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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대통령 명예훼손 무죄 판결의 또다른 측면: 사법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고, 사회는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by transproms 2015. 12. 18.

대통령 명예훼손 무죄 판결의 또다른 측면

- 사법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고, 사회는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가토 전 지국장 판결을 긴급 입수하여 읽어봤습니다. 요약하면, 1) 보도는 허위사실이다. 2)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은 신중해야 하지만, 사인으로서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하며, 명예훼손이 맞다. (그 외 다른 피해자는 공인이 아니므로 당연히 명예훼손) 3) 다만, 비방 목적이 없고, 부주의했던 것뿐이라 무죄다.


사실 부존재에 대한 입증책임 문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 등이 여전히 문제거리인데, 그건 다른 분들이 많이 분석해주실거고요. 저는 좀 다른 측면을 짚어 보고 있습니다. 판결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재판부가 훈계 또는 배경설명 차원에서 이런 코멘트를 한 모양입니다 (링크)


"재판부가 이같이 판단한 것은 검사가 기소한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가토 전 지국장의 행위가 타당하고 적절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잘못된 사실을 기초로 공직자를 희화화하는 행동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 사건이 건전한 언론 풍토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일전에 박경신 교수 음란물 무죄 판결(2심) 때는 아예 판결문에 이런 구절이 있었죠. 마치 '참조'해 달라는듯 '괄호' 안에 넣어서 말입니다....;; (이 판결에 대한 제 평가는 다음 참조. "이제야 법정이 학술세미나와 구분될 수 있다!": 박경신 교수 2심 무죄판결에 대한 소고 - 링크)


"(다만, 문제 제기 방법 또는 판단의 대상을 소개하는 방법으로서 음란 여부가 논란이 되었던 위 사진들을 그대로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이었는지에 관하여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제가 이런 설명/훈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법원이 판결을 할 때 불필요한 ‘부담’을 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점 때문이죠. 그런 부담 때문에 저런 코멘트를 굳이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거고요. 사법은 언제나 ‘법적으로 문제된 쟁점’을 다루는 것이지, 사안의 모든 면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언론 전문가’가 아니라 ‘법 전문가’인 법관이 보도를 판단할 수 있는 비밀이기도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사법부에 부여한 ‘제한된’ 기능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명예훼손 사건을 무죄로 판단할 때 불필요한 고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이, 명예훼손이 아니면 아니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무죄 판결로 인해, 가토 전 지국장에게 면죄부를 준다거나, 사회가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거나, 허위소문으로 인한 보도가 ‘좋은 보도’라고 칭송받게 된다거나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런 법관의 몫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몫이라는 것이죠. 법원이 그런 부담을 벗어날 때, '법과 양심에 따른' 소신있는 판결도 가능해w질겁니다. 그것이 사법을 위해서도 시민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고요.


물론 판결을 받아들이는 시민사회의 풍토에도 문제가 없는게 아닙니다. 무죄판결을 내린 법원에게 “그럼, 보도가 훌륭했다는 얘기냐?”고 물으면 안됩니다. 판결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판결했을 뿐 보도의 타당성/적절성을 확인해준게 전혀 아니니까요. 보도가 “적절치 않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명예훼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절한 보도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애초에 모순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여간 사회는 법적 판단을 필요로 하지만, 판결에 모든 것을 위탁하면 안된다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법적 판단과 사회적/도덕적/정치적 판단이 적절히 분리되어 각자의 역할 분담을 할 때, 사법부도 마음껏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사회도 법에 의존하기도 독립적이기도 하면서 적절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