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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글쓰기에서의 표절문제와 인용방법

by transproms 2012. 8. 13.

 

* 표절문제는 글쓰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숙지되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아래 글은 기본적으로 '학술적 글쓰기'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학생들 쓰는 숙제(에세이, 보고서 등등)는 물론이고,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글을 쓸 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학생들을 위해서 표절과 인용문제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학년 수업시간에는 첫 주에 이것을 강의하고 시작하곤 합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아는 저작권에 대한 지식과 학계/출판계의 관례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지만, 표절/인용문제는 명확한 법률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례와 윤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라, 저의 '의견'에 가까운 부분도 있다는 점을 참고해서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실제로 관례와 윤리는 지속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의견 있는 분들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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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에서의 표절문제와 인용방법



I. 표절의 유형


1. 내용 표절 (아이디어 표절)


원저자의 고유한 생각, 논리, 표현, 자료, 분석틀 모방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출처가 부정확한 경우를 말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안에 부딪히면 판단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어디까지가 고유한 생각인지가 것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공식이나 이론이라면 정확히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피카고라스 저서를 찾아서 페이지까지 인용할 필요는 없다물론 여기서도 어디까지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최종적 판단은 학계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내용표절을 할 때 표현까지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에는 표절판정이 어렵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의 표절은 대부분 내용표절과 표현표절이 동시에 이루어진 경우였다. 최소한의 성의교묘함도 없이 표현과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런 표절은 적발하기도 쉽고 판정하기도 쉽다해당 학문에 문외한이어도형광펜만 있으면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해 가며 표절을 적발해 낼 수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만 바꿨을 뿐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진정한 의미의 '내용 표절'은 잡아내기 쉽지 않고, 또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학계의 전문적 판단에 맡겨져야 할 것이다.


※ 일반적 지식의 인용

일반적인 지식을 진술할 때 특정 저작물을 인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는 정도의 학계의 일반적인 진술은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은 아닐 것이다.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이라는 사실은 분명 다른 사람의 문헌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알게 된 것일테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진술을 쓰면서 굳이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임을 알게 해준) 특정문헌을 인용할 필요는 없다. 만약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라고 쓰면서, A라는 문헌을 인용한다면, 그 일반적 지식이 마치 A의 독창적인 생각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칸트철학을 독일관념론이라고 규정한 중요한 문헌이 있다면 인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이라고 적혀 있는 문헌은 한국에만 수천 건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어떤 문헌을 인용하는 것은 유의미하고, 어떤 문헌을 인용하면 무가치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학문적 능력이기도 하다. 예컨대,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는 진술을 인용할 때 'B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용했다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B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진술에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인용했다면 경우에 따라 유의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적 지식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은 해당 학계의 전문가가 판단해야할 문제다. 일반적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헌을 인용했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인용', '바람직하지 않은 인용' 정도에 그치겠지만,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특정 저자의 독창적인 지식인데도 (일반적 지식이라고 오인하고) 인용표시를 안했다면 그것은 '표절'이 된다. 따라서, 숙련되지 않은 연구자라면, "일반적 지식인지 아닌지 여부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단 인용한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표절'이 되는 것보단, '바람직하지 않은 인용'을 하는 것이 실리면에서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인용이 많은 것도 논문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표현 표절 (텍스트 표절)


출처표시 없이 특정 문장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나, 출처표시는 했지만 인용부호 없이 다른 저술의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표절 시비가 제기되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아니라, 일부 문장을 베꼈을 뿐이다라고 변명을 하는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적절한 인용없이 남의 문장을 베끼면 표절이다. 타인의 연구성과의 내용도 함부로 베끼면 안되겠지만, 표현도 함부로 가져와서는 안된다. 오로지 정확한 인용과 인용부호를 사용하는 조건 하에서만, 내용이건 표현이건 옮겨올 수 있다. 


교육부의 논문표절 가이드라인 모형”(2008)에서는 여섯 단어가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08)에서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에 표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섯 단어또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남의 글을 베낀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또한 출처표시를 하더라도 인용부호 없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안된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려면, 인용부호로 묶거나 왼쪽여백을 줘서 원문임을 분명히 표시하거나, 아니면 표현을 완전히 바꿔줘야 한다. 전자를 직접 인용’, 후자를 간접 인용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한다.


