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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위기의 '인권위'③) 북한 '인권' 활동가 홍진표 임명,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 (오마이뉴스)

by transproms 2012. 1. 29.

북한 '인권' 활동가 홍진표 임명,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
[위기의 '인권위'③] 인권위를 되살릴 기회, 아직 남아 있다
10.11.22 12:49 ㅣ최종 업데이트 10.11.22 12:51  홍성수 (news)
  
▲ 인권위 전문·상담·자문위원 61명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와 인사청문회 도입'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61명의 사퇴서와 위촉장을 반납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가인권위원회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는 연이은 수난을 겪었다.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에서 시작한 이 수난은 21% 조직 축소, 안경환 인권위원장 사퇴, 문경란·유남영·조국 인권위원 사퇴, 인권위 직원들의 사임, 전문·상담위원 사퇴에 이어 급기야 인권시민단체들의 농성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대표인 김영혜 변호사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고,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인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가 새로운 상임위원으로 추천됐다. 이번 인선은 정부여당의 인권위 사태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쯤 되면,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인권위와 인권 거버넌스

 

▲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선 인권위가 어떤 기구인지부터 짚어보자.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합의하고 그 이행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인권이행의 실질적 책임을 지고 있는 각 국가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 이행을 미루곤 했다. 그래서 UN이 짜낸 묘안이 바로 '국가인권기구'(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이다. 유엔의 '위성' 같은 역할을 하는 '준국제기구'를 각 나라에 설치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90여 개 국가에 국가인권기구가 설치됐고, 우리도 지난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인권위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독립기구'의 성격을 갖는다. 잠재적 인권침해자인 국가권력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관료화되지 않고 인권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려면 시민사회와 활발하게 소통하고 교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회과학에서는 '인권 거버넌스'(human rights governance)의 차원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인권보호의 책임이 '국가기관'에 전가되어 있는 것이 고전적인 통치 형태라면, '인권 거버넌스'는 국제기구, 국가, 사법부, 시민사회, 인권위가 인권보장을 위해 서로 협력함으로써 창출된다. 여기서 인권위는 이들 국가기구들의 중간쯤에 서서 그들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인권촉진자'로서 역할을 맡는다.

 

인권위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인권위를 구성하는 '인물'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인권위의 역할 자체가 워낙 포괄적이어서, 그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인권위 활동의 방향은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여러 국제문서는 하나 같이 인권위원 '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인권위가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된 것도 결국 부적격 인권위원장의 임명에서 시작된 것이고, 지금 인권위가 기로가 섰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새로운 인권위원의 임명·추천 때문이기도 하다.

 

뉴라이트 홍진표도 북한 '인권'활동가가 아니냐고?

 

이번에 한나라당이 신임 인권위원으로 추천한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북한민주화운동에 참여해온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정부여당이 임명할 인사들도 북한 인권활동을 근거로 인권전문가를 자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뉴라이트가 지적하는 북한인권 문제에 한국의 인권운동가들이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인권위가 뉴라이트 인사로 채워지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일각의 오해와는 달리, 인권위는 2006년 12월 북한인권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했고, 그 이후 북한인권에 대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왔다. 실제로 인권위가 수행한 북한인권 관련 조사-연구들 중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들도 꽤 많다. 이렇게 인권위가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표 이사는 인권위원으로 적절한 인사가 아니다.

 

북한인권이라는 인권의 한 분야를 다뤄온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여성인권'만'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도 인권위원의 자격이 있다. 그것은 인권이 가지고 있는 상호의존성과 연대성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인권 문제에 대한 부분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동, 이주자, 노동자, 장애인 등 다른 소수자의 보편적 인권 문제로 연결된다. 수많은 인권단체들이 '인권'의 이름 하에 수시로 연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뉴라이트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다른 인권 문제로 확대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북한 정치수용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국내의 국가폭력 문제로는 연결되지 않고, 북한 기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세계의 기아 문제나 국내의 기초생활보장대상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그저 '북한' 인권만을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보편적 인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정치도구화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이런 식의 북한 '인권' 전문가가 국내의 인권문제를 두루두루 살펴야할 인권위원이 될 수는 없다.

 

인권위의 '월권'은 인권위 본연의 임무

 

  
▲ 15일 인권위 상임위원에 임명된 김영혜 변호사
ⓒ 연합뉴스
 인권위

김영혜 상임위원이 대표를 맡았던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이나 여타 뉴라이트 단체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인권위를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인권위 역할에 대한 그들의 오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의 비판은 '인권위가 헌법질서를 무시하는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권 거버넌스에서 인권위의 역할은 다른 국가기관이 국제인권규범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할 때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인권위가 사법부나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것은 '월권'이 아니라 인권위 본연의 임무이다.

 

주요 인권현안에 대해 인권위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G20 경호 특별법, 집회와 시위의 자유 등 주요 인권 관련 쟁점에 대해 국가기구는 아무래도 국가안보나 공공안전 등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인권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망각되기 쉬운 인권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국가기관에 경고하는 기관이 바로 인권위이다.

 

인권위가 여타 국가기관과 입장이 같다면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 인권위가 다른 견해를 표명한다고 해서 국정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인권위가 권고를 하고 정부가 이것을 검토하면서 정책이 재조정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런 절차 없이 정부가 국정운영을 밀어붙인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권위가 이런 역할을 하려면, 인권위는 공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권의 '편'에 서야 한다. G20 경호보다는 그에 따라 침해되는 표현의 자유를 살피고, 전교조 비판보다는 교사의 결사의 자유를, 국방보다는 병역 거부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인권위의 임무다. 이것을 '편향적'이라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권위 본연의 임무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인권위는 원래 그렇게 '인권편향적인' 역할을 하라고 만든 국가기구이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인권단체를 상대하기도 골치 아픈데, '국가기구'인 인권위까지 이런 일에 한 몫 한다는 게 영 못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면, 정부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선진국들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인권감시 시스템을 짜놓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인권위의 문제를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보면서, 보수인사를 임명해서 이 정국을 돌파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내 시민사회의 반발은 '무시'로 돌파한다고 치더라도, 앞으로 계속될 국제기구와 국제시민사회의 비난은 어떻게 감당할 심산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세계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하긴 세계적인 모범으로 칭송 받던 한국의 인권위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몰락한 것이 그네들 눈에는 참 신기하게 보일 것이다. 국제사회에 가서도 '모든 것은 오해일 뿐'이라고 강변할 생각인가? 3명의 인권위원, 15명의 전직 인권위원, 19명의 전직 인권위 직원, 61명의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 600여개의 시민단체, 300여명의 법학자/변호사들이 집단으로 '오해'하고 있을 뿐이라고?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인권위를 인권위답게 만드는 것이다. 보수인사라서 무조건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일류선진국가가 되려면 '인권'도 중요하다며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보수건 진보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인물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상황이 열악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관에서도 낙마한 인사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하는 그 안이한 현실인식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조차 헷갈린다.

 

다행히 인권위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다. 현병철 위원장은 사퇴하고, 한나라당은 홍진표 이사에 대한 추천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인사가 다시 임명된다면, 그래도 인권위에 희망은 남아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다.

덧붙이는 글 | 홍성수님은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숙명여대 법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 출처: “북한 '인권' 활동가 홍진표 임명, 인권위 문 닫자는 얘기”, 『오마이뉴스』, 2010.11.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8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