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Jeremy Waldron, 홍성수/이소영 역, 이후, 2017 

(원제: The Harm In Hate Speech, 2012)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책인데,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출간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시의성을 놓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혐오표현 규제옹호론을 대표하는 책입니다. 규제에 찬성하건 안하건 이 책을 언급하지 않고 논쟁에 참여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책을 번역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혐오표현 문제가 공론화되는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목차> 

1장 혐오표현에 접근하다 

2장 앤서니 루이스의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3장 혐오표현을 집단 명예훼손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 

4장 혐오의 외양  

5장 존엄성을 보호할 것인가, 불쾌감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6장 에드윈 베이커와 자율성 논거  

7장 로널드 드워킨과 정당성 논거 

8장 관용과 중상  


<출판사 책소개>


<언론보도: 서평/책소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금지’의 갈림길에서 - 한겨레신문 (클릭)

막말의 시대…‘말할 권리’에 맞서 ‘막을 권리’를 말하다 - 경향신문 (클릭) 

“말할 권리 위해 싸우겠다”던 볼테르의 말 사실일까 - 한국일보 (클릭) 

혐오 표현을 불허하라 - 서울신문 (클릭) 

"외국인 입국 심사 강화…" 이 발언도 혐오표현이다 - 조선일보 (클릭)

우리에겐 혐오 발언을 증오할 권리 있다 - 서울경제 (클릭)

“독 있는 꽃 만발하게 둘 것인가” 규제냐, 교육 통한 해결이냐 ‘혐오표현’ 사회적 담론 촉구 - 세계일보 (클릭) 

우리에겐 혐오 발언을 증오할 권리 있다 - 서울경제 (클릭) 

"누구나 혐오 표현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클릭)

혐오표현 어쩌나…"독이 든 꽃이라도 내버려둬야 하는가" - 연합뉴스 (클릭)

"표현의 자유·혐오 발언의 갈림길에 서다" - 경기신문 (클릭)

"혐오표현, 인정해야 하나 막아야 하나..." - 경기일보 (클릭)

"혐오 표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 영남일보 (클릭)

한 주간 언론이 주목한 책 1위,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클릭)

서평전문기자가 뽑은 이 주의 책 1위,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클릭)

조규범, [서평]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클릭)


<인터넷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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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정미 재판관이 읽은 것은 '선고 요지'인데,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알아 듣기 쉬운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참 좋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덕분에 수업시간에 딱 맞춰서 지켜볼 수도 있었고요^^


방금 결정문 전문을 입수해서 읽어봤는데, 총 89쪽. 선고요지보다는 훨씬 길고 자세합니다. 


결정문 전문 파일 다운로드 링크


다음은 선고요지에서 언급되지 않은 결정문 내용 중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


1) 선고일시가 "2017.3.10. 11:21"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선고요지를 21분 내로 읽을 것을 예정하고, 분까지 특정해서 적어놓은걸까요? 그렇다면 이정미 재판관은 전날 스톱워치 켜놓고 읽는 연습을 했을지도.. 아침에도 시간 맞춰 읽기 연습을 하다가 헤어롤을 꼽고 나오신게 아닐지 ^^;; 암튼 이번 결정은 정확히 언제부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는지 그 시점이 매우 중요했던 결정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2) 뇌물죄 여부가 형사재판에서 다퉈질텐데,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대통령의 기업경영 개입이,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한 것",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구속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3) 세월호 참사가 탄핵소추사유에서 배제된 것을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시는데, 김이수/이진성 재판과의 '보충의견'을 보니, 대략 사정이 짐작이 됩니다. 추측컨데, 이 두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를 탄핵소추사유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을 듯 합니다.그런데 그걸 밀어붙이면 '전원일치'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 부분을 다수 의견에 양보하여 '전원일치 결정'을 만든 뒤, '보충의견'으로 대통령의 의무 위반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충의견은 비록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는 사실을 무려 17쪽에 걸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파면사유가 아니라고 해서 잘했다는 뜻인 것은 아니고, 헌재 결정문은 대통령의 대처가 적절했음을 인정한 것도 전혀 아닙니다. 보충의견을 읽으면서, 세월호 부분이 기각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습니다.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 또 시작입니다.


4) 안창호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일종의 개헌론을 15쪽이나 썼는데, 이 부분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 대통령이 그런 행위를 한 배경에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었고,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인데요. 탄핵 결정을 내리는데, 피청구인 행위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나요? 특히 탄핵결정을 계기로 권력구조를 개편하자는 거창한 제안까지 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탄핵결정문에 들어가는게 적절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5) 김이수/이진성 재판과의 보충의견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아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법률의 중대한 위반을 '사법절차'로 판단하는 탄핵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박근혜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을지언정, 헌법재판소가 탄핵이라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사정이 있음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고 박근혜를 직접 조사하게 되어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점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할 부분을 남겨놨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아무튼 보충의견 중 특별히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있어 옮겨옵니다. 이런 구절을 '결정문'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장, 한 문장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꾹꾹 눌러 썼을 것 같은 구절입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진정한 지도자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 4. 16.이 바로 이러한 날에 해당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 모두가 어느 때보다도 피청구인이 대통령의 위치에서 최소한의 지도력이라도 발휘해 국민 보호에 앞장서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최상위 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승객 구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은 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400명이 넘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그 순간에 피청구인은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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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 의결 그 이후의 문제들

- 헌재는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한다.