※ 참고: '양'에 의한 표절판단의 문제점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단어나 문장의 '양'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분량의 문장이 일치했더라도 흔히 사용되는 뻔한 표현이라면 무조건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섯 단어'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는 기준이라고 보여지며, 여섯 단어가 일치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맥락을 보고 표절인지 여부를 판단하는게 좋다고 본다. 서울대 지침처럼 '두 문장' 정도의 넉넉한(?) 기준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좀 더 줄어든다. 어쨌거나 '여섯 단어' 또는 '두 문장'이라는 일정한 '양'의 중복이 있었다면, 일단 표절이 의심된다는 '신호'라고 봐야 하며, 그것이 표절인지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은 해당분야 전문가가 해당 표현이 사용된 전후맥락을 면밀히 살핀 이후에 판정할 수 있을 것이다. 



3. 자기표절 (중복게재, 이중게재)


자기표절이란 본인이 저술한 출판물의 전체 또는 일부를 재활용하여 저술한 경우를 말한다. 표절은 남의 글이나 생각을 훔친다는 뜻인데, 자기가 자기 글을 훔친다는 것은 어색하다. 물론, '자기표절'(self-plagiarism)이라는 말이 쓰이긴 하지만, '중복게재', '이중게재', '자기 글의 재활용', '무리한 활용'(이준웅 교수 제안), "자신의 연구성과 사용"(서울대 연구윤리지침) 또는 "텍스트의 재활용" (고려대 교원연구윤리지침) 등이 부르는 것이 문제의 본질에 좀 더 부합하는 표현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왜 자기 글을 재활용하는 것을 문제삼는지가 중요하다. '이유'가 명확해야 문제의 판단도 정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재활용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판사의 출판권을 침해할 수 있다. 한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으면 출판사가 보통 3년의 계약기간 동안 출판권을 갖게 되는데, 이 기간 중에 그 책의 저자가 책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출판하면 출판권을 침해하게 된다. 책 전체가 아니라 일부라면 개별적인 경우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업적이 중복계산될 수 있다. 교수가 대학에서 업적 평가를 받을 때 동일한 논문을 이곳저곳에 발표하여 중복하여 업적을 인정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편집자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출판사, 저널, 신문 등의) 편집자는 저자의 글이 처음 발표되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게재한다. 그런데 만약 출판하려는 글이 이전에 다른 곳에서 발표가 되었던 글이라면, 편집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만약 처음 발표되는 글이 아니라면 편집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상의해야 한다하지만 이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기 글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과거의 자신의 글의 출처를 되도록 정확히 표시하는 것이 학문의 누적적 발전이나 독자들에 대한 정보제공 차원에서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본인이 쓴 학술지 논문이나 신문 칼럼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재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관례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저작권 관념이 엄격한 미국에서는 이 경우에도 해당 학술지 편집장이나 해당 신문에 양해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 출판물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양해를 구했음을 책에 표시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았으나, 유럽출판물이나 한국출판물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만, 정보제공 차원에서 원출처는 적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 학위논문 재출간과 논문 일부의 중복게재 문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 글 말미에 다시 정리했음). 또한 보고서를 논문/저서로 재출간하거나, 논문을 비학술적 용도(대중적인 잡지나 소식지 등에 논문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것 등)로 재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출처 표시는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고서나 비학술적 잡지는 대개 업적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업적 중복계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4. 기타 표절 문제


① 재인용 표절

원저자가 인용한 출처(2차 출처)를 인용하면서 2차 출처를 밝히지 않고, 1차 출처만 표시한 경우를 말한다그러니까재인용은 말 그대로 남이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는 것이다이 때는 원저 출처와 재인용한 출처를 모두 명시해야 한다.


