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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스기하라, 인권의 역사; 차병직,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by transproms 2008. 7. 23.
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34호, 2004.10.27.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ongsungsu&nnew=2&y_number=1



역사적으로 살펴본 인권

서평 : 스기하라/석인선 역, <인권의 역사>(한울, 1995)
         차병직,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지산, 2003)

홍 성 수

1. 인권사에서 시작해 보는 인권공부

인권이 21세기의 시대적 화두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며,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인권/인간다움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려는 시도 역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인권을 ‘공부’해보겠다는 나선다면, 상황이 그다지 만만치는 않다. ‘인권’을 제목으로 담고 있는 책은 수없이 많지만, 인권공부를 위한 입문서로 쓸만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권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면, ‘인권사’에서부터 출발해 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어떤 분야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인권’은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인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좋은 입문서가 나와 있다.

2. 스기하라의 <인권의 역사>

먼저 소개할 책은 <인권의 역사>라는 책이다.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 스기하라가 저술하고 석인선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좋은 인권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인권은 처절한 민중의 투쟁 속에서 쟁취되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먼저 근대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적 인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혁명이 인권보장의 특색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프랑스혁명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적 인권이 인류에 던져준 ‘빛’으로, 국가통치에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는 점, 그럼으로써 봉건체제와 결별할 수 있게 해 준 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예술, 과학에서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근대적 인권의 ‘빛’과 함께 ‘그림자’도 동시에 조명한다. 그 ‘그림자’란 ‘자유’의 보장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노동계약의 자유’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오히려 약화시켰고, ‘경제활동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오히려 악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근대시민혁명 이후에도 끊임없이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싸웠고,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헌법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복지국가가 새로운 국가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참정권이나 강화되고, 기존의 자유권이나 청구권적 기본권도 더욱 강력하게 보장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답게 인권보장의 전면적 장해물로서 전쟁과 군비확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실질적 인권의 보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인권보장의 과제로 민주주의의 강화, 사인간의 인권보장, 외국인의 인권보장, 여성의 인권, 어린이의 인권문제, 국제적 인권보장 등을 거론하고 있고, 소위 ‘새로운 인권’(제3세대인권)의 과제로 평화적 생존권, 환경권, 알 권리, 프라이버시권, 교육의 자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1992년에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제들은 우리에게 전혀 ‘낡은 과제’가 아니다.

3. 차병직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차병직 변호사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라는 책이다. 불과 126쪽 짜리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정보는 만만치 않다. 책의 앞부분은 인권의 어원부터 시작해서, 인권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권에 대한 현대적 의미와 과제, 그리고 해결방안을 정리하고 있다. 내용면에서 학술적인 엄밀함은 부족하지만, 입문서로서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짧지만 담을 것은 다 담았고,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인권의 과제도 중요한 논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책의 절반이 ‘부록’인데, 부록에서는 세계의 주요 인권선언을 번역해 놓았다.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인신보호법, 권리장전, 버지니아 권리선언, 미국독립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세계인권선언까지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주요 인권선언을 총 망라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인권선언을 단순히 ‘문서’가 아니라, 민중들의 처절한 투쟁 속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인권의 역사>를 읽으면서, 해당 역사적 문서들을 함께 읽어 간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이 두 권의 책은 워낙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인권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분량도 짧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인권의 역사를 좀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서가 없다는 점이다. 이 두 책으로 입문한 독자들이 좀더 읽을 만한 인권사 책은 현재로서는 마땅한 것이 없다. 인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수십 권의 서양서적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인권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듯 하다. 그래도 인권사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꼬뮨까지>(까치, 1994)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사를 다룬 역사책이지만, 근대시민혁명 자체가 인권보장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의 인권보장에 대해서는 장호순 교수의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개마고원, 1998)가 읽을 만 하다. 이 책은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나타난 인권관련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요약하고, 그 의미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