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11월 5일)은 런던이 아주 시끌벅적 했습니다. Bonfire Night이라고 불리는 모닥불/불꽃놀이 행사가 곳곳에서 있었고, 런던 시내에서는 Anonymous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Million Mask March’도 있었습니다. 영국에서의 시위는 대개 평화롭게 진행되곤 하는데, 이날은 유난히 과격한 시위가 벌어져서 경찰과 시위대 중 부상자도 다수 나오고, 일부 시위대가 경찰차를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 보수당의 긴축 정책, 복지 축소, 저소득자 증세 등에 대한 저항이 점점 드세지는 느낌입니다.


-> 격렬했던 시위 이모저모는 가디언 기사 링크.

-> Million Mask March London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링크

->  Million Mask Moverment 공식 홈페이지 링크 


잘 알려진 바와 같이, Anonymous 그룹은 사이버 검열/감시에 반대하는 국제 해킹 그룹입니다.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시위, 북한 우리민족끼리 해킹 등에 지지/관여했고, 최근에는 KKK단의 명단 해킹으로 화제가 되고 있죠. 여기서 주도하는 세계 동시다발 시위, Million Mask March은 11월 5일에 Guy Fawkes의 폭발물 테러 음모 실패 기념하는 Bonfire Night (일명, Guy Fawkes Night)에 열리고, 시위대는 일명 Guy Fawkes Mask를 쓰고 나타납니다.


* 이것이 일명, Guy Fawkes Mask.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uy_Fawkes_mask#Anonymous


여하튼 영국에 산 기간이 도합 5년이 넘었지만, Bonfire Night은 처음 가봤습니다. 모닥불 행사는 아주 썰렁했습니다. 그냥 장작 쌓아놓고 불 붙이는 정도...^^;;


* Wimbledon Park에서 열린 Bonfire 행사. 보시다시피 그냥 이렇게 장작을 태웁니다. 그냥 줄창 태웁니다. 아주 썰렁한 의식인데, 저걸 30분 가까이 지켜봅니다. 영국 사람들은 참을성이 참 많습니다 ^^;;


불꽃놀이 역시 뭐 그냥 저냥.... 그렇습니다. 여의도 불꽃축제 같은거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하간, 영국 사람들은 그닥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참 잘 노는 것 같습니다 ㅎㅎ


* 윔블던 지역 South Park Gardens에서 열린 불꽃놀이. 표가 1천장이었는데, 매진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원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매진되어서 낙담했는데 오히려 잘 되었죠. 1인당 10파운드였는데 20파운드 굳었습니다^^


참고로, 11/5 Bonfire Night(또는 Guy Fawkes Night)의 유래. 1605년 Guy Fawkes가 제임스 1세 왕을 살해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려다가 검거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인데요. "폭스의 계획이 실패했다!”(Guy Fawkes foiled!)라고 외치면서, 제임스1세 왕의 건재를 축하하는 모닥불 놀이를 하는거죠. 국경일은 아니고요. 예전에는 집집마다 장작을 모아서 자기 집에서 태웠던 모양인데, 지금은 공원에 모여서 장작더미를 태우고, 불꽃놀이를 하는 행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 폭스 밀짚 인형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다만, 폭스의 출신 학교인 St. Peter’s school (York에 있는 세계에서 4번째로 오래된 학교)에서는 Guy Fawkes Night을 기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깨알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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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당대표 선거: 코빈 돌풍에 대한 몇가지 메모

- 낡은 좌파구호인가?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매력적인 새로운 정치인가?

 

1. 미국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영국에서는 긴축반대, 재국유화, 무상대학교육, 부자증세 등을 내건 정통좌파 제레미 코빈이 연일 미디어를 강타하고 있음. 샌더스는 결국 힐러리한테 질 가능성이 높지만, 코빈은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음.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연 선두 질주 중. 이변이 없는 한 무사히 당대표로 선출될 듯.

 

2. 변수는 New Labour을 이끌었던 세력들이 총동원되어 견제에 나서고 있다는 점. 토니 블레어가 직접 나서서 코빈은 안된다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고, 당시 내각을 이끌었던 주요 멤버들인 Alan Johnson, Jack Straw, Alastair Campbell 등까지 나서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음. 특히 당내에서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가 관심거리였는데, 며칠 전 코빈의 당선은 노동당을 집권정당이 아니라 반대하는 정당으로 만들 것이라며 코빈 비판을 거든 상황.