 과도한 분량의 인용

출처를 인용하긴 했지만, 너무 많은 분량을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된다. 옮겨온 분량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출처표시를 하고 인용부호까지 달았어도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이 옮겨올 경우 (출처표시를 했더라도) 남의 글이지 자기 글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타인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면서 추임새만 넣어서 새로운 논문을 장성하는 것은 용인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일까? 그 지나침’의 정도에 대한 확고한 관례도 없고, 각종 연구윤리지침에도 특별한 규정이 없지만, 대략 한 단락 이상을 연속해서 그대로 옮겨올 때는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 이보다 많은 분량을 옮겨오고 싶다면, 원저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짧은 글이라도 글 전체(: 칼럼 한 편)을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때 양해는 원저자와 원출판사(신문사)에 구해야 하고, 연락은 출판사가 해도 되고 저자가 직접 해도 무방하다. 이 때 그 양해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떤 맥락에 옮겨다 놓는지, 그리고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지 아니면 일부 수정할 것인지 등등을 명확히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5.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라고 해서 원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성격에 따라서 조금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 칼럼이라면, 인용한 출처의 페이지는 생략하고 저자의 이름만 괄호 안에 넣고 인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칼럼 분량에서 정식인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트위터 등 SNS도 언론칼럼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문칼럼이건 트위터건,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길 때는 꼭 인용부호표시를 해서 내 표현이 아님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용부호(따옴표) 안에 들어간 타인의 말을 함부로 수정하면 안된다. 트위터에서는 RT 등 트위터에서 약속된 표시도 정확히 지켜줘야 한다. 반면 블로그의 경우에는 학술논문과 달리 생각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분량도 충분하고 편집상의 문제도 없기 때문에 원칙대로 인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용을 하더라도 저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맥락으로 인용을 하면 곤란하다. 글이 놓여 있는 맥락에 따라, 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끼리 댓글로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는 비록 그것이 공개된 상태라고 해도 신문기사화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굳이 하고 싶다면 양해를 구하는게 맞다. 트위터의 경우는 사적인 성격도 있고 공적인 성격도 있어 조금 애매하지만, 트윗글을 기사화할 때는 원칙적으로 저자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그 트윗글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서 인용하는게 좋을 것이다.



II. 표절/인용 예제


표절과 인용 문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다음의 원문을 놓고 어떻게 인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문)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사례1: 간접인용

 

     인용)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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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쪽 참조


 

원문과 표현은 다르지만, 자기 생각이 아니니까 위와 같이 인용을 해야 한다. 이것을 '간접인용'이라고 한다. 내용은 원문을 참조한 것이지만, 표현은 바꿔서 인용하는 것이다. 표현이 다르니 인용부호는 안달아도 되지만, 출처표시까지 빠지면 표절이 된다. (*인용방식은 다양하지만, 아래에서는 각주를 다는 방식으로 해보았다.) 원문과 표현을 다르게 하는 것을 '재진술' 또는 '환언'(paraphrasing)이라고 한다. 따옴표를 달아서 직접인용을 하지 않는 한, (안용표시를 하더라도) 반드시 표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초학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를 하는 부분이며, 항상 자기 문장으로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 챕터 자체의 인용 방법

 종종, 특정 챕터 자체가 통째로 다른 사람의 특정 저술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챕터의 제목 자체에 아예 인용각주를 달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권하고 싶은 방식은 아니다. 어떻게든 여러 문헌을 참조하여 자신의 글로 재정리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더 바람직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재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10쪽 짜리 특정논문에 의존해서 5쪽 분량의 내용을 집필하는 경우에는 소제목에 "아래의 내용은 ~~의 논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식의 각주를 달되, 그 5쪽의 내용은 원저작과는 다른 구성과 표현으로 요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까지 완전히 다르긴 어렵지만 최소한 표현은 직접인용이 아닌 이상 자기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고등학교 때 하던 '줄거리 요약'과 비슷하다. 줄거리요약을 하더라도 원문의 중요한 표현 몇가지를 추출해서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해서는 안된다. 자기표현을 사용해야 하며, 꼭 필요한 원문의 구절들은 '직접인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 글쓰기 시간에 잘못 배운 습관들이 학문의 길에 접어둔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아서 문제가 더 커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례2: 문장 중 직접인용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에 주목해 봐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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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쪽 참조.

 


이 부분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원문(홍성수의 글)에서 착안한 것이기 때문에 인용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부분은 표현이 원문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렇게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까지 옮겨오는 경우에는 원문의 표현을 인용부호(큰따옴표)를 달아 정확히 표시해 줘야 한다. 자기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다. 그게 아니라면, 사례1)에서처럼 자신의 표현으로 바꿔써야(paraphrasing) 한다. 올바른 인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해 홍성수는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고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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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이렇게 인용표시를 해야, 원저자의 내용을 옮겨왔다는 점과 어떤 표현이 필자의 것이고 어떤 표현이 원저자의 것인지를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 



사례3: 문장 중 직접인용


사례2에서처럼 인용표시 없이 함부로 원문 표현을 그대로 옮겨오면 안되지만, 중요하지 않은 단어 몇 개 정도는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도하면 안된다. 앞서 소개한 바대로 표절 지침에서는 6단어 또는 2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라고 보기도 한다. 설사 독창적인 문장이 아니더라도, 연속해서 일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걸 거꾸로 얘기하면 6단어/2문장 이하는 괜찮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6단어/2문장 이하라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원문)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 출처: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

