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102호, 20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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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인권개념을 넘어서

이상돈, <인권법: 현대사회에서 인권패러다임의 변화와 인권의 실현>(세창출판사, 2005)>



1. 인권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담론화된지도 이제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은 ‘인권’을 이야기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인권’이라는 담론이 갖는 의미를 차분하게 평가해 볼 시점이 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상돈 교수의 <인권법>이 다루고 있는 몇 가지 쟁점들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쟁점은 “인권의 보편성”과 “근대적 인권개념”에 대한 의문이고(제1부), 두 번째는 그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해서 “인권개념의 재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고(제2부, 제3부), 세 번째는 그런 이해를 토대로 어떻게 “인권실현의 모델을 만들 것인가”(제4부) 하는 것이다.


2.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

 이 책은 먼저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에서부터 시작한다.(제1부) 근대적 인권개념은 18-19세기 근대시민혁명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권이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고정불변하는 권리이며(보편성), 이것은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받아서는 안되며(불가침), 누구에게 양도할 수도 없는(불가양) 권리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근대적 인권사상’이 ‘정치적 소외, ’사회경제적 소외‘, ’문화적 소외‘라는 세가지 실천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정치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민주주의적 주권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며, 사회경제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사회적 약자의 실질적 자유보장에 취약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소외란 근대적 인권개념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타문화권 고유의 이념을 폭력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 인권개념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개념이다. 현대적 인권문제가 인권과 주권의 충돌, 사회·경제적 권리이나 문화적 권리의 위상 문제, 문화적 상대주의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의 세 가지 소외를 낳는) 근대적 인권개념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권은 보편적이다’, ‘인권은 불가침, 불가양의 천부적 권리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기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그 수사학적 기능은 중세봉건권력과 맞서 싸웠던 부르주아혁명 시기에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의 접근권은 ‘천부인권’이다”라는 근거로 장애인 엘리베이터 설치를 주장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위력적인 논거가 된다. 하지만 점심을 굶는 어린이의 인권, 최소한의 주거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독거노인의 인권 또한 천부인권라면,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천부인권보다도 장애인 접근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당장 서울 시내에서 수만명의 어린이가 점심을 굶고 있는데, 수억의 예산을 들여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비를 하는 것은 어떠한 타당성이 있는가? 절대적인 권리가 이렇게 어느 하나를 위해 어느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합당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소위 ‘근대적 인권개념’은 적절한 이론적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적 인권개념은 재화가 풍부한 서구선진국의 이해관계를 편파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전체 국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줄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재화를 가진 선진국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확보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재화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어떤 인권부터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장애인접근권과 최소한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충돌할 때, 후진국은 어느 한 권리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서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권’을 부당하게 ‘선택적’으로만 실현하는 것일 수 있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러한 인권침해국에 대한 ‘응징’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어이없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근대적 인권개념으로는 이러한 난관에 대해 어떠한 답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저 ‘인권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다’는 ‘공문구’만을 남발할 뿐이다.
 

3. 인권개념의 새로운 모색과 대안

 그렇다면 근대적 인권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권개념의 재정립은 인권학과 인권운동의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린다. 저자는 하버마스(J. Habermas)의 토론정치이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제2부), 인권개념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한다.(제3부) 그것은 한마디로 “인권개념은 실체가 아니라 (대화적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107쪽)는 명제이다. 즉, 저자는 인권이 원래부터 보편적으로 일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인권담론에 대한 공정한 공론경쟁을 통해 비로소 ‘절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권과 주권,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하버마스의 후기 법-정치이론을 응용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보면, ‘인권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명제는 기각되며, 대신 인권담론의 ‘형성절차’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점으로 부각된다. 어떠한 인권개념도 선험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되지 않으며, 모든 가치들은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론을 통해 재해석되고, 그러한 합리적 절차의 결과물로서 인권은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권개념을 유동적으로 만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권개념을 역동적인 개념으로 재정립하는 장점도 있다. 특히 인권담론의 해석주체로서의 인권담지자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자칫 시혜적이고 후견적(paternalistic)이기 쉬운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제4부에서 이러한 새로운 인권개념에 기반했을 때, 다양한 인권의 실현기제들이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지를 논한다. 인권이 절차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 절차를 세심하게 가다듬는게 당면과제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 국가기구의 역할, 그리고 시민적 공론을 형성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여기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중간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의사소통촉매기능’(241쪽)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실천적 제안이다.