 

3. 노동당 의원 중에는 코빈 지지세력이 거의 없지만, 노동당 당대표 선거방식은 코빈에게 유리하게 되어 이음 이번 노동당 당대표 선거인단은 당원 30만명, 등록지지자(3파운드 내고 선거 참여) 12만명, 노동조합 연계 선거인단 19만명 등 총 61만명. 지난 총선 이후 무려 105천명의 당원이 새로 가입했고, 12만 명이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등록할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운 상황. 특히 12만 명의 등록지지자 숫자는 SNS 등을 통해 젊은 층에서 코빈지지를 위해 대거 참여한 결과. 일부 보수신문에서 “3파운드 내고 코빈을 당선시켜서 노동당을 망하게 하자고 선동하여 일부 위장세력들이 등록한 것으로 추정되나 그리 유의미한 숫자는 아닌 듯. 참고로 최근 노동당은 노조 연계 선거인단 가중치(3분의 1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가중치 부여)제도가 폐지되어, 노조 영향력이 다소 줄었음.

 

4. 당 내에서는 코빈에 대한 견제가 심하지만, 당 외부에서는 젊은이들의 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음. 또한 윌킨슨(Richard Wilkinson)27명의 영국 대학 교수들이 가디언에 편지를 보내, “코빈의 정책은 구노동당정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라며 공개지지를 선언했고, 35명의 경제학자들이 코빈의 긴축 반대 등의 경제정책이 합리적(sensible)이라고 공개지지 선언.

 

5. 제러미 코빈은 66세로 영국에서 득세하는 젊은 정치인도 아니고, 블레어나 카메론처럼 비디오형 달변가도 아님. 물론 트럼프처럼 기행을 일삼는 것도 아님. 코빈 열풍은 1990년대 이후 신노동당과 보수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됨. 특히, 보수당 정책에 대한 반발임과 동시에, 노조와의 결별, 시장주의, 지구화, 공공부문 축소 등으로 구노동당의 색채를 벗어던진 블레어의 New Labour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음. 영국을 더 이상 더 불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시민들, 특히 젊은층의 지지가 반영된 결과. 긴축, 공공부문 축소, 복지 삭감, 반이민정책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보수당정권에 맞서는 대안이 블레어식 중도정치일 수는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6. 하지만,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다음 총선에서 집권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불투명. 보수에서 코빈을 쉬운 상대로 여기고 있는 것도 이해못할 바가 아님. 세련된 중도정책으로 노동당 혁신에 성공한 블레어는 생각보다 매우 위력적인 존재였음. 1979년부텨 1997년까지 보수당 장기집권을 저지한 것이 바로 블레어의 New Labour. 199441세의 나이에 노동당 당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는 1992년만 해도 271석을 얻는데 그쳤던 노동당을 5년 만에 418석을 차지하는 집권여당으로 변신시키고 이후 두 번을 더 집권하여 2010년까지 노동당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던 장본인. 당시, New Labour가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는 신문사 지지(newspaper endorsements)를 봐도 알 수 있는데, 1950년 이후 줄곧 보수당을 지지해왔던 중도보수지 Times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는 노동당을 지지했고, 대처 시절에는 보수당 지지였던 '1등 신문'(^^;;) Sun도 블레어 시절에는 항상 노동당 지지, 2015년에는 극우정당 UKIP을 지지했던 Daily Express2001년에는 노동당을 지지했을 정도. 잉글랜드의 중도층(현재 런던을 제외한 잉글랜드 대부분의 지역은 보수당이 석권한 상태)을 잡아야 집권이 가능한다는 블레어 세력의 확신은 이러한 대성공의 경험을 바탕에 둔 것. 그들은 아마 진심으로 80-90년대 노동당 암흑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임.

 

7. 물론, 불평등 심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영국의 현실에서 여전히 이러한 블레어식 중도정치가 먹힐지도 역시 미지수임. 결국 유권자들이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가에 달려 있을터인데.... 예컨대 철도 재국유화라는 정책이 낡은 좌파정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일자리도 창출하고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는 것임. '긴축 반대'라는 수세적인 구호가 현실의 고단한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할 것임. 코빈의 정책이 낡은 좌파 구호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할 때 현재의 인기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 듯. 최소한 현재까지는 후자 쪽의 기대를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임은 분명함!


