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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서울대 로스쿨은 나이 차별을 하고 있나?

by transproms 2016. 2. 12.

<서울대 로스쿨은 나이 차별을 하고 있나?>


제가 줄곧 관심을 가져운 주제가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네요. 자세히 적고 싶지만 일단 급한대로 몇가지만 끄적여 봅니다. 관련 기사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212000503


1. 차별 판단과 적정 자료의 문제


서울대 로스쿨이 나이를 차별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권위가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건 말건, '차별'이라는 판단을 받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인권위는 "전체 지원자와 합격자의 이름들 중 한 글자를 가린 명단과 주민번호 앞 두자리를 가린 자료"를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원자/합격자 연령 분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서울대가 아예 아무 자료도 안냈는지 알았더니, 후속기사에는 '분포' 자료는 제출했다고 되어 있네요. 자료제출 요구를 대놓고 무시한게 아니라니 일단 다행입니다. 여전히 인권위법 위반 여부가 다툼의 소지가 있는데, 그와 별개로, "그런 분포를 로스쿨이 자발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제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료건 간에 정성점수가 있는 한, 차별판단을 받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어떻게 자료를 조합해도, 로스쿨 입시의 특성상, 그런 류의 자료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했다'는 근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물론 연령에 따라 점수를 달리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으면 되는데, 그런 증거가 있을리도 없고, 서울대 로스쿨이 그런 식으로 연령차별을 했을리도 만무합니다.


'연령 기재 항목이 있는 입학지원서 자체가 차별이다'라는 쪽으로 논리를 구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굳이 그런 자료를 요구할 필요도 없죠. 요컨대, 저는 이걸 인권위에 진정한 서울변회도, 이런 식의 자료제출을 요구한 인권위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2. '연령 차별'보다는 '인적 다원성'의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로스쿨의 연령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줄기차게 주장해왔습니다. 다만, 이건 '차별'이라기보다는 '인적 다원성 확보의 실패'라고 보는게 맞고요. 차별, 인권침해, 불법이라기보다는, 로스쿨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는게 맞습니다. 제 블로그나 페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로스쿨, 특히 상위권 로스쿨들이 그런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http://transproms.tistory.com/129


저도 추측일 뿐이지만, 여러 정황 등을 고려할 때, 상위권 로스쿨이 연소자들이 많은 이유는 고령자들이 지원을 거의 안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로스쿨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원자들이 로스쿨에 지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사시보다는 덜하지만, 로스쿨도 3년의 등록금/기회비용을 투자해서 뛰어들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지금의 로스쿨제도는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만큼의 매력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등록금은 비싸죠, 변시 합격률은 곧 50%를 밑돌죠, 사시 존치와 함께 로스쿨이 위축(폐지?)될거라는 불확실성까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은 30대 전문가가 로스쿨에 지원할거라는 기대를 하긴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연유에서, 로스쿨이 나이가 많은 전문가들을 충분히 입학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원을 안하니 뽑을 수가 애초에 없는거죠. 하지만, "지원자가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사법시험체제에서 연령 다원성 문제가 불거진다면, "고령자의 시험 점수가 낮은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만, 로스쿨에는 그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시정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뛰따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어쩌란 말이냐?'라고만 하지말고, 로스쿨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죠. 예컨대, 로스쿨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사회경력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공표하고, 그런 사례를 부각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스쿨 내부에서도 사회경력자의 유입이 줄어들면 로스쿨의 정당성이 타격을 받는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경각심은 자연스럽게 자소서/면접 등의 정성요소에서 고령자를 차별하지 않고, 거꾸로 우대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연령' 문제보다는 '사회경력자의 유입' 문제


또한 로스쿨 입학자의 연소화 문제는 사실 '연령'보다는 '사회경력자의 유입' 문제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비법대 학부 졸업생이 로스쿨에 진학하는 건 사시와 비교할 때 로스쿨의 장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시 막판에는 비법대생이 꽤 많았고, 심지어 학점도 좋은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비법학 자기 전공 열심히 공부하고 로스쿨 진학해서 법조인이 되는 모델은 사시 시절에도 적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사실 저는 비법학 전공자가 법조인이 되는게 그리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경영학 4년 + 로스쿨 3년'으로 법조인이 된 사람에 비해, '법학부 4년 + 로스쿨 3년'으로 법조인이 된 사람, 또는 '법학부 4년 + 고시 공부 3년 + 사법연수원 2년'으로 법조인이 된사람보다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이 떨어질까요? 실제로 법조인은 다양한 사회현상을 '법'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그 사회현상 자체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부차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학 4년 공부를 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게다가 법공부 기간이 짧아서 법실력 자체는 부족할 수도 있는 로스쿨체제가 더 나은 것이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회경력자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예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5년 동안 일했던 사람이 금융전문 변호사가 된다면, 사회학을 전공하고 NGO에서 5년 동안 일했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는건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법조계 유입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로스쿨이 사시와 차별화될 수 있는 장점이라는 겁니다. 반대로 이런 사람들이 로스쿨에 들어오지 않는게 작금의 문제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미국 로스쿨에서는 연령 분류 통계도 내지만, '사회경력이 있는 신입생이 얼마나 되는가'로 통계를 냅니다. 하버드는 "80% at least 1 year out of college, 63% out of college for 2 or more years"라고 공개해 놓았고, 콜롬비아는 31% began law school directly from college, and 5% earned graduate or professional degrees."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콜롬비아는 30대 이상이 2%에 불과하지만, 직장경력이 있는 사람이 69%나 되니까, 20대지만 사회경력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입학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변회가 로스쿨의 인적 다원성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연령 차별보다는 '사회경력자'를 얼마나 합격시키고 있는가를 따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리고 인권위에 연령 차별이라며 진정을 내는 것보다는, '사회경력자 비율을 공개하라'고 로스쿨에 직접 요구하고 그 정당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신시켜나가는게 바람직한거죠.



