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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김동춘 외 엮음,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 인권을 위한 강의

by transproms 2008. 7. 23.

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119호, 2006.7.5.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ongsungsu&nnew=2&y_number=5

인권을 위한 강의
김동춘·한홍구·조효제 엮음,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 인권을 위한 강의>(창비, 2006)


이제 대학에서 인권관련 강의를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제도권에서 알음알음 열리던 인권강좌가 이제는 대학 교양 강의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현대사회와 인권”, “세계화시대의 인권”, “평화와 인권”, “소수자와 인권”, “인권법” 등의 강좌를 개설해 놓고 있다. 이런 성과 중 하나로 지난 1998년 출판된 <현대사회와 인권>(나남, 1998)은 실제 강의에서 사용된 강의안과 학생들의 리포트를 모아 놓은 좋은 자료이다.

이번에 새로 출판된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은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가 대학 새내기 학생들의 인권 교양강좌를 위해 집필한 것이다. 인권에 관한 의미 있는 성과물을 내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전문연구기관에서 발간한 책이라서 일단 더욱 신뢰가 간다. 대학 강의를 위해 집필되었지만, 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어볼만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여느 교과서처럼 총론과 각론으로 나뉘어져 있다. 총론에서는 한국의 인권상황과 인권과 시민사회, 인권과 사회복지 등의 문제를 다루고, 각론에서는 정보기술사회, 동아시아 인권담론 등의 최신이슈, 그리고 여성, 노동자,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다룬다. 각 장은 모두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각 장 말미에는 ‘참고문헌’과 ‘생각해볼 문제’까지 정리되어 있는 전형적인 인권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각론에서 선정된 각 인권주제들도 훌륭한 글들이지만, 여기서는 총론의 세 기고 글에 특별히 주목해 보고 싶다.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는 으레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서구의 인권사에서 출발하곤 하지만, 김동춘 교수의 “한국의 인권상황과 인권문제”는 인권을 ‘우리의 맥락에서’ 문제제기하고 있다. 한국현대사의 ‘근대성’과 ‘국가(폭력)’문제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분석이 ‘인권’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현되는 것이 흥미롭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과 시민사회’ 역시 기존의 시민사회론에서 인권이 차지하는 위치를 재조명한 보기 드문 시도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인권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얽혀있는 맥락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면서, 시민사회가 인권의 가치를 추구하고 생성하는 장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영환 교수의 “인권과 사회복지”는 한국적 맥락에서 ‘사회권’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사회권은 인권의 중요한 테마이지만, 상대적으로 홀대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도입된 이래, 더욱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는 한국의 사회권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권에 초점이 맞춰진 앞의 두 글과 자연스럽게 짝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이 책이 ‘인권’교과서를 표방한다면, 이 책 한권으로 인권일반을 적절하게 개관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각 주제들이 적절하게 선별되어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이 책에서 선정한 주제들을 다른 인권교과서에 비교해 본다면, 총론에서는 인권의 개념과 원리, 인권사, 인권사상사, 인권운동사, 인권의 국제적·국내적 보호 등이, 각론에서는 수형자, 형사피의자, 아동, 청소년, 이주노동자, 군인 등 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북한인권, 발전권 등의 최신 쟁점 등이 빠져 있다. 물론 세부 주제 몇 가지가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며,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권의 교재로서 완결성을 생각해보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총론에서 인권 개념이 정초되고, 개념적으로 실천적으로 발전해온 역사에 대한 기술이 빠져 있다. 물론 인권에 우리 맥락에서의 접근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지만, 세계사적으로 인권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에 대한 이해는 인권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완결성을 갖춘 인권입문서라면 세계사적으로 인권문제가 어떻게 제기되고 해결되어 왔는지에 대한 개관은 간단하게라도 다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론에서도 최신 인권주제들만 주로 다뤄지고, 고전적인 자유권 문제가 누락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총론에서 김동춘 교수가 지적한대로, 한국사회는 자유권의 보장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수자, 정보 등 새로운 인권문제가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수형자와 형사피의자의 인권,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의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론에서는 그런 이슈들이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닌가 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보고 ‘우리 사회에서 자유권 문제는 이미 낡은 문제가 되어 버렸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왜 책의 제목을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으로 달았는지도 의문이다. 이 책에 기고된 글들은 ‘편견’과 ‘평등’이라는 키워드에 특별히 귀속된다고 할 수 없으며, 현대인권문제의 핵심은 편견을 넘어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뉘앙스를 가진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를 표제로 단 이유가 궁금하다. 차라리 책의 부제인 “인권을 위한 강의”가 좀 심심하고 재미없긴 해도 책이 추구하는 바를 오해 없이 전달하기엔 더욱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지난번 서평에서 소개한 <인권: 이론과 실천>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해보고 싶다. <인권: 이론과 실천>이 ‘서양인’이 쓴 보다 ‘이론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인권입문서라면,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는 ‘한국인’이 쓴 보다 ‘실천적’이고, 보다 ‘한국적’인 인권입문서이다. 이 두 권의 책들이 각각의 부족한 점을 메우면서 생산적인 하모니를 이룰 것임은 자명하다. 이로써 우리도 ‘인권’에 입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두 권의 훌륭한 저작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