"제레미 코빈: 당대표가 되면, 노동당을 대표하여 이라크전에 대해 사과하겠다" (가디언 기사 링크): ㅎㅎ 이거 참 재미있는 한 수. 코빈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는 토니 블레어 등 노동당 주류의 최대 약점은 바로 '이라크전'. 반면, 당시 '전쟁반대운동'을 맨 앞에서 이끌면서 토니 블레어에게 반기를 들었던 코빈은 이라크 전에 관한 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 중 한 명. 저 같으면, "토니 블레어는 이라크전 책임질 생각이나 하셔~"라고 말할 것 같은데, 코빈은 "내가 당대표로서 노동당을 대표하여 사과하겠다"라고 절묘한 한 수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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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참패 이후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반드(Ed Miliband)가 사퇴를 했고, 최근 노동당 당수 선거절차가 개시되었는데,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현재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코빈은 '강성 좌파'(hard left)로 분류되는 인물로서, 벌써부터 노동당 내 우파들의 견제가 요란합니다. 아예 전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직접 나서서, '구식 좌파 접근법'(old-fashioned left-wing approach)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코빈의 당선이야말로 보수당이 원하는 것(Tory preference)이라고 강력히 경고! 이에 대한 ‘1등 신문’ Sun의 언제나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블래어 폭탄 투하. 좌파 코빈을 맹렬히 비판하다” (Blair Bomb, He blasts leftie Corbyn). 


문제의 인물, 제레미 코빈은 블레어 정부 시절 ‘테러와의 전쟁’(아프카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반대의 선봉에 섰었던 인물. 이라크전을 반대했던 노동당 국회의원 12인 명 중 한 명이며, 노동당 내 반블레어 진영의 대표자였죠. 반전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Lindsey German(번역서: 여성과 마르스크주의, 여성해방의 정치학), 20세기 영국/유럽의 대표적인 신좌파 정치인인 Tony Ben(2014년 작고) 등과 함께, '전쟁중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링크된 인디펜던트지 기사에 소개된 제레비 코빈의 주요 정책은 1) 핵무기 반대, 2) 아일랜드 재통일, 3) 테러리스트와의 대화 추진, 4) 대학 무상교육, 5) 부자 과세, 6) 긴축 반대, 7) 철도/가스/전기 등 재국유화, 8) 시리아 폭격 반대 등. (기사 링크)


과연 그가 반대세력의 견제를 뚫고 무사히 노동당 당수가 될 수 있을지... 30-40대 '젊은이'들이 득실득실한 영국 정치판에서,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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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eillance powers: New law needed, says terror watchdog / BBC

http://www.bbc.co.uk/news/uk-33092894


기사 내용 요약: David Cameron 영국 총리가 경찰과 정보기관의 온라인 감시를 강화하는 테러방지법들(Anti-terrorist laws)을 개정하고 싶어서 David Anderson에게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는데, 보고서 결과가 총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왔음. 참고로, 이 사안은 보수당-자민당과의 연정 때는 자민당 반대로 밀어붙이지 못한 사안이지만, 이번에 단독집권으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는데... 암초를 만난 겁니다.

 

보고서 내용은 여기 참조: https://terrorismlegislationreviewer.independent.gov.uk/

 

테러방지법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보고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제가 눈여겨본 또 다른 포인트는 영국에서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가 활용되는 방식. 영국에서는 논란이 많은 문제가 생기면, 독립위원회나 권위자/전문가에게 보고서 작성을 의뢰하곤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정부가 의뢰한 보고서의 결과가 정부의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런 위원회/전문가가 정부 눈치를 안보고 말그대로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이죠. 이번에도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은 David Anderson 변호사는 정부가 원하는대로 보고서를 작성해주지 않았죠. 당장 Article 19 같은 인권단체들이 "앤더슨 보고서의 권고를 수용하라"고 나섰고, 정부는 곤혹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보수당은 밀어 붙일 태세지만요...;;

 