4. 해결되지 않은 과제

 이 책은 근대적 인권개념의 한계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인권개념을 이론적으로 도출해 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인권실현기제까지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이른바 ‘자기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인권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대개 사회학적 현상분석이나 철학적 고찰에 머물거나, 법제도에 대한 피상적 접근을 넘어서지 못하며, 학제간 연구라고 해도 대개 여러 학문분과의 시각이 나열되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인권관련출판이 이미 ‘거대산업화’되어 버린 서구에서도 이러한 종합적 고찰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주장이 안고 있는 ‘실천적 난점’이다. 형사피의자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재소자의 인권을 주장할 때, 장애인의 인권을 옹호할 때, “인권은 보편적이고 불가침의 권리이다”라는 모토만큼 선명한 주장은 없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주장이 사회적 인정을 받는데 크게 기여한다. 대부분의 인권교재가 인권의 절대성/보편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테다. 하지만 이 책은 실천적 우위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권개념의 절차적 재구성을 주장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완성도는 높지만, 그 주장이 시민사회에서 동의를 얻기에는 또다른 난관이 존재한다. 성숙하고 건강한 공론영역이 존재하고, 그것이 정치권력을 적절하게 견제하는 사회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근대적 인권개념’을 포기하고, 인권의 다원성, 절차성 등을 주장하는 것은 실천적 차원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척박한 공론현실을 고려해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 공론에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재소자에 대한 성폭력문제가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강타하고 있다. 당신은 재소자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근거로 항의를 조직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재소자의 인권을 어떻게 정의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주제로, 공론영역에서의 사회적 합의절차를 밟아나가는 지리한 노정부터 차근차근 시작할 것인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된 우리 인권현실이 이제 그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어느 선택지를 택하건 그 치열한 고민은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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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44호 200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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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보편적 가치인가?
서평 : 임홍빈, 인권의 이념과 아시아가치론 (아연출판부, 2003)

홍 성 수

‘인권의 보편성’의 문제는 인권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건 실천적으로 접근하건 언제나 부딪히게 되는 문제이다. 여기서 ‘인권의 보편성’이란 인권은 시공간에 의해 한정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함을 말한다. 세계인권선언의 “인류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며…”라는 구절과 1993년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에서의 “모든 인권은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과 상호관련성을 갖는다.”는 구절은 이러한 인권의 보편적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는 이러한 인권의 보편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는 초월적 또는 초문화적 인권은 존재하지 않으며, 합의된 바도 없으므로 어떠한 문화도 자신의 이념을 다른 문화에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그런 점에서 서구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보편성 주장은 서구제국주의의 오만과 편견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먼저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다 보면, 인권규범이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권규범의 지역적-시대적 특수성을 강조하다 보면, 인권의 보편성 자체를 부정하는 상대주의로 기울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 문제를 경유하지 않고, 여러 인권문제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접근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인권의 보편성 문제는 북한인권문제, 이라크인권문제, 일부 동아시아국가의 인권침해문제, 한국의 국가보안법문제 등에서 핵심적인 논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를 둘러싼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논쟁이다. 아시아적 가치론은 아시아에는 정치·경제·문화의 영역에서 서양과는 다른 유교적 가치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서양의 인권개념은 보편적일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서구에서는 서구의 인권은 보편적인 권리라는 점을 주장하면서, 비서구사회에 대한 서구화를 정당한 것으로 관철시키려고 한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정치·경제·문화적 개입을 감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국가의 일부 지도자와 학자들은 ‘아시아적 가치’의 고유한 가치를 주장하면서, 서구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비판적이다.

 [인권의 이념과 아시아가치론]은 이러한 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전문 학술서이다. 아시아가치론과 관련된 논점은 실로 광범위하다. 서구적 근대성과 근대적 이성의 한계를 둘러싼 논쟁이 기본에 깔려 있고, 자연법 논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문화적 다원주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등의 논의가 아시아가치론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주장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저자는 아시아적 가치관을 인류의 소중한 규범적 자산으로 보는데 인색하지 않지만, 아시아적 가치를 서구의 인권이념을 대체하는 대안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미 종교다원주의로 진입한 우리 현실에서 유교적 가치에 대한 강조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 중에서 특정한 관점만을 선택적으로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은 우리의 민주적 법치국가의 도덕적 기초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유교적 가치관은 농업사회의 혈연공동체에서 나온 일원론적이고 통합주의적 규범체계이며, 계층적으로 규정된 의무중심의 덕윤리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교적 가치관은 근대 이후 형성된 시민사회나 근대적 국가체제의 제도들과 상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보편적 인권개념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는 아시아가치론자들이 인권철학의 발원지가 서구라는 이유로 보편적 인권개념을 배척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인권은 그 발생적 기원을 초월해서 정당화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인권은 국민국가 체제 내 뿐만 아니라 세계사회의 정치적 의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의 이러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정당화는 독일의 철학자 회페(O. Höffe)와 하버마스(J. Habermas)의 인권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책보다 좀더 쉽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아시아가치론과 인권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문헌으로는 성공회대 인권평화연구소에서 엮은 [동아시아 인권의 새로운 탐색](삼인, 2002)과 여러 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아시아적 가치](전통과 현대, 1998)가 있다. 전자에는 1부와 2부에서는 주로 아시아적 가치론과 인권에 관한 일반론을 3부에서는 월드컵과 관련하여 민족주의와 인권에 관한 논문이 실려 있다. 후자에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싱가폴의 리콴유와 한국의 김대중이 펼쳐낸 흥미로운 논쟁부터 시작하여,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의 아시아적 가치와 한국의 정치·경제 문제, 그리고 논쟁에 대한 평가논문까지 모두 10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물론 한 사회의 특정한 가치관을 ‘보편성’으로 격상시켜 세계지배를 모색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보편적인 권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고전적 자연법론의 입장에서처럼 인권의 보편성을 고정불변하게 미리 주어진 어떤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서 만약 보편성을 다양한 문화적 차이가 서로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확인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로 재해석한다면, 인권의 보편성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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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34호, 200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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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살펴본 인권

