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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비’ 논란과 열악한 병영현실

by transproms 2013. 3. 27.

 ‘비’ 논란과 열악한 병영현실



가수 비(정지훈)가 열애중이라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비가 연예병사(홍보지원대원)로 복무한 300일 동안 71일의 휴가와 외박을 썼다는 것이다. “‘나흘에 한번꼴 외박’ 군인 맞아?”라는 제목이 달린 뉴스가 나가자, 거의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 뒤따랐다. 이렇게 자주 휴가 가는 군인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꼼꼼히 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71일 중 업무상 외박이 44일이었는데, 이것은 연예병사의 성격상 불가피한 ‘출장’(스튜디오 녹음, 위문열차 출연 등)으로, 쉬거나 놀러 다닌 것이 아니라 군복무상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27일이 일반적인 외박·휴가인데, 이것은 일반 병사보다 며칠 많은 수준이다. 그 정도가 ‘특혜’라고 알려진 문제의 실체다.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다니는 연예병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고, 포상휴가는 이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것이 군 당국의 해명이다.


비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탓하고 군 당국의 입장을 변호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이 해프닝은 거꾸로 일반 병사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처우를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군대에 가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외부와 단절된 열악한 내무반 생활이다. 병사들은 일과 시간 이후나 휴일에도 작업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쉴 때도 여러 병사들과 한 내무반에서 생활해야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게 일해서 매달 받는 돈이 10만원 남짓. 재소자들이 노역을 하고 받는 직업장려금(하루 최대 550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병사들은 대개 학교나 직장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한다. 경력 단절로 인한 불이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2011년을 기준으로 폭행 혐의로 입건까지 된 사건만 1500건이 넘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군 관련 진정사건도 매년 늘고 있다. 여러 차례 지적된 군 의료체계도 문제다. 군 의료예산은 전체 국방예산의 1%가 채 안 되며, 사병 건강검진 예산은 1인당 6000원이라고 한다.


이런 병영현실에서, 누군가 편한 군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가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워 가며 녹음을 했다고 하지만, 내무반 생활보다는 훨씬 편해 보였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열악한 병영현실이다. 일반 사병들의 내무반 생활이 지낼 만했다면 비가 공무상 외출을 얼마나 했건 무관심했을 것이다. 힘든 업무를 수행하고 난 뒤 충분한 휴가가 보상으로 주어졌다면 비의 포상휴가에 그리 민감해할 이유가 없었다. 일과 시간 후나 휴일에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이 충족됐다면, 군대에서도 연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비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맛있는 식사,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 충분한 휴식 시간과 휴가, 적정한 임금, 적절한 의료서비스 등 한마디로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군대’였다면 연예병사들의 처우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론이 악화하자 군 당국은 재빨리 비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발표했다. 사안들을 보아하니 엄격하게 보면 규정 위반일지 모르지만, 징계까지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일탈행위로 돌리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하다. 하지만 문제는 비의 특혜가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열악한 처우다. 분노의 화살은 비가 아니라 국가를 향해야 옳다. 비에게 왜 특혜를 주었느냐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겨우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합당하냐고 국가에 항의해야 할 일이다.


한겨레신문, 2013.1.7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