 



 인용)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역시 입장의 동일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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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

 


이렇게 인용해줘야 한다. “입장의 동일함은 단 두 단어지만 원저의 맥락상 사태의 핵심을 꿰뚫는 키워드이다. 따라서 따옴표로 표시하여 나의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표시를 안했다면 당연히 표절이고, 인용표시는 했더라도 인용부호가 생략되었다면 표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아무리 독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고 해도 6단어 이상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 될 수 있고, 2단어라고 해도 독창적이고 중요한 표현이면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절의 '양'이 절대적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사례4: 직접인용

 

       인용)

흔히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대형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책임자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홍성수는 체계이론에 기반해서 이렇게 말한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1)

 

 특히 구조적인 참사 뿐만 아니라, 살인사건 같이 개인범죄 같이 보이는 범죄에도 특정 개인의 문제로 지적하지 않는 이유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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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특정 개인는 필자가 강조한 것이다.

 

 

아예 문장을 그대로 옮겨올 때는 이렇게 단락을 바꿔서 인용하는 것이 좋다. 따옴표 표시를 해야 하고, 따옴표 안에 들어간 원문의 문장은 조사, 문장부호, 강조표시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바꾸거나 생략해서는 안된다. 중간에 생략한 경우에는 중략이라고 하거나 말줄임표 ()로 표시해야 한다. 원문에 없는 문장부호(감탄사 등)를 임의로 넣는다거나, 굵은 글씨로 강조표시를 해도 안된다.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엇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표시하고, 원저자가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정했다는 점을 표시해줘야 한다.

 


사례5: 재인용

 


     원문)

, 루만의 사회이론의 대상인 사회적 체계는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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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54

 

이 부분을 인용을 하고 싶은데, 1차 문헌인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확인하지 못했고, 홍성수의 논문(2차 문헌)만 보고 인용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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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54쪽에서 재인용.

 


복잡하지만 이렇게 인용해줘야 한다. 원출처를 확인해 보긴 했지만, 번역표현이 홍성수의 번역을 참조해서 한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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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번역표현은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54쪽을 참고하여 약간 수정했다.

 


다만, 일치하는 번역표현이 너무 뻔한 경우에는, 굳이 번역할 때 참고한 문헌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참고: 재인용의 윤리

학술논문에서 재인용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가능하면 재인용된 1차 문헌을 직접 읽어 보고 그걸로 직접 인용하는 것이 좋다. 즉, 위의 경우라면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읽어보고 독일어원문을 직접 번역해서 인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경험인데, 논문을 쓸 때, 재인용하기 싫어서 도서관에서 오래된 1차 문헌을 찾는데 반나절을 보내고, 재인용된 구절 부분을 (앞뒤로) 읽느라 일주일을 보낸 경우도 있다. 그러고 나서야, 1차 문헌을 직접 인용한 한 줄 짜리 각주를 달 수 있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고된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그냥 재인용처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재인용 관련해서 실수를 하는 경우는 '메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컴퓨터로 논문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좋은 구절이 나오면 컴퓨터 파일에 저장을 해놓곤 하는데, 그걸 나중에 활용하다보면 자기가 써먹고 있는 문구가 인용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재인용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메모도 내가 직접 본 것인지, 내가 본 문헌에서 재인용된 것인지를 잘 구분해서 정리해 놓아야 한다. 이래저래 정확히 인용해 가며 논문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 참고: 저작권과 표절