서평 : 스기하라/석인선 역, <인권의 역사>(한울, 1995)
         차병직,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지산, 2003)

홍 성 수

1. 인권사에서 시작해 보는 인권공부

인권이 21세기의 시대적 화두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며,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인권/인간다움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려는 시도 역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인권을 ‘공부’해보겠다는 나선다면, 상황이 그다지 만만치는 않다. ‘인권’을 제목으로 담고 있는 책은 수없이 많지만, 인권공부를 위한 입문서로 쓸만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권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면, ‘인권사’에서부터 출발해 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어떤 분야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인권’은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인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좋은 입문서가 나와 있다.

2. 스기하라의 <인권의 역사>

먼저 소개할 책은 <인권의 역사>라는 책이다.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 스기하라가 저술하고 석인선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좋은 인권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인권은 처절한 민중의 투쟁 속에서 쟁취되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먼저 근대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적 인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혁명이 인권보장의 특색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프랑스혁명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적 인권이 인류에 던져준 ‘빛’으로, 국가통치에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는 점, 그럼으로써 봉건체제와 결별할 수 있게 해 준 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예술, 과학에서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근대적 인권의 ‘빛’과 함께 ‘그림자’도 동시에 조명한다. 그 ‘그림자’란 ‘자유’의 보장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노동계약의 자유’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오히려 약화시켰고, ‘경제활동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오히려 악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근대시민혁명 이후에도 끊임없이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싸웠고,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헌법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복지국가가 새로운 국가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참정권이나 강화되고, 기존의 자유권이나 청구권적 기본권도 더욱 강력하게 보장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답게 인권보장의 전면적 장해물로서 전쟁과 군비확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실질적 인권의 보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인권보장의 과제로 민주주의의 강화, 사인간의 인권보장, 외국인의 인권보장, 여성의 인권, 어린이의 인권문제, 국제적 인권보장 등을 거론하고 있고, 소위 ‘새로운 인권’(제3세대인권)의 과제로 평화적 생존권, 환경권, 알 권리, 프라이버시권, 교육의 자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1992년에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제들은 우리에게 전혀 ‘낡은 과제’가 아니다.

3. 차병직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차병직 변호사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라는 책이다. 불과 126쪽 짜리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정보는 만만치 않다. 책의 앞부분은 인권의 어원부터 시작해서, 인권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권에 대한 현대적 의미와 과제, 그리고 해결방안을 정리하고 있다. 내용면에서 학술적인 엄밀함은 부족하지만, 입문서로서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짧지만 담을 것은 다 담았고,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인권의 과제도 중요한 논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책의 절반이 ‘부록’인데, 부록에서는 세계의 주요 인권선언을 번역해 놓았다.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인신보호법, 권리장전, 버지니아 권리선언, 미국독립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세계인권선언까지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주요 인권선언을 총 망라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인권선언을 단순히 ‘문서’가 아니라, 민중들의 처절한 투쟁 속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인권의 역사>를 읽으면서, 해당 역사적 문서들을 함께 읽어 간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이 두 권의 책은 워낙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인권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분량도 짧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인권의 역사를 좀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서가 없다는 점이다. 이 두 책으로 입문한 독자들이 좀더 읽을 만한 인권사 책은 현재로서는 마땅한 것이 없다. 인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수십 권의 서양서적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인권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듯 하다. 그래도 인권사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꼬뮨까지>(까치, 1994)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사를 다룬 역사책이지만, 근대시민혁명 자체가 인권보장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의 인권보장에 대해서는 장호순 교수의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개마고원, 1998)가 읽을 만 하다. 이 책은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나타난 인권관련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요약하고, 그 의미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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