-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당장 사퇴해야 한다.


1. 헌재의 탄핵심판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인용될 것이다. 압도적 가결로 그 가능성은 더 커졌다. 만에 하나 기각되더라도 더 큰 저항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게 없다.


2. 박한철 소장이 퇴임 전(1월 말)에 기각하고 퇴임하는 무리수를 둘리도 없다. 오히려 거꾸로다. 그는 한편으로 통진당을 해산시켰지만, 다른 한편 임명권자를 탄핵시키기도 한, 중립적(?)인 재판관이라는 명예를 얻고 싶을 것이다. 더욱이 헌재재판관/연구관들을 무리하게 몰아붙여 1월 말까지 탄핵 기각결정을 내린다면 평생의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하는데... 그럴 것 같진 않다. 자기 임기 내에 결정을 내리지 않고 퇴임함으로써 특별한 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3. 황교안 총리는 그리 걱정할게 없다.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는게 영 개운치 않지만, 국회의 협조 없이 무리하게 뭔가를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헌재소장 임명 같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겠지만...


4. 유일한 걱정거리는 탄핵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시간'이다. 헌재가 만사를 제쳐두고 빨리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늦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두번째 탄핵결정이니만큼 기본적인 이론 연구는 생략할 수 있지만, 이번 건은 노무현건과는 달리 사실관계 다툼이 많다. 박근혜 측에서는 모든 사실관계를 부인할 것이고, 헌재 입장에서는 특검 종료 시점이나 관련자들의 1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판단할 수도 있다. 박 측에서는 온갖 지연 전술을 다 쓸 것이다. 헌재 심리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변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야 기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3-4개월 후에도 지금과 같은 정치사회적 환경일지는 알 수 없다. 한국에서 3개월은 무지 긴 시간이다. 참고로, JTBC 태블릿피씨 보도가 10월 24일이었고 불과 한 달 남짓 지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10월 중순 기준으로 그 누구도 12월 초에 대통령이 탄핵될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5. 헌재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올바른 결정 못지 않게 '빠른' 결정도 중요하다. 권한대행 체제를 오래 유지하는건 국민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박근혜만 빼고) 바람직하지 않다. 


6. 개인적으로, 줄곧 탄핵보다 자진사퇴가 정치적으로 더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빠르고 간편하고, 무엇보다 책임을 정확히 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눈꼽만큼이라도 애국심이 남아 있다면, 탄핵기각의 실낱같은 가능성을 기대하며 국가를 불확실성으로 몰아 넣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퇴진해야 한다. 일각에서 탄핵은 징계고 사퇴는 명예로운거라고 보기도 하던데, 느낌이 그런거지 사퇴야말로 엄중한 정치적 징계다. 누가봐도 '자진해서' 내려가는건 아니지 않는가? 예우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퇴하고 내려와서 형사처벌(금고 이상)을 받으면, 어차피 탄핵하고 (전직대통령예우법상) 효력이 동일하다.


7. 개인적으로, 탄핵에 부정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탄핵의결과 함께 헌재 결정을 기다리며 "헌재는 탄핵결정을 내려라"라고 외쳐야 한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즉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사법절차에 빼앗기고, 시민들이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탄핵이 시민들이 원래 주장했던 문제의 본질과 잘 맞지 않는 절차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여전히 계속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쳐야 한다. 탄핵심판을 구경할게 아니라, '정치적 과정' 속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헌재 앞으로 가서 헌재에게 뭘 해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다. 늘 하던대로 광화문에 모이고 늘 하던대로의 방식대로 퇴진을 주장하면 된다. 여전히 이 문제해결의 주체는 시민이고 그 대상은 박근혜이며, 헌재는 그 매개체일 뿐이다. 이것이 탄핵결정 이전에 사퇴를 이끌어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헌재를 압박하는 효과적이면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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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헌재 폐지를 원치 않는다면 탄핵결정을 내릴 것 - 사법행태적 접근>


저는 줄곧 탄핵에 비판적이었지만, 막상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재가 인용하는건 문제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즉, 가능하면 탄핵보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좀 더 낫다는 것일 뿐, 일각의 우려처럼 헌재가 보수적이어서 기각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헌재가 여론 압박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이걸 좀 더 이론적으로 파헤쳐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사법행태(judicial behaviour)적 접근은 사법결정에 영향을 주는 여러 행태주의적 요소들을 분석하는 것인데요. 그 요소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헌재의 조직적 위상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헌재결정에 대한 행태주의적 접근은 몇차례 시도된 바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미증유의 사태라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건 아니지만 대략 가설을 세워보면, 헌법재판소의 조직적 위상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거라는 겁니다.


만약 지금의 국민들의 분노가 계속 이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헌재는 결정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만약 기각 결정을 하다면, 그건 국민(+국회)의 강력한 의사에 반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헌재 폐지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죠. 헌재의 기능이 대법원으로 흡수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독립적인 헌법재판소 모델이 세계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선택한 헌정체제 중 하나라고 본다면, 그런 식의 개선 논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대법원은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으로 흡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고요. 폐지 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헌재의 위상이나 국민적 신뢰가 무너질 수 있고요.