지난 번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부결된 후에는 스미스 위원회(Smith Commission)가 구성되었습니다. 2014Cameron 총리는 Kelvin Smith에게 스코틀랜드 분권에 대한 검토를 의뢰한 것입니다. 자기 편 사람이 아니라, 무당파 상원의원이자,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BBC Governor를 역임한 스코트랜드의 대표적인 명망가에게 중책을 맡긴 거죠. 이 위원회의 최종 보고결과의 상당 부분은 보수당의 총선정책에 반영되었고요. 아마 이 보고서 내용 그대로 개혁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참조: https://www.smith-commission.scot/)

 

이런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은 위원회/전문가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특히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갖게 됩니다. 앤더슨도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관련 문서나 경찰, 정보기관, 검찰, 공무원, 장차관 등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접근(a very high degree of access)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법률가, 법관, 언론인, 정치인 등의 의견도 충분히 청취했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이런 위원회/전문가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자문기구이자, 사회적 협의기구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이런 위원회나 연구용역의 결과물에는 그 책임자의 이름을 명시됩니다. 테러방지법 보고서는 Anderson's Report라고 명명되었고, 스코틀랜드 분권정책 보고서에는 Smith Commission Report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렇게 책임자의 이름을 붙여서 responsibility를 부여하는 것이죠. 이 보고서의 이름은 그대로 역사에 영원히 남는거니까요.

 

영국은 의견 대립이 심하거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이런 독립 위원회/전문가를 활용하곤 합니다. 이러한 자문기구가 독립적이고 책임있게 운영되고 또 그 결과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걸 움직이는 힘은 법/제도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문화, 사회문화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물론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위원회 보고서처럼 보고서의 권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앤더슨 보고서처럼 의뢰한 당사자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각종 자문기구, 위원회, 사회협약기구, 정부용역보고서가 형식적으로야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그 권위가 존중되지도 않고요. 그런 일을 맡길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모적인 의견대립이 해소되지 못하고 허공을 멤도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영국의 정부 보고서(연구용역 보고서 포함)의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저도 관심분야에서 영국 정부보고서가 큰 도움이 된 적이 많았습니다. 관련 논점을 워낙 잘 정리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런 '월척' 하나를 잡으면 그 다음 연구가 술술술~ 풀리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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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정치쇼, 영국 여왕 국회 개원 연설 (Queen's Speech)



2015년 5월 27일, 영국 여왕 의회 개원 연설 (Queen's Speech)이 거행되었다. 의회 개원 행사(State Opening,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의회 개원은 곧 행정부가 일을 시작하는 것과 동일)의 하이라이트는 여왕이 의원들 앞에서 주요 입법/정책과제를 발표하는 연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읽지만, 내용은 정부여당에서 작성하는 것이다."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


여왕의 연설 중 거의 모든 문장은 “나의 정부는 ~~을 할 것이다”(My government will ~)로 시작된다. “나의 정부”라니 ^^;; (여왕의 연설 전문 링크) 이 때 발표된 입법/정책 과제들을 놓고, 1년간 의회가 토론을 벌이고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여왕의 연설은 귀족원에서 거행되며, 귀족원, 평민원 의원들 뿐만 아니라, 판사, 대사 등의 손님도 초대된다. 영국의 3대 권력인 군주, 귀족원, 평민원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이 연설은 단순히 낭독식이 아니라, 다양한 의식을 통해 영국 의회의 전통을 보여주는 정치‘쇼’다. BBC는 '여왕의 연설'이라는 이 거대한 정치쇼를 "영국 의회 개원 행사에서 가장 영국적인 장면"(the most British bits)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쇼 자체가 영국 의회 정치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의회 개막행사는 16세기에 기원을 두고 있고, 지금과 같은 세레모니는 1852년부터라고 한다. 여왕의 연설 행사는 대략 이런 순서로 진행된다.



