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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11.14)

by transproms 2016. 11. 14.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보다는 대통령직 사퇴: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다.


일전에 탄핵이 왜 현실적으로 어려운지 긴 길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참조: http://transproms.tistory.com/211) 이유는 다섯 가지. 1) 의회 탄핵소추 어려움, 2) 증거 확보 어려움 (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 3) 현재 헌재재판관 성향상 탄핵 인용 쉽지 않음, 4) 검사 역할인 탄핵소추위원이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법사위원장), 5) 탄핵소추되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황교안. 이 중 일부가 해소되었습니다. 1)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의결 합류가 가시화되었고, 2) 검찰이 뒤늦게나마 수사를 해서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고, 5)은 야당 추천 총리가 임명되면 해결가능하겠죠. 4)는 여전히 문제지만(다행히 권 위원장은 비박이긴 함), 3)은 여론이 너무 안 좋아, 헌법재판소도 쉽게 기각하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설사 '현실적'인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해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님), 저는 여전히 탄핵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사회의 '사법화' 문제에 대한 저의 일관된 비판적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탄핵의 사유는 헌법/법률의 위반입니다. 헌법 위반 여부가 다뤄지는 것이 맞지만, 탄핵소추/심판 국면으로 가면, 실질적으로는 실정법률 위반을 판단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법재판은 그 정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판사/검사로 살아온 헌법재판관들은 넓은 의미의 '헌법 위반'보다는 실정법률의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상 최악의 '정치의 사법화'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단순히 실정법을 어겼는지 여부인가요? 시민들은 거리에서 '헌법 위반이다',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이런 언명들이 가장 문제를 직관적으로 정확히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법적'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정치적' 문제가 법의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왜곡되고 축소되는 것이죠. 법이 잘못되었거나 법률가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법은 원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사 헌재가 탄핵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문에 담긴 내용은 국민들이 원래 제기했던 문제들과 한참 동떨어진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찌어찌하여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갔다고 칩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국민들은 철저히 '구경꾼'으로 전락합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게 잘 용납이 안됩니다. 국민들이 이미 대통령직 사퇴를 명했고, 국회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했는데, 왜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을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차제에 헌재가 탄핵 최종심판권을 갖고 있도록 한 헌법조항 자체에 의구심이 있습니다) 노무현 탄핵 때는 느닷없이 감행된 탄핵소추에 대해 저항하는 의미에서 거리에 나선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시민들이 대통령직 사퇴를 명한 상태에서 추가로 더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탄핵소추가 기각되면 말할 것도 없고, 인용되더라도 문제입니다. 탄핵소추가 인용되면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이 됩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헌법재판소가 위상을 뽐내겠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헌재가 주인공이 되나요?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이 주체였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헌재 결정만 기다리다가, 헌재 결정이 나면 환호를 지르게 되는 모습은 웬지 서글픕니다. 국민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을 다 벌여놓고, 객체로 전락하는 모양새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거리에서 외쳤던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구호가, 탄핵 국면이 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인용결정을 내려라'는 구호라 바뀌어야 합니다. 얼마나 수세적이고 비주체적입니까.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작금의 문제는 헌법이념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정치적 문제로 직접 시민들 손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법판단'으로 협소화되어, 헌재의 엘리트재판관들의 판단에 내맡겨진다는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물론 탄핵에 완전히 반대하는건 아닙니다. 대통령직 사퇴가 쉽지 않게 되면 탄핵이라는 수단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직까지는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아직은 탄핵을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여전히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대통령직 사퇴나 탄핵과는 별개로 특검은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특검도 결국 법의 판단에 맡기자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형사화'되는 것에도 일정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엄청난 헌정유린사태가 징역 5년 이하 짜리 직권남용죄로 환원된다는게 도무지 말이 안됩니다. 물론 특검이 수사를 하면 적극적으로 뇌물죄 등을 적용하면 좀 더 낫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법적 한계는 여전합니다. 특검이 수사를 해도 죄목은 문제의 본질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형량도 지은 죄에 비해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겹게 기소를 해도 법원에서 일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요.

문제의 본질에 부합하는 진상규명/처리 방식은 세월호특조위와 같은 '박근혜 게이트 특별조사위원회' 또는 5공특위와 같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조치일 겁니다. 세월호 관련자들이 사법적 단죄를 받았지만 세월호특조위가 여전히 필요했듯이, 박근혜 게이트 관련자들이 다 처벌받아도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잘못은 단순히 '형법상 유죄' 그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정법상 유죄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역사의 반복을 막으려면 철저하게 이 모든 진상을 규명해야겠죠.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형사처벌' 이외의 방식으로 (일부 과거사 사건을 제외하고)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강제수사를 해서 증거를 찾고, 기소해서 법정에 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소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문제인 사실관계들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수사'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만, 신뢰를 잃은 검찰보다는 특검에 사건을 맡겨야합니다. 지금까지 미적미적거리다가 언론과 시민들이 다 문제를 파헤치고 나니까, 그 때서야 사후약방문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에 공이 넘어간다는 것은 헌재로 공이 넘어가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입니다.

요약: 1) 문제를 '사법판단'으로 왜곡/협소화시키는 탄핵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보되어야 함 2) 이와 별개로 특검은 빨리 추진해야 함.


* 저는 이 사건이 결국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기미를 보이면서, 전두환/노태우 재판을 떠올렸는데요. 전/노는 실제 잘못한 것과 사법적 죄목이 비교적 일치했습니다. 내란, 살인 등등... 그래서 당시 구호였던 '전/노를 법정으로!'는 사태의 본질과 비교적 잘 맞는 구호였죠. 실정법상으로도 최고형을 선고가 가능했었고요. 또 그 때는 사법적 단죄 말고 정치적으로 뭘 더 할 게 없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잘못한 것과 범죄화될 수 있는 것과의 간극은 너무 큽니다. 직권남용죄와 기밀누설죄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검찰' 수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직권남용죄의 법정형 '징역 5년 이하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고요,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징역 2년 이하'에요.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헌문란행위는 직권남용죄 따위의 법률구성요건으로 도저히 환원될 수가 없습니다. 뇌물죄를 적용한다해도 사정이 조금 더 나아질 뿐,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건 여전합니다.


(2016년 11월 14일 상황을 기준으로 작성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