최소한 '헌재의 탄핵심판권 박탈' 논의는 나올겁니다. 실제로 탄핵심판권을 헌재가 갖고 있는게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 비슷한 제도를 둔 독일, 오스트리아 등도 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의회에서 처리합니다. 제 개인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 탄핵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며, 이를 굳이 헌법재판소가 사후심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의회에서 처리를 하려면 양원제로 두 번 정도 의결하는 신중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회제도 개편 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부분이고요. 국회 3분의 2가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결정을 내리는 국민소환제도 같은 것이 탄핵의 취지에 더욱 적절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오늘 탄핵소추의결을 하고, 다음 주에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가정해보면, 다음 주 광화문 집회에선 다들 '헌법재판소를 폐지하자'는 구호가 나오지 않을까요? 헌재의 조직적 위상의 유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헌재 재판관들의 입장에서, 기각 결정은 상당히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헌재가 국민의사와 국회의사가 불일치할 때 그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한 적은 있았지만, 이번처럼 강력한 국민의사와 국회의사가 일치한 경우에 그것을 뒤집는 결정을 내린 적은 거의 없었고요. 소수자 사안 같은 경우에도 국민 지지가 과반에 이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지가 확보되었을 때를 기다려 '뒤집기'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이번처럼 국민+국회 의사가 압도적인 경우에 뒤집기를 시도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 는한, 헌재는 그렇게 '용감한' 기관은 결코 아니고, 이번 경우에도 그런 선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거꾸로 진짜 용감해야 할 때 꼬리를 내렸던 안타까운 장면은 꽤 있었죠 ㅠ)

만에 하나 기각결정이 나온다면 (폐지 얘기는 그냥 거론되는 수준일 것이고) 헌재의 위상, 구성, 기능이 원점에서 시민사회/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될겁니다. 그건 나름대로 성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재가 기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사퇴에 대한 논의는 계속할 수 있고 오히려 헌재 덕분에 더 큰 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탄핵절차에 들어갔으면 헌재가 탄핵결정을 내려주는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겠지만요.

그래서 어차피 탄핵소추의결을 하기로 했으면 광장의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 빨리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를 얼마나 끈질기에 -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 이어가는가가 탄핵심판에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정대혼란을 막으려면 하루 빨리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데, 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키도 역시 국민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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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의결, 

정치적으로는 빠른게 낫고

사법적으로는 신중한게 낫다. 

결론적으로는 빠른게 낫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풀리는게 좀 더 바람직하다(하야)는게 제 생각이었지만, 결국 탄핵소추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탄핵소추 의결을 전제한 상황에서 최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문제는 의회가 언제 의결하는게 적절한가 하는 점입니다. 결론은, "정치적으로 보면 빠른게 좋고, 사법적으로는 신중한게 좋다"입니다.


일단 정치적으로는 빠른게 유리해 보입니다. 지금의 분위기가 수 개월 넘게 지속되긴 쉽지 않습니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밀어붙여야죠. 앞으로 최소 두 세 달 정도는 국회청문회와 특검 수사로 분위기가 더 이어질 수 있을겁니다. 헌재 결정도 그 즈음에 내려지면 가장 좋겠죠. 박한철 소장이 1월, 이정미 재판관이 3월 퇴임이 예정되어 있는걸 감안하면 더더욱 빠를수록 좋습니다 (당분간 후임 인선은 어려울 겁니다. 국회가 신임 재판관 동의를 안해줄테니까요). 실제로 사법행태주의 이론에 따르면, '조직의 보호'가 판결에 큰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헌재가 기각 결정을 한다면, 아마 헌재 폐지 논의(정확하게는 미국식처럼 대법원으로 통합/흡수)가 불거질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헌재의 탄핵심판권 박탈' 논의는 나올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기각결정을 한다는 것은 '조직 보호'를 위해서라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탄핵절차를 빨리 진행한다면, 기각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의 분위기가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이어진다면, 기각 결정의 역풍은 그리 겁낼 일이 아닙니다. 노무현 탄핵 사건 때는 국민 다수가 원치 않는 탄핵을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이 밀어붙였다가, 헌재가 기각을 하니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이 역풍을 맞은 것이고요. 이번에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탄핵이기 때문에 헌재의 기각결정은 국민 절대 다수 의사(+국회)에 반하는 결정이 됩니다. 탄핵추진세력인 국민이 역풍을 맞는게 아니라, 헌재가 역풍을 맞게된다는 겁니다.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르게 될 겁니다. 여전히 헌재재판관의 보수적 성향, 재판관의 임기 종료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있습니다만, 기각 후 역풍 문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그렇게 보면, 탄핵소추의결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의결에 가담하는 국회의원 숫자가 3분의 2를 훌쩍 넘기면 더 좋겠지만, 저는 의결에 가담한 국회의원 숫자보다 대중 열기가 남아 있을 때 빨리 처리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의회가 일체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가능하다는 학설도 있습니다만, 정치적으로 용인되기 어렵고, 의회가 어차피 동의를 안해줄 겁니다.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는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총리 문제는 괜히 협조하는 모양새 취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게 나아 보입니다. 총리 문제로 시간 끌 여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총리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방법이겠죠. 총리 탄핵은 국회 과반수로 가능하니 더욱 쉽습니다. (다만, 총리 탄핵소추는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대통령보다는 높긴 합니다. 그래도 일단 직무 정지는 가능)