1. 여왕이 오기 전에 의회 지하실을 수색한다

여왕이 도착하기 전에 여왕의 호위병(Yeomen of the Guard)이 폭발물이 있는지 살펴본다. 이것은 영국 가톨릭 교도들이 제임스 1세와 의회를 폭발하려는 시도(Guy Fawkes’s gunpowder plot of 1605)를 재현하는 것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쇼’이고 아마 실제 보안점검은 별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호위병들의 수색 장면. 나름 진지하다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2. 여왕이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왕궁에 의원을 인질로 잡아 놓는다

여왕이 버킹검궁을 나서기 전에 하원의원 중 한 명을 버킹겅궁에 인질로 잡아 놓는다. 여왕이 의회에 갔다가 다시 궁에 돌아올 때가지 감금하는데, 이것은 의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찰스 1세 때부터의 전통이라고 한다. 의회에 출두한 왕이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의원 한 명을 인질로 붙잡아두는 것이다. 오늘날 불쌍하게도(?) 인질 역할을 하는 사람은 보통 여당 측 원내 대표단 막내다. 당연히 현직 의원이다. 



3. 드디어 여왕의 의회 출두

여왕은 버킹검궁을 출발하여,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의회의 "군주의 입구"(Sovereign’s Entrance, 빅벤 반대쪽 빅토리아 타워)에 도착한다. 여왕은 왕관(Imperial State Crown)과 제복(Robe of State)을 입고 귀족원 앞자리에 착석한다. (*런던에 오면 다들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하는데, 사실 별 거 없다. 만약 이날을 맞춰서 올수 있다면, 이 흔치 않은 여왕의 행렬이 더 볼만 할 것이다)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의회 출두 중인 여왕. 이 마차의 이름은 "The Diamond Jubilee State Coach". 여왕 80세 생일 기념으로 제작되어 작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신형 마차다. 역사/전통을 활용하여 이야기 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영국스럽게도, 이 마차에는 뉴튼의 사과나무의 일부, 수상 관저의 나무문 일부, 런던탑의 일부, 넬슨제독이 탔던 배의 나무조각 등이 활용되었고, 자동창문, 난방장치, 유압식 완충장치 등 '현대적'인 기술도 접목되었다고... 평소에는 London Mews에 전시되어 있고, 국빈초청을 받아서 가면 여왕하고 함께 탑승해볼 수도 있다고 하니, 탑승해 보고 싶은 분들은 왕실에 국빈초청을 요청해 보시면 되겠다. (*사진 출처: © Press Association, 링크)



의회에 진입하고 있는 여왕 행렬(Royal Procession)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4. 평민원 의원들을 불러온다

여왕은 귀족원에 앉아 있는 상태, 블랙 로드(black rod, 의회에서 여왕의 대리인으로서 귀족원 의원)에게 평민원 의원들을 불러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블랙로드의 면전에서 평민원의 출입문은 굳게 닫힌다. 이것은 군주로부터 독립된 평민원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다.시민대표인 평민원 의원은 군주가 마음대로 오라가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라고나 할가? 블랙로드가 정중하게(!) 3번 노크를 한 후에야 문이 열리고, 블랙 로드는 평민원 의원들에게 여왕이 부른다고 알린다.


아주 진지하게 문을 세 번 두드리고 있는 블랙 로드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평민원에 가서 여왕의 호출을 전하고 있는 블랙 로드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5. 평민원 의원들 귀족원 입실과 여왕 연설

이제 드디어 의원들은 블랙로드를 따라 귀족원으로 향한다. 수상과 야당 당수가 앞장서고, 나머지 의원들이 걸어서 이동한다. 평민원과 귀족원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냥 주욱 걸어가면 된다. 귀족원에 도착한 의원들이 여왕이 있는 자리의 반대편에 서서 연설을 듣는다. 여왕이 연설을 마치고 버킹검 궁으로 떠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의회가 활동을 시작한다. 첫번째 토론 의제는 당연히 "여왕의 연설"에 담긴 내용이다. 



화려한 의자에 착석한 여왕. 왼편에는 남편인 필립 공이 앉아 있고, 오른 편에는 70세가 다 되어가도록 아직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고 다이애나의 전 남편 찰스 공. 영국 역사상 최고령 왕세자 기록을 게속 갱신 중이다 (http://www.bbc.co.uk/news/uk-politics-32894214)


연설 중인 여왕. 전통인지, 여왕이 고령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암튼 저렇게 앉아서 연설을 한다.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연설을 직접 들어보시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 참조. (http://www.bbc.co.uk/news/uk-politics-32894214)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올해로 89세 고령(1926년생)인데도 발음이 또렷하고 당연히 영국 표준 발음을 구사한다. 참고로 영국 표준발음은 흔히 "the Queen's English", "Oxford English", "BBC English" 등을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낭독'할 때 안경을 착용한다. 고령으로 시력이 나빠진 모양이다. 


