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탄핵 심판이 소크라테스/예수 재판?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에 적합한 텍스트


대통령 대리인이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하네요 @.@ 이건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 권유'할 때 적절한 텍스트인데 말이죠.


박근혜를 소크라테스/예수와 비유하다니 참 흥미로운 논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매우 기발한' 발상이라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이 소크라테스/예수 급이냐?"는 반론으로 직행하는 것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싱겁게 논쟁이 종료되니까요.


다만 소크라테스/예수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된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들은, 탈옥을 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무고함을 설파할 기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소크라테스/예수의 '흉내'라도 내고자 한다면, 지금 아무리 억울해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겠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죽음의 길을 택했고,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졌으니까요.


'국익' 차원에서 생각해봅시다. 이미 탄핵의결이 된 상황에서 탄핵심판이 늘어져서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진다면, 국익 손실이 너무 큽니다. 만에 하나 기각이 된다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겁니다. 지지율 5%의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여 나머지 기간을 채운다고한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억울해도'(물론 과연 억울한지 의문이지만;;) 자리에서 내려오는게 맞습니다. 닉슨 대통령도 그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중도사퇴를 단행했었죠. 소크라테스나 예수가 박 대통령과 똑같은 상황이라면, 일단 사퇴함으로써 오히려 무고함을 호소했을 겁니다. 요컨대,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의 예는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를 권유할 때 활용하기에 딱 좋은 사례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으니, 대통령께서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지금 사퇴하셔야 합니다"라고 눈몰로 호소할 때 말이죠.


또 한 가지, 대중민주주의의 위험과 사법통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대통령 변호인을 맡았다면 당연히 주장해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국민 다수가 원해도 헌재가 기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이죠. 그런데 이런 논법을 구사하려면, 소크라테스/예수 재판보다는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한 문헌들을 참고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토크빌의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정치적 문제가 결국 사법적 판단에 의해 해결된다”는 말을 원용하며, 미국 건국 초기에게 헌법을 셋팅할 때 벌어진 논쟁들을 소개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거라는거죠.


아무튼 애꿎은 소크라테스/예수를 원용하여 박근혜 탄핵 반대 근거를 내세우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소크라테스/예수 재판의 예는 오히려 '대통령직 사퇴'를 권유할 때 활용하기에 딱 좋은 사례입니다!


* 소크라테스 재판 관련하여,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여 잘못 인용되는 경우도 많죠. 실제로 '악법도 법이다'를 명시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베르그봄(Karl Magnus Bergbohm) 입니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소크라테스 재판 역시 '악법준수론'이라고 보기에는 복잡한 텍스트인데, 항상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고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베르그봄을 잘 모르거나, 소크라테스가 베르그봄보다 훨씬 유명하니까 '권위에 호소'하기에 좋기 때문이겠지만요.


* 참고자료

박홍규,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 필맥, 2005

권창은, 강정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5

박원순, 세기의 재판 - 역사를 움직인 10번의 결정적 순간, 한겨레출판, 2016 (1장이 소크라테스 재판, 2장이 예수 재판)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 한길사, 2002.

로버트 달,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16 (최장집의 한국어판 해설도 굿)

조지형, 미국헌법의 탄생, 서해문집, 2012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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