반면, 헌재가 정치적이긴 하지만 '사법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탄핵소추의결은 신중하게 하는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겁니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증거가 없다'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찰 수사는 불공정하다 -> 특검 수사도 엉터리다 -> 1심 법원이 여론에 굴복했다 -> 2심 법원은 신뢰를 잃었다." 이런 식으로 박 대통령은 "모든 것은 다 거짓입니다!"로 일관할 겁니다. 예를 들어, "최순실이 국정운영에 개입한 것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 탄핵의 이유가 될텐데, 박 대통령 측에서는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내놔라"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죠. 평생 법관으로 살아온 헌재재판관들이 '증거재판' 요구를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헌재가 직접 증거입증을 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기각되지는 않더라도 심리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검찰 수사결과를 넘어, 최소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와야 헌재로서도 부담없이 인용결정을 내릴 수 있을겁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탄핵을 서두르는 것은 사법적으로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거꾸로 탄핵소추의결이 너무 늦어지면, 헌재로서는 여론압박에서 점점 자유로워질 것이고, 기각결정을 내리는 (여론) 부담이 줄어듭니다. 또한 검찰과 특검이 '뇌물죄' 혐의를 추가한다면 인용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겠죠. 뇌물죄는 '중대한 법률 위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직권남용 정도하고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범죄입니다. 법정형(10년 이상)도 훨씬 높고요. 하지만 뇌물죄가 구체화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 이 역시 탄핵소추의결에 시간이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탄핵소추의결은 빨리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탄핵소추의결을 미뤄도 기각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 없다면, 대중들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 모든 법절차를 끝내는게 나아 보입니다. 그것이 기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만에 하나 기각이 되더라도 역풍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반면, 박 대통령 측은 이 모든 절차를 최대한 늦추려고 모든 방법을 다 쓸 겁니다. 특검법 거부권 행사, 특검 임명 지연, 특검 수사 비협조, 국정조사 비협조, 관계자 형사재판 지연, 탄핵심판절차 지연 등등... 하지만 이 역시도 시민들의 분노와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탄핵심판이 노무현 탄핵 때 두 달보다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지만, 권한대행체제의 혼란 등에 대한 여론 압박이 심해지면 헌재가 좀 더 빠르게 결정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 딱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잘 안나오

는게 있는데, 바로 탄핵소추위원이 권성동(법사위원장)이 된다는 것. 이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양반이 친박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연 적극적으로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해줄지... 엑스맨이 되는건 아닌지.... 탄핵심판에서 탄핵소추위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할지는 가늠이 잘 안됩니다. 노무현 탄핵 때 탄핵소추위원 김기춘은 열심히 역할을 잘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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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보다는 대통령직 사퇴: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다.


일전에 탄핵이 왜 현실적으로 어려운지 긴 길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참조: http://transproms.tistory.com/211) 이유는 다섯 가지. 1) 의회 탄핵소추 어려움, 2) 증거 확보 어려움 (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 3) 현재 헌재재판관 성향상 탄핵 인용 쉽지 않음, 4) 검사 역할인 탄핵소추위원이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법사위원장), 5) 탄핵소추되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황교안. 이 중 일부가 해소되었습니다. 1)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의결 합류가 가시화되었고, 2) 검찰이 뒤늦게나마 수사를 해서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고, 5)은 야당 추천 총리가 임명되면 해결가능하겠죠. 4)는 여전히 문제지만(다행히 권 위원장은 비박이긴 함), 3)은 여론이 너무 안 좋아, 헌법재판소도 쉽게 기각하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설사 '현실적'인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해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님), 저는 여전히 탄핵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사회의 '사법화' 문제에 대한 저의 일관된 비판적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탄핵의 사유는 헌법/법률의 위반입니다. 헌법 위반 여부가 다뤄지는 것이 맞지만, 탄핵소추/심판 국면으로 가면, 실질적으로는 실정법률 위반을 판단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법재판은 그 정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판사/검사로 살아온 헌법재판관들은 넓은 의미의 '헌법 위반'보다는 실정법률의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상 최악의 '정치의 사법화'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단순히 실정법을 어겼는지 여부인가요? 시민들은 거리에서 '헌법 위반이다',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이런 언명들이 가장 문제를 직관적으로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법적'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정치적' 문제가 법의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왜곡되고 축소되는 것이죠. 법이 잘못되었거나 법률가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법은 원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사 헌재가 탄핵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문에 담긴 내용은 국민들이 원래 제기했던 문제들과 한참 동떨어진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찌어찌하여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갔다고 칩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국민들은 철저히 '구경꾼'으로 전락합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게 잘 용납이 안됩니다. 국민들이 이미 대통령직 사퇴를 명했고, 국회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는데, 왜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을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차제에 헌재가 탄핵 최종심판권을 갖고 있도록 한 헌법조항 자체에 의구심이 있습니다) 노무현 탄핵 때는 느닷없이 감행된 탄핵소추에 대해 저항하는 의미에서 거리에 나선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시민들이 대통령직 사퇴를 명한 상태에서 추가로 더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탄핵소추가 기각되면 말할 것도 없고, 인용되더라도 문제입니다. 탄핵소추가 인용되면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이 됩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헌법재판소가 위상을 뽐내겠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헌재가 주인공이 되나요?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이 주체였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헌재 결정만 기다리다가, 헌재 결정이 나면 환호를 지르게 되는 모습은 웬지 서글픕니다. 국민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을 다 벌여놓고, 객체로 전락하는 모양새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거리에서 외쳤던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구호가, 탄핵 국면이 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인용결정을 내려라'는 구호라 바뀌어야 합니다. 얼마나 수세적이고 비주체적입니까.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작금의 문제는 헌법이념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정치적 문제로 직접 시민들 손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법판단'으로 협소화되어, 헌재의 엘리트재판관들의 판단에 내맡겨진다는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물론 탄핵에 완전히 반대하는건 아닙니다. 대통령직 사퇴가 쉽지 않게 되면 탄핵이라는 수단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직까지는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아직은 탄핵을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여전히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대통령직 사퇴나 탄핵과는 별개로 특검은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특검도 결국 법의 판단에 맡기자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형사화'되는 것에도 일정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엄청난 헌정유린사태가 징역 5년 이하 짜리 직권남용죄로 환원된다는게 도무지 말이 안됩니다. 물론 특검이 수사를 하면 적극적으로 뇌물죄 등을 적용하면 좀 더 낫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법적 한계는 여전합니다. 특검이 수사를 해도 죄목은 문제의 본질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형량도 지은 죄에 비해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겹게 기소를 해도 법원에서 일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요.

