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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칼럼] 캄보디아 유혈사태, 누구의 책임인가

by transproms 2014. 2. 18.

[아침을 열며/1월 15일] 캄보디아 유혈사태, 누구의 책임인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입력시간 : 2014.01.14 21:00:43



지난 1월 3일, 캄보디아의 노동자 5명이 캄보디아 현지 군경의 무력진압으로 사망했다. 임금인상을 놓고 파업을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의류생산자연합회가 캄보디아 정부에 파업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여기에 한국기업들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업체의 생산 차질로 인한 피해가 부각되었겠지만, 이번에는 한국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국내 노동ㆍ인권단체들이 세계노동단체들과 함께 한국 정부와 기업을 성토하는 집회를 열었고,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유혈 진압을 규탄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기업의 책임을 다시금 환기해준다. 그동안 국제(인권)법은 주로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에 집중해왔지만, 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기업', 특히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의 책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76년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과 1977년 'ILO 다국적 기업의 원칙과 사회정책에 관한 삼자선언'을 필두로 해서, 2000년 '유엔 글로벌콤팩트 10대 원칙', 그리고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기업과 인권에 대한 이행지침'에 이르는 일련의 국제기준들이 마련된 것이 그 대표적인 성과다. 이로써,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도 생산이 가능한 나라를 찾아 공장을 옮겨 다니는 기업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잣대가 마련되었다. 설사 캄보디아에서의 파업이 불법이고, 진압이 합법적 법 집행이고, 사업체가 한국ㆍ중국ㆍ일본의 기업들이었다고 해도, 그 기업과 그 기업의 '모국'(home country)은 '국제 기준'에 따라 모두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 범위도 확대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적 약속인 '유엔 글로벌콤팩트의 10대 원칙'은 기업이 인권을 보호해야 하며, 인권침해에 '연루'(complicit)되어서도 안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기업은 자신의 '영향력' 범위 내에 있는 문제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데, 직접 통제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하청공장에서 발생한 아동노동 문제 때문에 원청업체인 글로벌기업이 곤욕을 치른 사례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의 경우에도, 기업이 직접 유혈 진압을 집행한 것이 아니지만, 만약 정부의 개입을 요청했거나 명시적 요청이 없었더라도 그로 인해 이익을 얻었다면, 역시 인권침해에 연루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국내기업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고, 유혈 진압의 주체가 기업이 아닌 캄보디아 정부였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과 모국 정부는 일정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와 그 자본의 불의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 사이의 균형이 맞춰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언급한 국제적 기준들만 해도, 강제적 효력이 없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기업의 반인권적 행태에서 맞서 저항하는 이들이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새로운 근거를 갖게 되었고, 기업과 국가가 이를 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게 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세계 국가들의 연합체나 그 회원국들을 구속하는 국제법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1945년 유엔이 창설되었고 그 후 구속력을 가진 여러 국제조약이 속속 등장했다. 다국적 기업을 통제하고자 하는 국제적 기준과 제도적 장치들도 이에 못지않은 빠른 속도로 규범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의 비정상적인 현실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그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일에 앞장설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처가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출처: 한국일보 2014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