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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사] 혼자 있고 싶음을 존중하라 (한겨레21)

by transproms 2012. 1. 29.
혼자 있고 싶음을 존중하라 [2011.05.09 제859호]
[특집] 프라이버시권은 권리 중의 권리, 사생활 존중받고 싶은 사람의 의사 침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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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Privacy)권의 원형은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라는 개인의 일반적 권리’(Warren & Brandeis)다. 타인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모든 자유의 기초이자 전제다.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도 어렵다. 상대방이 내가 주말에 무슨 책을 읽었고,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상대방과 자유로운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내 컴퓨터와 전자우편 계정을 압수수색한 검사와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가 가능할지 상상해보라!


» 모든 이들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통한 감시에 반대할 권리가 있다. 이는 곧 자기정보통제권이며 반감시권이다.
누구나 ‘자기정보통제권’ 가져

이쯤 되면 프라이버시권이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가정을 이룰 권리 등 대부분 자유권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프라이버시권이 다른 권리의 기초가 되는 포괄적·일반적 권리, 즉 ‘권리 중 권리’라고 말한다. 근대시민헌법과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규범에도 프라이버시권은 빠짐없이 규정돼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권이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유통되는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확대된다. 바로 여러 나라의 판례를 통해 확립된 ‘자기정보통제권’이다. 그 핵심은 198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인정보보호 8원칙’에 잘 정리돼 있다. 이를 보면 정보수집기관은 사적 정보를 수집할 때 목적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며, 수집된 정보를 본래 목적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정보를 제공한 당사자는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고 수정을 요구할 권리를 통해 자신의 정보를 통제할 권리를 가진다. 최근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 문제나, 유럽에서 개인이 인터넷 업체에 인터넷상의 사적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논의되는 것은 모두 자기정보통제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감시에 반대할 권리, 곧 ‘반감시권’과도 연결된다. 예컨대 노동자는 회사의 전자우편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감시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불가피하다면 그 결정과 운용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권은 정당한 목적에 따라 일부 제한될 수 있다. 예컨대 공인의 공적 의무와 관련된 프라이버시(청문회 대상자의 부동산 소유 여부 등)가 공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프라이버시권의 핵심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프라이버시를 존중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의사에 반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권한은 없다.


요즘 화제가 된 서태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혼자 있고 싶어하는 취향’이 괴팍해 보일 수는 있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살고 있는지’를 비밀로 하겠다는 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는 ‘결혼’이라는 공적 제도의 혜택을 누리려고, 행정 당국에 혼인 사실을 신고하는 수고를 감내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사생활 유출의 경위
오히려 문제는 그의 프라이버시가 유출된 경위다. 국가가 관여돼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신상털기’에 가담한 언론이나 개인에게도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 도덕적·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서태지 9집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그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어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조교수


출처: 홍성수, “혼자있고 싶음을 존중하라”, 한겨레21, 제859호, 2011.05.09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95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