문제의 본질에 부합하는 진상규명/처리 방식은 세월호특조위와 같은 '박근혜 게이트 특별조사위원회' 또는 5공특위와 같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조치일 겁니다. 세월호 관련자들이 사법적 단죄를 받았지만 세월호특조위가 여전히 필요했듯이, 박근혜 게이트 관련자들이 다 처벌받아도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잘못은 단순히 '형법상 유죄' 그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정법상 유죄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역사의 반복을 막으려면 철저하게 이 모든 진상을 규명해야겠죠.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형사처벌' 이외의 방식으로 (일부 과거사 사건을 제외하고)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강제수사를 해서 증거를 찾고, 기소해서 법정에 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소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문제인 사실관계들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수사'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만, 신뢰를 잃은 검찰보다는 특검에 사건을 맡겨야합니다. 지금까지 미적미적거리다가 언론과 시민들이 다 문제를 파헤치고 나니까, 그 때서야 사후약방문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에 공이 넘어간다는 것은 헌재로 공이 넘어가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입니다.

요약: 1) 문제를 '사법판단'으로 왜곡/협소화시키는 탄핵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보되어야 함 2) 이와 별개로 특검은 빨리 추진해야 함.


* 저는 이 사건이 결국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기미를 보이면서, 전두환/노태우 재판을 떠올렸는데요. 전/노는 실제 잘못한 것과 사법적 죄목이 비교적 일치했습니다. 내란, 살인 등등... 그래서 당시 구호였던 '전/노를 법정으로!'는 사태의 본질과 비교적 잘 맞는 구호였죠. 실정법상으로도 최고형을 선고가 가능했었고요. 또 그 때는 사법적 단죄 말고 정치적으로 뭘 더 할 게 없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잘못한 것과 범죄화될 수 있는 것과의 간극은 너무 큽니다. 직권남용죄와 기밀누설죄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검찰' 수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직권남용죄의 법정형 '징역 5년 이하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고요,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징역 2년 이하'에요.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헌문란행위는 직권남용죄 따위의 법률구성요건으로 도저히 환원될 수가 없습니다. 뇌물죄를 적용한다해도 사정이 조금 더 나아질 뿐,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건 여전합니다.


(2016년 11월 14일 상황을 기준으로 작성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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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가능한거 아니냐는 말이 많은데, 유일무이한 헌재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노무현 건)에 따르면 대략 다음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1)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중에 다시 박탈하는 효과를 가지며,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공백은 물론이고 국론 분열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있다는 점에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함

2) 대통령의 법 위반 정도가 대통령의 직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여야 함

3) 파면결정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져야 함

4)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에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여야 함


간단히 말해, 헌법/법률 위반한 정도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직을 박탈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략 드는 생각으로는, 단순히 대통령기록물 유출을 넘어 '중대한' '국가기밀' 누설에 대통령이 관여한 점이 명백해야 '중대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증거인데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공개 발언이 증거였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한다는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번 건은 달라 보입니다. 당사자들은 죄다 대통령 관여사실은 부인할테니까요. 그래서 결국 탄핵이 되려면 (최종판결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사로 증거를 확보한 이후여야 가능할거 같습니다. 국회가 이걸 밝히는건 어렵고요.


법무부장관이 대통령 수사 불가를 천명한 이상, 검찰 수사에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죠. 특검을 하더라도 청와대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뭔가 밝혀낼텐데 그게 용이치는 않을거고, 특검법 통과되고 구성하고 수사하고 하다보면 대통령 임기 몇 개월 안남긴 시점일 겁니다.


물론 상식적으로야 대통령과 무관하게 청와대 문서가 유출되었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탄핵심판도 재판인 이상, 증거는 명백해야 한다는 거죠. 정치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냐의 여부와는 별개로 헌재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겁니다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에헴~"). 결국, 섣불리 탄핵했다가 헌재 가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거고요. 현재 헌재 재판관 구성상 9명 중 6명이 찬성한다는 건 더더욱...


