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인권보장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다

- 영국과 노르웨이의 교정시설에 다녀와서 -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지난 달, 운 좋게도 숙명여대의 지원으로 학생들과 함께 영국과 노르웨이의 교정시설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전 조사/연구→ 현지 방문 → 탐방보고서 제출’로 구성되어 학점까지 부여되는 학교의 공식 탐방 프로그램 덕분이다. 학생들은 이미 1년 전부터 교정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을 진행하고 한국의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고, 드디어 지난 6월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준비과정에서 갖게 된 가장 핵심적인 의문은, ‘우리보다 교정환경이 좋은 나라들은 무슨 근거로 교정문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세금을 내는 시민들은 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선정한 방문지는 유럽에서 가장 교정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영국과 가장 교정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노르웨이 두 곳이었다. 영국에서는 재소자 고충처리를 전담하는 ‘교도소·보안관찰 옴부즈만’(Prison and Probation Ombudsman), 형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민단체인 ‘호워드연맹’(Howard League for Penal Reform), 세계 각국의 교도소 문제를 다루는 국제시민단체인 ‘국제교도소개혁’(Prison Reform International), 그리고 교정문제 전문연구기관인 ‘국제교도소연구센터’(International Centre for Prison Studies) 등을 방문기관으로 선정했고, 노르웨이에서는 법무부 교정청(Norwegian Correctional Services)을 방문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영국과 노르웨이 모두 교정에 관련해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전체 예산/인력 규모를 정확히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우리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영국의 경우, 교정시설의 환경 자체가 ― 유럽에서는 가장 열악하다고 하지만 ― 우리보다 나은 수준이었고, 특히 교정시설에 대한 다양한 감시기구들이 눈길을 끌었다. 각 교정시설에는 ‘교정감시위원회’(Independent Monitoring Boards)가 설치되어 있어서, 전국적으로 약 2천여 명의 민간위원들이 교정시설을 감시하고, 재소자들로부터 진정을 받아 처리한다. 독립적 국가기구인 ‘교도소·보호관찰 옴부즈만’(Prisons and Probation Ombudsman)은 재소자들의 진정을 접수받아 해결하는 기능을 하고, ‘교도소 감독관’(HM Chief Inspector of Prisons for England and Wales and Northern Ireland)은 교정처우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고, 교도소에 관련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옴부즈만실에는 약 120명, 감독관실에는 약 5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그 규모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 두 기관에서 처리하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문제까지 다 처리하는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원이 불과 160여 명이고, 이 중 교정문제를 다루는 조사관은 5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국에서의 교정감시기구들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영국의 인구와 수감자 숫자가 우리보다 각각 1.3배, 2배 수준). 여기에 연간 예산 수 억원에, 수십 명의 상근직원이 일하는 교도소 전문 시민단체들까지 활약하고 있으니, 민관 통틀어 영국사회가 교도소에 투자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났다.


노르웨이에서는 교도관 양성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 교도관의 역량이 교정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된 그들은 ‘교도관 아카데미’ 등을 통해 교도관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재교육하는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지상 낙원 교도소’가 소문이 자자하지만, 실제로 주목해야 할 점은 교도관 양성 시스템이었다. 교도관은 교정시설의 보안문제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교정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재소자들을 직접 대하는 일을 담당한다. 교도소를 ‘학교’에 비유하자면 교도관은 ‘보안요원’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도관이 재소자를 어떻게 처우하는가에 따라 교정정책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얘기다.


모든 방문기관에서 빼놓지 않고 물어본 것은 교정문제에 대한 투자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감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거부감이 없는 나라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정당화 논리를 펼쳤다. 먼저 그들은 교정에 대한 투자가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재소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함으로써 자기존중감을 높이는 것이 재범율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교도소 환경의 개선이나 교도관 역량강화를 위한 투자야말로 합리적인 정책이다. 그리고 많은 관계자들이 교정 관련 예산을 절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소자 숫자 자체를 줄이고, 교도소를 개방형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더 많은 사람을 가둔다고 사회가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개방형 교도소가 재사회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두 나라의 최근 교정정책은 재소자 숫자를 줄이고, 개방처우(예: 형기를 3분의 1을 남기고부터는 출퇴근을 시키는 방법)를 확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그들이 교도소 문제에 통큰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인권’의 이념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정책적 판단이기도 했다. 범죄자들에게 증오와 복수보다는 인격적인 처우를 하는 것이 교정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말이다. 물론 재소자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효율성’과 ‘효과’만 내세울 수는 없다. 재소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원칙이어야 하고, 그래서 때로는 비효율적인 투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도소 환경을 개선하고 재소자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거리 하나는 분명히 생겼다. 인권에 반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교정정책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귀국 행 비행기에 오를 때쯤,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재소자 인권이 계속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가 재소자 인권의 향상이었는데, 역사의 시계가 다시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기에 교도소에 투자할 여유가 어디 있냐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계시는 그 분들에게, 이 짧은 방문기를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출처: 교회와 인권, 2012년 7월, 194호

http://www.cathrights.or.kr/news/articleView.html?idxno=4976

Posted by transpr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