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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군 복무자 대학학점 인정제 도입-반대: 실질적 보상 안 되고 형평성에도 위배

by transproms 2017. 1. 5.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군 복무자 대학학점 인정제 도입-반대

실질적 보상 안 되고 형평성에도 위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대학생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최대 6학점을 인정해주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가 복학생이 군에서 받은 교육훈련을 소속 대학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포괄적 학점 인정제를 제안하고 최근 공청회도 열었지만 대학 자율성과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학계 및 여성계의 반발이 거세다. 학점 인정제를 찬성하는 측은 병역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합리적 보상이 필요하며 병사 가운데 80% 이상이 대학 재학생임을 감안할 때 필요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군과 대학에서의 학습 성격이 확연히 달라 실효성이 없고 중고교만 졸업하고 입대한 장병이나 장애인과 여성 등에게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군 당국이 군 복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군 가산점제와 마찬가지로 형평성에 어긋나고 원칙에 반하고 실효성도 없는 대책이 또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군 복무와 학점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군 복무경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학이 추구하는 바와 군 복무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3학점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하고 강의하고 과제를 하고 복습하고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지식의 상호작용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군 복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도 강의실 밖에서의 실습이나 산업체 근무 등을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 스스로 그런 경험이 학점과 ‘등가성’이 있다고 개별적으로 판단해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일률적으로 군 복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해야 한다면 대학의 자율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설사 대학들이 군 당국의 ‘제안’에 자발적으로 응한다고 해도 학점인정이 군 복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 4년제 대학의 졸업학점이 보통 120~130학점이다. 매학기 18학점씩만 수강해도 한 학기가 통으로 남을 정도인데 6학점이 군 복무로 대체된다고 한들 대단한 혜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정상 학점인정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학점인정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될 수 없다. 대졸자를 채용하는 기업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듣고 120학점을 취득한 졸업생을 선호할까, 아니면 114학점을 수강하고 6학점은 군 복무로 대체한 졸업생을 선호할까. 더욱이 대학졸업자나 고졸자에게는 아예 해당사항이 없다. 군 복무 중인 대학 재학생은 78% 정도라고 하니 나머지 22%에 달하는 군 복무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책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단절문제 해소’를 도입 취지로 내세운 것만큼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살리려면 군 복무 자체를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군 복무 중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군 복무 중 자유시간을 활용해 원격수업을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된다. 다행히 군 복무 중 원격강좌로 학점을 이수하는 훌륭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좋은 제도의 수혜자가 대학 재학 중 입대자의 불과 2.7% (2014년 기준)뿐이라는 점에 있다. 이들에게 학업단절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면 이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원격사이버수업은 이미 보편화됐으니 일과 후 자유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동영상 시청과 예습·복습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마련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원격수업 수강이 가능해지면 21개월의 군 복무 기간 동안 12학점 정도 이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6학점을 군 복무경험으로 대체하는 것보다 더 큰 혜택이며 학업단절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면 대학 재학생이 아닌 전체 군 복무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에게 문제는 학업단절이 아니라 경력단절이다. 휴식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사회복귀에 필요한 독서·자료검색·취업교육 등 경력단절을 메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자살 등의 문제의 원인은 대개 내무반 생활에 있다. 군인들이 충분한 휴식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학업·경력단절을 메우기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군 복무 만족도도 높아지고 각종 사고 발생률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군 복무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실질적 보상이다. 군 복무 중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일과 후 자유시간을 보장받으며 사회복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가장 원칙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 틈만 나면 군 복무 학점인정제나 군가산점제 도입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이들 제도가 별다른 추가 비용도 없이 군 복무로 인한 문제를 군대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손쉬운 대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대책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처지의 군 복무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 해소 문제에 관한 한 ‘손쉬운’ 해법은 없다. 

* 출처: 서울경제신문, 2016.3.24

http://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KTVXEXEB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