 말입니다. 어떤 법조인지망생이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차별받지 않으려면 사시를 봐라’고 조언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이건 투트랙이 아닙니다.


또 하나, 지금 이 상태에서 사시가 존치되면 3-4년 내에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사시가 명맥을 유지하게 된 상황에서, 3-4년 내에 로스쿨 정원을 조정하자거나, 폐지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즉, 사시존치는 또 한 번의 혼란, 지금보다 더 큰 갈등과 혼란을 예정하고 있는 겁니다. ‘경쟁’이라면 룰이 있어야 합니다. 승패를 가르고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은 퇴출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상호보완재’로서 함께 가는 것인지, 이런 부분들이 명확해야 합니다. 저는 경쟁이라는 말은 전혀 적절치 않고, ‘상호보완재’로서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적으로 상호보완재가 아니라, '그로기 상태가 될 때까지 붙어보자'는 싸움이 될게 뻔합니다. 그게 의도라면 어떻게 경쟁하고 평가하고 언제쯤 정원조정이나 폐지 논의 등을 재논의할 것인지까지 다 까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 '일단 존치시켜 놓고 보자'는 너무 무책임해 보입니다.


그게 아니고 '로스쿨 고사 전략'이 맞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로스쿨 폐지를 주장하는게 낫습니다. 어차피 고사시킬 요량이라면, 매몰비용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 당장 정리해야죠. 과연 그게 맞는지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하면 됩니다. 일단 존치하고, 몇년 뒤에 로스쿨 정원 축소/폐지 문제가 불거져서 또 한 번의 갈등을 겪는 것보다 지금 다 까놓고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사실 이 문제의 기저에는 변호사 숫자 문제가 깔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사시 200명으로 동력을 얻어, 로스쿨을 폐지시키고, 사시 1000명 시대로 복귀한다면, 지금보다 배출인력이 500명 줄겠죠. 좋습니다. 차라리 변호수 ‘적정수’를 놓고 토론한다면 꽤 의미있는 토론이 될겁니다. 저는 변호사 잠재수요가 더 있다고 생각하지만, 변호사 숫자를 무작정 늘리는건 찬성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토론이라면 생산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건 다 수면 아래에 있고, 사시 존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논의가 계속 겉도는거죠.


사실 사시존치를 외치는 분들 중에는 제가 잘 아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선의’를 신뢰합니다.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후세대들에게도 그런 '희망'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사시 존치론이 대두되었다고 믿습니다. 제가 로스쿨 교수들 만나면, 이런 얘기도 합니다. “그 변호사들 제가 좀 아는 분들인데, 순수한 의도만큼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 ”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론적’으로는 사시/로스쿨 병치가 가능하고 그렇게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로스쿨을 고사시키려는 목적으로 추진되는 사시 존치에는 전혀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 요즘 긴 글을 너무 많이 썼는데 ... 하나 정도 더 쓰고 이 문제는 정리할까 합니다. 나머지 하나 남은 거는, "왜 로스쿨에서 '다원성(diversity)가 중요한가?"입니다. 내년 초에 논문으로 완성해 보려고 합니다. 가제는 "로스쿨은 공정한 제도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