4. 로스쿨 외부의 비판과 감시의 필요성


서울변회의 비판 지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로스쿨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는 환경할만한 일입니다. 서울변회 뿐만 아니라, 대한변협 등 법조단체들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감시하고 비판해야 개혁이 가능하니까요. 미국에서는 로스쿨의 인적 다원성 문제에 대해 로스쿨은 스스로 자료를 공개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적극 감시하고 비판합니다. 인적 다원성 지표를 만들어서, '여성 친화 로스쿨', '소수자 친화 로스쿨'의 순위를 만들어 자발적인 경쟁을 촉진시킵니다. 상위권 로스쿨일 수록 이런 지표에 민감하고, 개선노력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사실 서울변회가 더 전문성을 발휘해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로펌 등 변호사의 취업 차별 문제입니다. 연령차별이라면 로펌이 훨씬 더 문제의 소지가 많죠. 제가 로펌 문제에 관한 논문 두 편(http://transproms.tistory.com/92, http://transproms.tistory.com/51)에 자세히 썼지만, 로펌 입사 과정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입증가능한 문제들(예컨대, 입사지원서에 노골적으로 가족사항을 기재하라고 되어 있는 것 등)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모르고 있지 않을 변호사단체에서, 로스쿨에만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한변협에 제출한 보고서, <로펌 공익활동 평가지표 개발에 관한 연구 (2012)>, 요것 좀 활용해주세요^^ http://transproms.tistory.com/110) 


이쯤해서, '서울변회의 로스쿨에 관한 문제제기'는 '사시 존치'를 위한 수단일 뿐 진정성이 없다고 폄하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런 의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설사 그런 의도가 일부 있다고 해도, 그 문제제기 자체가 유의미하다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게 더 좋다고 봅니다. "로스쿨 문제를 지적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라고 힐난하기보다는 "좋은 문제의식인데, 방향이 잘못되었고, 로펌에도 관심을 가져라"고 지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죠. 서울변회는 '경력법관 채용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여왔는데 (이것도 사시존치와 연동되어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역시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변회의 주장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견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경력법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 서울변회입니다. 그 자체로 박수를 보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법원, 검찰, 로펌에서의 인적 다원성은 로스쿨의 인적 다원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이것들을 잘 연동시켜서, 감시/비판을 하는게 무척 중요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법원, 검찰, 로펌에서의 고령자 취업에 문제가 없다면 (취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로스쿨은 고령자를 차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꾸로, 로스쿨이 연소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러한 취업환경과 관계 있는 것이고요. 미국에서 로펌에 사회적 감시가 로스쿨과 로펌을 '패키지'로 묶어서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은 로펌만큼이나 검찰/법원도 중요하니까, 로스쿨/로펌/법원/검찰을 패키지로 묶어서 감시/비판하는게 필요한 것이고요.



* 추가로, 로스쿨 관계자의 해명에 대한 의문점

- “나이가 많은 지원자들을 차별한다는 비판이 나오면 결국 면접 등 정성점수 평가가 아닌 객관적 수치가 나오는 정량점수 위주로 학생을 뽑게 된다” (제일 위쪽 링크)-> 그런 비판이 나오면, 오히려 정성 점수를 강화해서 나이 많은 지원자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해야죠. 

서울대의 경우 법학적성시험(리트) 성적이 전국 꼴찌인 30대 이상 ‘허수’ 지원자들이 10여명이나 지원한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9794.html) -> 리트 시험 보는데 25만원, 로스쿨 원서비는 25만원 (두 학교 지원하니 50만원), 리트시험 보러 가서 하루 써야 하고, 관련 구비서류 준비하고, 원서 쓰고 자소서 쓰고, 면접도 봐야 하는 로스쿨 입시에서 '허수 지원자'가 많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있다고해도 유의미한 숫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서울대 로스쿨 원서비는 비싸지 않으니(7만원) 허수가 좀 더 있을라나요....;;

- “전국에 로스쿨이 25개나 있는데 3개 대학에 집중해서 나이 차별 논란을 제기하는 건 맞지 않다” (위 링크) -> 연령 문제는 25개 대학이 다 문제고 그렇게 문제제기하는게 '더' 좋았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 3개 대학이 유난히 심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왜 로스쿨에 사회경력자/연장자 유입이 적은가와 함께, 왜 유난히 상위권 로스쿨이 더 심한가도 분석해야할 문제라고 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