여왕의 연설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평민원 의원들. David Cameron 수상과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당수 Nick Clegg (오른편), 제1야당인 노동당 당수 Ed Miliband(왼편)가 나란히 서 있다. 2014년 Queen's Speech 사진이라 당시 상황이고, 2015년 총선에서 수상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두 지도자는 총선 참패로 사임한 상태다. 한편, 앞쪽 왼편에 제복을 입은 사람이 평민원 의원들을 모시고 온 블랙로드. (*사진 출처: UK Parliament, 링크)



이번 2015-2016 여왕 연설에서는 총 26개의 입법과제가 발표되었다. 주요 내용은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추진 방안, 이민 통제, 5년간 소득세/부가가치세/연금 인상 금지, 무상보육 확대, 공립학교 확대, NHS 개선, 지방분권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의 안이 담겨 있다. 이걸 가지고 의원들은 1년 동안 치고받고 싸우게 될 것이다.


여왕 연설은 언제나 이런 말과 함께 마무리된다.


Other measures will be laid before you.

My Lords and members of the House of Commons

I pray that the blessing of almighty God may rest upon your counsels.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빌며, 자기가 제시한 법안/정책들에 대한 세부사항은 의원들이 알아서들 하라는 뜻이다 .... @.@


이러한 요란스러운 의식이 의회 전통을 지켜온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불필요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입헌군주제 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Guardian은 여왕 연설을 두고, <이러한 겉치레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링크)>라는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요란스러운 행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여왕 연설'이 - 중립적인 의미에서 - '지상 최대의 정치쇼'라는 것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참조: 상원과 하원의 공식명칭은 귀족원(House of Lords), 평민원(House of Commons)이다. 이 중 선출직인 평민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회이다. 흔히 수상 또는 총리라고 번역되는 정부의 수장(Prime Minister)도 당연히 평민원의 여당 의원(당수)이다. 임명/당연직인 귀족원은 보충적인 역할에 불과하며, 법안 처리를 약간 지연시키는 역할 정도를 한다. 상원(Upper House)과 하원(Lower House)이라는 표현도 사용되지만, 마치 이 두 기관이 동등한 지위를 분담하고 있거나 상원이 더 우위에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공식문서나 언론에서는 언제나 귀족원/평민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런던여행 정보: 런던에 오시면 국회의사당(The Palace of Westminster / Houses of Parliament)은 꼭 가보시길. (참조 링크) 매주 토요일이나 의회가 휴회할 때 방문 가능 (예약 필수). 오디오 투어도 있지만, 가이드 투어가 더 추천할 만하다. 역사 이야기를 곁들여 참 재밌게 잘 설명해준다. 가격이 좀 비싼게 흠 (25파운드 ㅠ) 아무래도 링크한 동영상 등을 참조해서, '여왕 연설'이나 영국 역사를 조금 알고 가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 위에 실린 사진은 마차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2014년 사진이다. 아직 2015년 사진이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의식은 매년 똑같기 때문에 사진도 매년 대동소이하다.


* 참고자료: 이 글이 참조한 자료 목록 
http://www.bbc.co.uk/news/uk-politics-32886236 - Queen's Speech 전체를 간략히 소개한 동영상
http://www.bbc.co.uk/programmes/b00g4vn9 -2015년 의회 개원 행사에 대한 동영상
http://www.theguardian.com/politics/2015/may/27/queens-speech-state-opening-parliament-pomp-guide - 가디언의 Queen's Speech 소개
http://www.parliament.uk/about/how/occasions/stateopening/ - 의회 개원 행사에 대한 의회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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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티카 마살라'가 영국의 국민요리라고?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는 인도의 대표요리인 것 같지만, 인도전통요리는 아니고요. 영국에서 요거트와 크림소스 등을 첨가하여 부드러운 맛으로 개발한 커리요리입니다. 매운 것을 잘 못먹는 영국 사람들 입맛에 맞춘 것이죠.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의 다문화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 유래는 2001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Robin Cook의 일명 '치킨 티카 마살라 연설'. 그는 치킨 티카 마살라야말로, "진정한 영국의 국민 요리"(a true British national dish)이며, 영국이 외부의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예라고 언급. 실제로 '치킨 티카'(닭고기 덩어리)는 인도에서 유래했지만 '마살라 소스'는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춰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비유를 든 것이죠.