또한 탄핵소추 의결 요건이 국회의원 3분의2라서 일단 이거부터 어렵고요. 어쩌다 의결되어도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인 탄핵소추위원장은 권성동 법사위원장(새누리당)이고,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 @.@


암튼 지금 시점에서는 일단 탄핵 쪽은 생각하지 말고 다른 해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2016년 10월 26일 기준으로 작성된 글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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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에 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몇가지 사실



1. 유럽연합 기본권헌장(EU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은 사형제 폐지를 명시하고 있다.

- "제2조 2항 누구도 사형을 선고받거나 사형집행을 당해서는 안된다." 헌장은 아직 법적 효력은 없다. 그 외에도 1983년 유럽이사회가 평화 시기 사형 페지 선택의정서를 통과시켰고, 2002년에는 보편적인 폐지 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2007년 유럽각료회의는 10월 10일을 유럽 사형폐지의 날로 선포했다. 


2.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에서 선결 조건 중 하나가 사형제 폐지였다.

- 터키는 2002년 사형을 폐지했고, 최근 다시 사형제 부활 논의가 나오자, EU에서 '사형제 부활시키면 EU 가입은 국물도 없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3. 한국은 유럽으로부터 범죄인을 인도하려면 사형 집행 유보를 약속해야 한다.

- 2011년 국회는 유럽과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었는데, 이에 따라 유럽에서 인도된 범죄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만 인도할 수 있게 되었다. 범죄 후 유럽으로 도피하면 사형집행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은 어차피 사형제도가 없고, 국내로 인도되면 사형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체포된 범죄자만 사형에 처할 수 있다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4. 여론은 아직 존치가 다소 우세하나, 변호사/형법학자들읔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 여론조사 결과는 폐지가 30%대에서 최고 40% 중반대까지 나온다. 2015년에 변호사들은 폐지에 47%가 찬성했다. 2009년에는 형사법 교수 132명이 사형폐지 성명을 냈다.


5. 국회 과반수 이상, 새누리당 의원들 일부도 사형폐지 쪽 의견이다.

-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는 절반 넘는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 법안에 서명을 했다. 2010년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사형폐지법안을 냈을 때는 10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동참했다. 우리가 이름을 잘 아는 주호영, 유승민, 전재희, 나경원, 정두언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6. 2015년에는 7대 종단 지도자들이 사형제도폐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사형제도폐지특별법의 국회통과를 호소하는 공동성명에 천주교 대주교,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원불교 교정원장 , 천도교 교령, 성균관장,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서명했다.


7.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사형제 합헌 판결을 내렸다. 

- 96년에는 합헌 7 : 위헌 2, 2010년에는 5:4. 참고로, 간통죄는 6:3 (1990), 6:3 (1993), 8:1 (2001), 4:5 (2008), 2:7 (2015)의 과정을 거쳐 결국 폐지되었다.  2013년 기준으로 헌법재판관 8명이 폐지 의견(인사청문회 참조)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사형제 위헌심판이 제기되면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8. 사형이 범죄억제효과(deterrence effect)와 무관하다는 것은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 미국의 범죄관련학회들의 전현직 학회장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8%가 사형제도가 범죄예방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9. 사형을 완전히/실질적으로 폐지하고 있는 국가는 140개 국으로, 전체 국가의 3분의 2가 넘는다. 

- 최근에는 르완다, 토코, 피지, 부룬디, 몽골 등이 동참했다.


10. 세계에서 1년에 10명 이상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10개 국가 뿐이다.

- 중국, 이란, 사우디, 이라크, 미국, 수단, 예맨, 이집트, 소말리아, 요르단이다.


11. 미국에서도 사형제는 쇠퇴하고 있다. 

- 미국은 OECD 국가 중 일본과 더불어 사형집행을 하는 '예외적' 국가지만, 최근에는 집행 건수가 매년 30-40건까지 줄어들었다. 주마다 다른데,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미시간,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 주로 동부나 북부 쪽의 18개 주가 사형제를 폐지했고, 미국 전체 사형집행의 80%는 남부에서 집행된다.


12. 2016년 7월 1일 발표된 미국 민주당 정강정책(platform) 초안에는 사형폐지가 명시되었다. 

- "우리는 잔인하고 비정성적인 처벌의 형태로 입증된 사형을 폐지할 것이다. 사형제는 미국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


13. 미국의 경우 1973년 이후 사형선고 후 무죄방면된 경우가 150명 이상이다. 

- 1973년부터는 1999년까지는 매년 3건 정도, 2000년부터 2011년까지는 매년 5건 정도로 추산한다.


14. 2007년 12월 유엔총회에서는 ‘사형 폐지를 위한 글로벌 집행유예 결의안’ 채택되었다.

- 그 외에도 1989년 유엔총회에서는 ‘사형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제2선택의정서’가 채택되었고, 1998년에는 ‘(구)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mmission) 에서사형제도 반대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15. 사형제는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든다.