'저작권'과 '표절'은 다른 개념이다. 저작권은 저술에 대한 '권리'이고, '표절'은 학계에서 논의되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물론 서로 연관성은 있지만 그 판단기준과 절차는 다른 경우도 많다.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려면 형법의 범죄구성요건이나 민사법의 법리를 충족해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표절보다는 범위가 작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형법상 저작권 침해가 처벌되려면, '고의'가 있어야 하고 피해자의 '고소'도 있어야 하며,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으려면, 고의.과실. 침해, 손해, 침해-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입증되어야 하는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표절보다 범위가 작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학계에서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판결문이나 입법/행정의 목적을 위한 내부자료, 정치연설 등과 관련해서는 저작권이 제한되지만, 학계의 윤리적 관점에서는 이것을 무단으로 활용할 경우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정부의 공적 문서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경우에도 정확히 인용을 해줘야한다. 만약 이 때 아무런 인용 없이 자신의 순수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쓰게 되면 (대개의 경우 저작권 침해가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윤리적으로는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학위논문 일부의 재출간 문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학위논문을 활용하여 학술논문을 쓰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두 편이나 세 편까지는 무방하다는 식의 기계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쟁점 역시 문제가 되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의 학위논문은 기본적으로 '미간행논문'(unpublished dissertations)이다. 즉 '출판물'(publications)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판'이라는 뜻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는 뜻인데, 학위논문은 대개 본인과 지도교수가 한 부씩 나눠 갖고, 그 대학의 도서관에 한 부 비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간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출판된 것이 아니니,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몇 차례 재활용하건 간에 문제될 것이 없다심지어 필자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대학원생 논문쓰기워크숍에서는 박사논문을 쪼개서 여러 편의 논문을 만드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강의를 들어본 적도 있다. 각 논문이 서로 중복되지 않고 자기완결성을 갖는 한, 몇 편으로 쪼개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업적평가나 임용심사 시에 학위논문과 학위논문을 활용해 출판된 논문을 중복해서 업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이것은 개별 학교의 업적평가기준에 따르면 된다. 요즘은 학위논문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공개되거나 학술대회 자료집 원문 파일이 홈페이지에 탑재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것을 출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사학위논문이 단행본으로 이미 '출판'된 경우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출판물'을 다시 '출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문제가 되는 이유에 근거하여 접근하면 문제에 대한 판단이 어렵지 않다. 한편, 자신의 학위논문을 재활용해서 논문으로 내는 경우에, 그 사실을 밝혀야 하는지, 즉 인용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고한 관례가 없긴 하지만, 한 챕터를 그대로 논문으로 출판하거나 활용한 분량이 많을 경우에는 정보제공차원에서 인용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학술대회 발표문을 논문으로 출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학술대회 발표문은 출판문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예외적으로 이공계에서 학술대회 proceedings이 그대로 publications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 경우는 달리 봐야 할 것임) 그 학술대회 발표장에 가서야 '학술대회 자료집'(proceedings)으로 받아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술대회 발표문을 저널에 다시 싣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고: 중복게재와 자기 글의 재활용


중복게재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출판권을 침해하거나 업적 부풀리기를 하면 안되겠지만, 본인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에 속한다. 일례로 외국저널에 실린 영어논문을 한국어저널에 한국논문으로 다시 내면 '자기표절'이라고 하는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쪽 저널 편집자의 양해만 구한다면 얼마든지 중복게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석학들이 이렇게 독일어, 영어로 영국-독일 저널에 각각 동시에 게재하는 사례는 꽤 많다. 독자층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법사회학연구'에 '베버의 근대법'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사회학연구'라는 저널의 편집자가 '근대법과 사회학' 특집호를 내면서, 그 논문을 게재하길 원할 수가 있다. 법사회학연구와 사회학연구의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베버에 관련된 논문이 꼭 들어가야 균형이 맞는 상황인데, 그 논문 외에 다른 논문을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법사회학연구'에 실렸던 논문을 '사회학연구'에 재게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 양쪽 저널의 편집자에게 이 사실을 명확히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하며, '사회학연구'의 논문에 이전에 발표되어던 논문이라는 사실이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업적이 중복계산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연구윤리규정에는 이와 관련한 조항이 있다.

 

고려대학교 교원연구윤리지침 (2007) 

제31조 제2항 이미 출간된 논문을 인지할 수 없는 다른 독자군을 위하여 중복게재를 하는 경우에는 두 학술지의 편집인이 중복게재에 대해 동의해야 하고저자는 학술지의 독자들에게 동일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한 언어로 출간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다른 학술지에 출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10) 

제9조 (중복게재ㆍ출간의 제한) ① 연구자는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확한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동일 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중복하여 게재ㆍ출간하여서는 아니 된다. 연구 데이터나 문장이 일부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게재ㆍ출간을 할 수 있다. 다만,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표시 또는 인용표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전공 분야의 특성과 해당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1. 학위논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별개의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2. 연구용역 보고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3. 이미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

4. 동일한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동일 또는 다른 언어로 게재ㆍ출간하면서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

5. 학술지에 짧은 서간논문(letter, brief communication 등)을 게재한 후 이를 긴 논문으로 바꾸어 게재ㆍ출간하거나, 연구 데이터, 해석 또는 자세한 연구수행과정의 정보 등을 추가하여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6.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및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저자의 승인 하에 다른 편저자에 의해 선택, 편집되어 선집(anthology)의 형태로 출간되거나, 학술지의 특집호에 게재되는 경우

7.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또는 저서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교양서, 대중잡지 등 비학술용(非學術用) 출판물에 쉽게 풀어 써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8. 그 밖에 위 각 호에 준하는 게재ㆍ출간으로서 학문적 진실성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경우

③ 이미 발표된 연구결과를 지식재산권으로 등록하는 것은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과 관계없이 허용된다.