* 참고1: 로빈 쿡의 일명 '치킨 티카 마살라 연설'은 그가 지지하는 영국의 다문화정책을 가장 알기 쉽고 설명하고 있는 명연설. 지금 보수당의 반이주자, 탈EU정책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전문은 여길 참조하시길 http://www.theguardian.com/society/2013/may/12/robin-cook-chicken-tikka-multiculturalism 로빈 쿡은 외무장관과 원내대표를 역임한 영국 노동당의 정치인. 영미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알카에다는 서방 정보기구가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토니 블레어의 우편향 정책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자였죠. 블레어 이후 브라운이 총리가 되면 더욱 중요한 임무를 맡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안타깝게도 2005년 심장마비로 사망.


* 참고2: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외국 요리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는데, 2012년 조사에서는 Chinese stir-fry에 1위 자리를 내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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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EU를 탈퇴할 것인가?


1.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반반 정도일 듯 하네요. 영국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이주자' 문제. EU 가입국은 EU회원국 국민들에게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됩니다. 임금을 적게 준다거나, 등록금을 더 받는다거나 등등.... 그런데 최근 영국 경기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보니, EU 출신, 특히 동유럽 출신 이주자들이 꽤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 것은 사실.


2. 이 기사 (http://www.bbc.co.uk/news/uk-politics-32816454)에서 보듯이, 2014년 기준으로 64만명이 들어왔고, 32만명이 나갔으니, 32만명이 늘어난 것이고, 이중 28만명은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 한 64만명 중 28만명이 EU 출신이고, 특히,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주자들이 4만6천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


3. 지난 2010년 총선에서 이주자 숫자를 10만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보수당이 공약한 바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편. 꽤 드라이브를 걸었고 실제로 이주 통제가 강화되었지만 (제가 영국에서 지내던 2005년 즈음보다 재영 한국인 숫자도 많이 감소했더군요),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의 견제 등으로 인해 하고 싶은 걸 다해본 것은 아니죠. 실제로 자유민주당은 자유주의 정당 답게, 테러방지법 문제 등 몇가지 이슈에서 보수당이 막나가는 것을 - 아주 약간 - 억제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단독 집권이니 마음놓고 이주자 통제를 강화할 겁니다.


4. 그래서 일단 불법이주자 단속 같은 것부터 해보려는 모양인데, EU를 탈퇴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획기적으로 이민자수를 줄이는 건 불가능한 상황. 결국 보수당이 EU 탈퇴 국민투표를 밀어부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고.. 하지만 경제계의 반발 등 복잡한 변수가 많아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인데.... 일단 EU하고의 협상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EU 통합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조약 등을 개정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뭐 협상이 쉬울리는 없죠. 회원국들 이해관계도 다 다르고요.


5. 영국 내부 상황도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일단 경제계의 우려가 있고요. 탈퇴하면 GDP가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고.... 또 스코트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스코트랜드 의석을 싹쓸이한 SNP는 "스코틀랜드는 EU 탈퇴를 원치 않는다"고 나서고 있죠. 탈퇴 국민투표를 하더라도 스코틀랜드는 별도로 하겠다는 기세에요.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부결 이후, 독립은 불건너갔나 했더니... EU 탈퇴 국민투표 시에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6. 아무튼 2000년대 중반 무렵에만 해도, 런던시장 켄 리빙스턴이나 외무장관 로빈 쿡 같은 이들이 호기롭게 "런던의 경쟁력은 다원성에 있다", "외국학생들을 막는 것은 미친짓이다", "영국의 다원성은 영국이 살기좋은 이유 중 하나다", "영국다움(Britishness)의 미래는 영국인의 인종적 구성이 다양해진다는 것에 있다" 고 외치곤 했고, 이러한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지지를 받았는데... 이제는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느낌.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총선 참패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Posted by transpr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