- 미국에서 여러 차례 연구조사가 있었는데, 종신형을 운영하는 것보다 사형제 운용하는데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이 그 결과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형제를 운용하는데 오히려 1인당 약 10억원 정도의 비용이 더 든다고 알려져 있다. ($3.07 million 대 $2.01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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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란도 참사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이유>


올란도 참사가 증오범죄라는 점이 드러나고 가운데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들. 일단, 차별과 혐오가 소수자'들'을 향해 번져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일베가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번 사건에 인종혐오, 이슬람혐오, 동성애혐오가 뒤섞여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두번째로, 혐오표현이 증오범죄로 나가는 것은 결코 '단계적'이지 않습니다. 올포트 척도 등이 일종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꼭 그렇게 단선적으로 진화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언제든 단계를 건너뛰어 단번에 대량학살 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역사상 최악의 증오범죄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는 '유태인'들뿐만 아니라, 인종적 소수자, 장애인, 종교적 소수자, 그리고 동성애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적으로 유태인들이 많을 뿐, 희생자 구성은 소수자'들'이었다고 보는게 정확하겠고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가운데는 유태인이나 인종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5천-1만5천명, 장애인 27만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략적인 홀로코스트 희생자 통계: 유태인 5백9십만명, 소련 포로 2-3백만명, 폴란드계 1.8–2백만명, 세르비아계 30-50만명, 장애인 27만명, 루마니아계 9만-22만명 프리메이슨 8만-20만명, 슬로베니아계 2만-2만5천명, 동성애자 5천–1만5천명, 여호와의 증인교도 2천5백-5천명, 스페인 공화주의자들 7천명.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The_Holocaust)


동성애자의 경우에 대략 10만명이 체포되었고, 5만명이 공식적으로 처벌되었으며, 약 5천명에서 1만5천명이 나치캠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점이 확인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동성애 희생자가 독일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2002년이고, 2008년 베를린에는 동성애 희생자 추모비(Memorial to Homosexuals Persecuted Under Nazism)가 건립되었습니다. 2006년 유럽 의회의 호모포비아 반대 결의에는 나치 체제에서 동성애자가 희생되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비 (Memorial to Homosexuals Persecuted Under Nazism (사진 출처: http://www.angloitalianfollowus.com/memorial-gay-lgbt-berlin -> 여기에 추모비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스물스물 세를 키워가고 있는 혐오세력들의 존재를 가벼이 넘길 수 없습니다. 나치는 예외적일 뿐이고, 우리는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요? 나치가 세를 넓혀갈 때만 해도, 나치가 그런 세계적인 악행을 저지를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현재 유럽사회가 사소한 '혐오표현'에도 불관용으로 일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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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제 멘트 때문에 사달이 났네요. 일단 제가 명백히 잘못한 부분도 있고, 또 이해를 구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일은 벌어진 것이고 그래도 해명은 필요할 것 같아서 긴 글을 올립니다.

 

1. SNS에서 “여성들도 이 문제를 남성들에게 설득하려고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저의 멘트가 캡처되어 돌아다니는 점은 심히 유감입니다. 방송에서는 바로 이어서, "여성들은 설득안해도 스스로 느끼고 있는 문제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남성도 여성들이 왜 저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멘트까지 본다면, 여성들이 설득에 실패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강남역 사건 이후의 반응와 여성혐오의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 있는 책임을 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지만, 방송 동영상 전체를 봐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온전히 인정합니다. 사정은 좀 복잡합니다. 제가 말하는 ‘설득’은 여성들이 각자 남성들을 설득을 해야 한다거나, 여성집단이 남성집단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거나, 여성운동이나 페미니즘이 설득을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법사회학 전공자로서, 법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고, 또 없는지를 연구해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결국 ‘설득의 기제’(persuasion mechanisms)가 작동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문제는 언제나 ‘구조적’이고, 구조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말하는 설득의 기제는 학교에서의 시민(인권/평등)교육, 직장내 성희롱/성평등교육, 공공 미디어, 직장문화,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등은 물론이고,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각종 상담기관 또는 고충처리기관(명예고용평등감독관, 성평등상담소 등), 시민사회의 인권상담-구제기관, 국가인권기구의 비강제적 인권구제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득의 기제들은 ‘강제 규제’가 적절히 압박을 가할 때 원활하게 작동합니다. 즉,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적절한 법제도의 구비(여성 문제에 관련해서는 데이트 폭력 문제나 스토킹 문제, 차별금지법 등이 법적 공백상태입니다), 그리고 실무에서의 엄정한 수사와 단호한 처벌이 함께 할 때, 소위 ‘설득의 기제’들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구조적 조건하에서 실제로 ‘설득’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제가 말하는 '설득'은 이런 취지였습니다.

 

3. 실제로 전체 인터뷰에서는 ‘해결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치안대책’에 매몰되면 안되고, 이 사건의 기저에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근절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SNS, 블로그, 기고문 등에서 발언했던 취지와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2에서 언급한) 설득의 기제들과 법적/강제적 규제가 필요함을 하나하나 설명했고요. 특히 ‘교육’의 문제와 ‘차별금지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압박을 통해 결국 남성들이 강남역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어야 하고, 그렇게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전혀 방송되지 않았고, 오로지 ‘설득’부분만 방송되다 보니, 제가 진짜 얘기하고자 하는 취지와 어긋나게 된 것입니다. 


