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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헌재는 헌재 폐지를 원치 않는다면 탄핵결정을 내릴 것 - 사법행태적 접근

by transproms 2016. 11. 22.

<헌재는 헌재 폐지를 원치 않는다면 탄핵결정을 내릴 것 - 사법행태적 접근>


저는 줄곧 탄핵에 비판적이었지만, 막상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재가 인용하는건 문제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즉, 가능하면 탄핵보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좀 더 낫다는 것일 뿐, 일각의 우려처럼 헌재가 보수적이어서 기각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헌재가 여론 압박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이걸 좀 더 이론적으로 파헤쳐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사법행태(judicial behaviour)적 접근은 사법결정에 영향을 주는 여러 행태주의적 요소들을 분석하는 것인데요. 그 요소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헌재의 조직적 위상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헌재결정에 대한 행태주의적 접근은 몇차례 시도된 바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미증유의 사태라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건 아니지만 대략 가설을 세워보면, 헌법재판소의 조직적 위상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거라는 겁니다.


만약 지금의 국민들의 분노가 계속 이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헌재는 결정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만약 기각 결정을 하다면, 그건 국민(+국회)의 강력한 의사에 반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헌재 폐지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죠. 헌재의 기능이 대법원으로 흡수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독립적인 헌법재판소 모델이 세계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선택한 헌정체제 중 하나라고 본다면, 그런 식의 개선 논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대법원은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으로 흡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고요. 폐지 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헌재의 위상이나 국민적 신뢰가 무너질 수 있고요.

최소한 '헌재의 탄핵심판권 박탈' 논의는 나올겁니다. 실제로 탄핵심판권을 헌재가 갖고 있는게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 비슷한 제도를 둔 독일, 오스트리아 등도 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의회에서 처리합니다. 제 개인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 탄핵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며, 이를 굳이 헌법재판소가 사후심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의회에서 처리를 하려면 양원제로 두 번 정도 의결하는 신중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회제도 개편 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부분이고요. 국회 3분의 2가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결정을 내리는 국민소환제도 같은 것이 탄핵의 취지에 더욱 적절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오늘 탄핵소추의결을 하고, 다음 주에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가정해보면, 다음 주 광화문 집회에선 다들 '헌법재판소를 폐지하자'는 구호가 나오지 않을까요? 헌재의 조직적 위상의 유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헌재 재판관들의 입장에서, 기각 결정은 상당히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헌재가 국민의사와 국회의사가 불일치할 때 그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한 적은 있았지만, 이번처럼 강력한 국민의사와 국회의사가 일치한 경우에 그것을 뒤집는 결정을 내린 적은 거의 없었고요. 소수자 사안 같은 경우에도 국민 지지가 과반에 이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지가 확보되었을 때를 기다려 '뒤집기'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이번처럼 국민+국회 의사가 압도적인 경우에 뒤집기를 시도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 는한, 헌재는 그렇게 '용감한' 기관은 결코 아니고, 이번 경우에도 그런 선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거꾸로 진짜 용감해야 할 때 꼬리를 내렸던 안타까운 장면은 꽤 있었죠 ㅠ)

만에 하나 기각결정이 나온다면 (폐지 얘기는 그냥 거론되는 수준일 것이고) 헌재의 위상, 구성, 기능이 원점에서 시민사회/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될겁니다. 그건 나름대로 성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재가 기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사퇴에 대한 논의는 계속할 수 있고 오히려 헌재 덕분에 더 큰 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탄핵절차에 들어갔으면 헌재가 탄핵결정을 내려주는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겠지만요.

그래서 어차피 탄핵소추의결을 하기로 했으면 광장의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 빨리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분노를 얼마나 끈질기에 -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 이어가는가가 탄핵심판에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정대혼란을 막으려면 하루 빨리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데, 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키도 역시 국민들이 쥐고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