지금까지 얘기는 한 논문을 두 개 이상의 학술지에 중복게재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이미 출간된 자신의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다른 논문에서 '재활용'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의 생각을 훔쳤다'는 일반적인 의미의 '표절'이 아니라, '저작권 침해'다. 법적으로, 자신이 투고한 논문의 저작권이 학술지에 이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법적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른바 '논문 저작권 이양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신의 논문이라도 저작권은 학술지가 소유하는 것인데, 그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다른 논문에 재활용했다면 원래 논문이 실렸던 학술지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논문 일부의 '재활용'을 '타인의 논문을 베낀 경우'만큼 엄격하게 문제삼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즉, 타인의 논문이라면 짧은 분량이라도 적절한 인용없이 활용하면 안되겠지만, 자신의 글에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연속 6글자'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지 않고서는 연속해서 6글자가 동일한 '우연'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전제인데,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우연'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논문은 이전 연구와 '연속성'을 갖고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 저자가 자신의 논문A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새로운 논문B를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일부 내용이 중복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저작권 측면에서 봐도, A학술지의 글이 B학술지에 통째로 게재된다면 A학술지의 저작권이 침해된 것일 수 있겠지만, A학술지에 게재된 자신의 논문의 일부 내용을  B학술지의 자신의 논문에서 재활용했다고 해서, A학술지의 저작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저작권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관계로 권위있는 얘기를 하긴 어렵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저작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한편, 일부 내용을 재활용하긴 했지만, 독립적인 내용을 가진 별개의 논문이라면 업적 중복계산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글을 재활용할 경우 출처표시를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문이 어떻게 누적적으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글 인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비윤리적이라고 봐야하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내용의 재활용을 과도하게 문제 삼는 것은 연구자의 학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논문이 맞다면, 일정한 수준의 자기논문 재활용은 인용이 없더라도 (저작권 침해의 수준이 아닌 이상)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일정한 분량 이상을 그대로 재활용할 때에는, 자신의 학문적 궤적을 보여주는 정보제공 차원에서 인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이다. 정리하자면, 


1)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논문에서 자신의 과거 논문의 일부를 재활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면) 문제되지 않는다. 

2) 단, 재활용한 분량이 일정한 분량을 초과한다면 (독자에 대한 정보제공 차원에서) 인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 연구윤리지침(2008, 2010)은 아예, "한 단락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인용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재사용의 '양'을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하나의 기준으로 참고할 만하다. 


제8조 (자신의 연구성과 사용)

①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원칙적으로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 연구데이터 및 문장을 사용하여야 하고, 이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연구 결과물을 담아야 한다.

②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당해 연구의 독자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데이터는 정확한 출처 표시와 함께 사용하여야 하며, 당해 연구에서 처음 발표하는 것처럼 제시해서는 아니 된다. 과거에 작성한 논문에서 최소한 한 단락 이상,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와 인용 표시를 하여야 한다.

③ 연구자는 이미 발표된 자신의 연구성과가 이미 교과서 또는 공개적으로 출간된 데이터 파일에 게재되어 일반적 지식으로 통용되는 경우에는 그 연구성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자기표절에 관한 문제에 관련해서는, 표절 문제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인재 교수 ["연구부정행위로서 표절과 올바른 글쓰기",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8년 4월]의 견해에 약간의 이견이 있다. 이 교수는 자기표절이 "기만에 속하며 연구의 어느 수준에서나 용인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나, 필자는 "경우에 따라 용인될 수 있으며, 타인표절의 경우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하고 싶다. 여하튼, 자기논문 재활용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여서 학계에서 좀 더 활발한 공론이 형성되고 이에 대한 관례가 확립되었으면 한다.



표절/인용에 대한 참고 사이트: 기타 표절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연구윤리정보센터에 가보면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http://www.c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