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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한살배기 학생인권조례의 현실

by transproms 2013. 3. 27.

한살배기 학생인권조례의 현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1주년을 맞이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1년 동안 교육감 권한대행의 재의요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무효소송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한 돌 축하에 앞서 위로의 말부터 건네야 할 판이다. 게다가 학생인권조례는 교실붕괴, 교권추락, 학교폭력에 책임이 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한국 교육의 총체적 모순이 응축되어 있는 이 문제들의 책임을, 제정된 지 1년도 안 된 학생인권조례에 돌리는 상식 밖의 얘기들이 떠돌았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조차 않았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서울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조례가 두발제한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서울시 중·고교의 88%가 두발제한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한 서울교육청 학생참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학생의 60%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학교 현장에서 효력도 없고 학생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인권조례가 어떻게 학교 현장에 해악을 끼쳤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의 소지품 검사도 못한다”고 비난하곤 한다. 그런데 조례는 불특정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괄검사를 금지하고 있을 뿐, ‘합리적 의심’이 있다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3조 제2항). 즉, 헌법상 적법절차 원리를 원용하여 학생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일 뿐, 정당한 생활지도를 막고 있지는 않다.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조례의 조문은 읽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교사, 학부모에 대한 인권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제29조, 제31조). 그런데 앞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98%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교사나 학부모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방종’에 영향을 미쳤다면,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례는 학생의 인권만 규정한 게 아니라, 동시에 교사나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며, 학교교육에 협력하고 학교규범을 존중할 책무도 규정하고 있다(제4조). 인권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학생인권과 학교규범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생활지도를 주저했던 교사가 있었다면 그것은 조례를 오독하였기 때문이다. 조례는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하라고 규정했을 뿐 생활지도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은 없다. 물론 고전적인 학생 통제 수단인 체벌을 금지했으니 생활지도에 곤란을 겪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학생 인권 존중의 교육을 고민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고 교육청이 이를 적절히 지원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복잡한 현실과는 달리 해법은 간단하다. 학생인권조례를 철저히 이행하면 된다. 학생인권종합기본계획 수립, 학생인권옹호관 임명, 인권교육·홍보 실시 등 조례에 규정된 의무사항들이 산더미 같다. 학생인권조례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조례를 내팽개쳐 두는 것이야말로 그 부작용을 극대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과 학교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학생인권조례의 수정이나 폐지를 도모할 것이 아니라, 조례의 조기 정착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순리다.



한겨레신문, 2013.1.28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