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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_comments

김영란법을 통한 사회변동은 가능할 것인가?

by transproms 2016. 7. 29.

김영란법을 통한 사회변동은 가능할 것인가?


0. 법을 통한 사회변동은 제 전공 주제 중에 하나고, 이에 대한 일반론을 쓴 적도 있습니다. 홍성수, "법을 통한 사회변동", <법사회학>, 다산출판사, 2013. 김영란법은 '법을 통한 사회변동'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많은 법입니다. 한마디로, 사회변동에 실패할 요소들이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위헌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법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는게 문제라는 것이고요.


1. 법이 사회를 규율하려면 법이 명확하고 일관되게 집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원래 초안이 이상하게 보완되면서 더더욱) 모호한 규정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법을 보고, 법시행령을 보고, 200쪽이 넘는 권익위 해설집을 봐도 이해가 안가는 것 투성이입니다. 임의법도 아니고, 형벌/행정벌적 요소가 다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 이렇게 모호하다니요....


2. 이 법이 모호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대상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입니다. 김영란법에 반발하는 몇몇 언론 기사들 보니까, 오히려 '기자는 꼭 대상으로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적용범위를 포괄적으로 넓히면 엉뚱한 대상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소규모 인터넷언론사의 기자도 아닌 행정직원에게도 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참 황당한 일입니다.


3. 법이 모호하고 대상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면, 전문용어로 '집행결손'이 불가피해집니다. 적용대상자가 400만명이라고 합니다. 적용행위 자체가 적발이 매우 힘든 유형입니다. 구체적으로 누가 돈을 냈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음식값이 얼마인지... 적발해내기가 무지 어렵습니다. 결국 집행기관은 온전한 법집행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법이 대상행위를 언제나 물샐틈 없이 규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집행기관이 그런 '의지'는 보여줘야죠. 예를 들어, 절도범을 다 잡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집행기관에서는 절도를 막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는 신뢰는 있습니다. 최소한 '손 놓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온전한 법집행을 포기하는 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4. 불명확하여 일관된 집행이 어렵다는 얘기는 곧, '자의적 집행'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자의적 집행은 전문용어로, '선별적(selective)' 소추/집행을 야기합니다. 그 선별이 '더 나쁜 놈'으로 향한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맘에 안드는 놈'이 찍힐 수가 있습니다. 대상범위는 넓고 행위 적발은 힘들고 그래서 어차피 다 집행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집행안할 수는 없으니, 자의적으로 선택된 '일부만 규제되는 것이고죠. 물론 이것은 집행기관이 믿음직한 기관이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권익위와 경찰/검찰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 법을 집행할거라고 믿으시나요? 신뢰하신다면, 4번은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5. 설사 집행기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더라도, 온갖 투서, 신고, 고발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위축되고 고통받을 수 있겠죠. 집행기관이 아니라, 같이 밥 먹은 사람에 의해서도 자의적인 운용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입니다.


6. 자의적 집행이 만연하면 법이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재수없으면 걸리는 법'이 되는 겁니다. 어차피 물샐틈 없이 규제하지 않으니, 조금만 꼼수를 쓰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습니다. 아주 재수없는게 아니라면, 걸리지도 않습니다. 음식값을 더치패이 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결재하는 방법? 지금 저의 머리 속에는 12가지의 좋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집행기관이 맘 먹고 달려들면 뭔들 못잡겠습니다. 근데 400만명의 모든 행위를 규제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7. 이런 법을 '상징입법'이라고 합니다. 보통 위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입법'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공동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적' 차원에서 집행되기 힘든 법을 제정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유형의 입법은 매우 예외적이고 웬만하면 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그 상징입법이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리는 구체적인 조치들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상징입법이라면 저는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저는 혐오표현규제법도 이런 조건 하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혐오규제법이 그 자체의 기능은 제한적이지만, 혐오와 차별을 몰아내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는 것이죠. 홍성수, “혐오표현의 규제”, 『법과사회』, 50호, 2015 참조).


8. 저는 어차피 김영란법은 상징입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권익위 직원 숫자가 그렇게 많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징입법이 의미가 있으려면, 김영란법의 본래 목표인,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달성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들을 추동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법이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던가, 부패의 원인인 '재량'을 합리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추가적인 조치들이 모색되는 계기가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흐름들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김영란법은 상징입법이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될 겁니다. 부패는 안줄고, 집행기관의 자의성은 늘어나고, 시민들은 법을 우습게 알고..... 이건 김영란법이 목표로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9.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런 특수하고 또 위험요소가 많은 법의 제정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법의 모습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실제로 김영란 전 대법관은 (기자와 사립교원 적용은 생각도 못했다며) 적용범위를 좁게 시작해서 서서히 늘려가려는 것이 본래 의도였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상징입법이 될 위험을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예컨대, 좁은 범위의 공무원으로 적용대상을 좁히고, 직무 관련 여부 없이 100만원 이상 수수 금지 같은 것에 집중하고, 부정청탁 유형을 좀 더 좁고 명확하게 하는 식으로 했다면 말이죠. 사실 김영란 법에는 집행결손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입법해서 어떻게든 집행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위가 넓어지면서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고, 법은 어쨌든 시행될 예정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잘 집행되고 좋은 파급효과를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이고 저도 그런 방향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 높아보입니다.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한국인의 '주관적' 의지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쉽지도 않아 보입니다.


10. 어차피 실패할 법이라고 비아냥거릴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거꾸로, 이 법이 상징입법에 그치지 않고 진정 법이 목표로 했던 '사회변동'을 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보자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