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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칼럼] 기업가적 대학과 인문교양교육

by transproms 2012. 6. 1.


기업가적 대학과 인문교양교육

   

홍성수 교수 (법학부)


 

   최근 10여 년 간 우리 대학들은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모델 역할을 했던 것은 이른바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 university)이었다. 순수한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의 위상은 철지난 얘기가 되었고,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실용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대학의 임무로 자리잡았다. 산업현장에서는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대학들은 앞 다투어 실무형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애썼다. 전통적인 명문대학에조차 반도체공학, 문화컨텐츠학과 등 생경한 이름의 전공들이 개설되었고,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전공들을 ‘쓸모없다’는 이유로 통폐합하거나 없애는 학교도 있었다. 최근 모 대기업이 인수한 한 대학은 교양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회계과목을 교양필수로 지정했다. 


대학의 가장 큰 고객은 기업이고, 따라서 대학은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선진국 대학들의 인재 개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점은 유럽의 전통적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가적 대학의 원조인 영미권의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대학에선 최소한 잭 웰치의 신경영전략을 줄줄이 꿰 차고 있는 학생이나 실무법률지식에 통달한 학생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진 않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캠브리지대학의 수재들은 여전히 철학, 신학, 고전학, 문학, 사학, 물리학, 수학 등 인문학이나 기초과학을 전공으로 택한다. 옥스퍼드대학에는 철학과와 고전학과 교수가 각각 150여명, 사학과 교수가 100여명에 육박한다.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주요 명문대학에는 법학, 의학, 경영학 등의 학부과정이 아예 없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근 철학 전공 학생의 숫자가 오히려 늘고 있다고 하고, 영국과 미국의 로펌이나 투자은행에는 인문학 전공 출신들이 즐비하다. 미국에서는 리버럴 아트 칼리지라는 학부중심의 작은 대학들이 100개가 넘게 있다.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엠허스트, 윌리암스, 스와트모어, 미들버러와 같은 학교들이다. 이 대학들은 인문교양교육을 위주로 하는 작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오바마를 포함하여) 13명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 출신이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리드 칼리지의 고전독서 프로그램 덕에 매킨토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며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주어진 여건과 현실이 다른 우리가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서구의 대학들의 인재상이 결코 실무형 인재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전공들이 왜 여전히 인기인지, 왜 그들은 재무제표 하나 읽을 줄 모르고, 생활법률상식도 없는 학생들을 채용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인문정신에서 미래를 찾는 교육자와 학생들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늘어나야 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에는 도서관에서 옥편을 펴놓고 ‘논어’와 씨름하고 있는 학생을 만나고 싶다. 따듯한 봄이 오면 벤치에 앉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있는 학생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여름이 오면 세미나실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고 토론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나도 끼워달라고 조르고 싶다.



출처: 숙대신보, 2009년 3월 2일자

http://news.sookmyung.ac.kr/news/articleView.html?idxno=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