4. 특히, 제가 주어를 '여성'이라고 쓴 바람에 더 오해가 커졌는데, 이 부분은 저의 잘못이고, 이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렇게 말해놓고 맥락을 잘 이해해달라고 요구할 염치는 없습니다. 다만, 위에서 말씀드렸던 바대로 설득의 ‘주체’가 여성이라던가, 설득이 실패한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간곡히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구조적인 기제를 마련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남성들이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을 이해하고 남성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설득’을 말한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그런 남성들이 탄생한 것이고, 그런 구조를 마련해나가야할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이고, 그런 구조를 마련하라는 요구는 국가와 그런 요구를 암묵적으로 묵살해온 남성들에게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 같이 '제도' 설계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문제를 고민해온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수자에게 설득의 책임을 묻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더 교묘한) 차별/혐오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그런 발화의 주인공처럼 비춰진 것에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단순히 저의 ‘실수’였다거나, 모든 문제는 편집일 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안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이 ‘말’로 먹고 사는 사람, 그것이 공중파에서도 방송될 수 있는 사람은 더 큰 책임이 있고요. ‘설득’이라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설득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이 ‘(여성)주체’의 책임을 묻는 뉘앙스가 되면서, 문제의 책임 소재를 혼동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햇습니다. 이 상황에서 공포와 분노를 느끼는 여성들에게 ‘설득’이라는 말이 어떻게 인식될지 몰랐다는 것은, 이 상황에 대한 저의 이해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긴 해명글에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는 부분은 가차 없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간을 두고 반성하면서, 도움주실 분들을 찾아뵙고 조언도 구해볼 생각입니다.

 

6. 사실 저는 인터뷰 요청에 상당히 까다롭게 응하는 편입니다. 일단 가벼운 코멘트조차도 ‘논문’을 쓴 내용에 대해서만 응하고 있고, 신뢰할만한 매체나 기자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응하지 않습니다. SNS에 허접하게 쓴 글이 언론매체에 인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너무 심한 경우에는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특히, '기고'라면 모를까, '구어'로 전화인터뷰를 하는 것은 (오해 없이 써주는) 신뢰할만한 기자가 아니면 거절해 왔습니다. 이번 강남역 사건은 제가 지난 3년 동안 제 모든 역량을 투입해 연구했던 주제인 ‘혐오’와 관련이 되어 있었고,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이런저런 경로로 매스컴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소수자 혐오에 비해 ‘여성’혐오가 특수성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고, ‘여성’문제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넘게 나선 부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분노와 부끄러움이 겹치면서 다소 흥분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들이 부주의를 초래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런 다큐 방송에 나온 것이 처음도 아닙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편집될 수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을 예상해야 할 책임도 있었다고 봅니다. 저의 안일함이 문제를 야기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피디에게 프로그램 전반적인 취지의 설명을 들었을 때, 어떤 인위적인 '해결'과 '화해'를 추구하려는 듯한 아슬아슬한 위험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이전에 <그알> 포맷에 그다지 적합한 소재가 아니라는 생각과 제가 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수용될만한 포맷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그래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는 피디님의 의지에 신뢰감이 느껴졌고, 저도 몇가지 우려를 전달하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방송이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방송을 보니 나름 피디가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많은 노력을 했음이 느껴졌으나, 결국 전반적인 주제의식과 세부 내용에서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저도 거기에 일조했는다는 점에 대한 책임도 통감합니다. (*프로그램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 기사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0343) 그리고, 사실 이 프로그램 외에도 방송국 서너군데에서 이미 관련 영상을 촬영을 한 상태입니다. 제 인식수준의 한계를 알게된 이상 이대로 방송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제 인터뷰 분은 방송되지 않도록 정중히 요청할 예정입니다.

 

7. 그동안 제가 썼던 글과 기고문은 제 블로그(http://transproms.tistory.com/)와 한겨레 21 기고문(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1808.html)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제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혐오표현/범죄를 연구해온 입장에서, 이 문제가 '혐오범죄' 여부로 환원되어서는 안되고, 특히 경찰과 정부가 '여성혐오범죄가 아님'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비판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강남역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를 부각시켜야한 일념으로 진심을 다해 노력해왔습니다. 부디 그런 맥락에서 저의 잘못과 실수를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캡쳐된 화면을 보고 분노하셨던 분들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제가 그동안 해온 이야기들에 근거하여, 저의 발언을 ‘맥락’적으로 이해해주신 분들, 질문을 해서 해명의 기회를 주신 분들, 그리고 제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분들에 대해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특히, @ANGIEINKOR님이 “저는 이번 사건 후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증언'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설득'은 아닌 것은 맞지만, ‘왜 이 증언들을 사회가 부정하고, 공감하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하셨다면 더 와닿았을 듯 합니다.”라고 지적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정확하게 저의 오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배움과 반성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성수 드림

 

 

 

 * 후속조치: SBS 말고, 4개의 매체에서 이미 촬영을 해간 상태였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제 인터뷰 분량을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3개 매체는 고맙게도 수용을 해주셨는데, MBC <PD수첩>에서는 오늘 방송이라 시간관계상 제 인터뷰 분량을 삭제하기가 어렵다는 말씀하시면서, 어느 부분이 편집되어 나갔는지까지 일일히 확인해서 보내주셨습니다. 다행히 제가 말하고 싶은 맥락이 잘 반영되어서 편집된 것 같고, 시간관계상 삭제 요청은 무리인 것 같아서, 불가피하게 제 인터뷰가 방송에는 나갈 겁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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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anspr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