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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5·16이 과거의 문제라고?

by transproms 2012. 8. 8.


5·16이 과거의 문제라고?


시사IN, 255호, 2012 (링크)


7월 한 달은 5·16에 대한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법을 공부하는 처지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정치적·역사적 관점과는 별개로 법적 관점에서는 이 문제는 이미 ‘흘러간 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사태의 주인공이 헌법을 수호해야 할 최고책임자인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그리고 차기 대통령 후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일은 단지 개인적인 의견 차이일 뿐이라고 넘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5·16을 정당화하는 가장 세련된 논리는, ‘5·16 자체는 쿠데타가 맞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혁명이나 다름없다’는 정도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논리다. 5·16은 그 자체로 형법상 군사반란과 내란죄에 해당한다.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는 그 수괴에 대해 오로지 사형과 무기징역만 가능할 정도로 중한 범죄이다. 


또한 우리 사법부는 이미 ‘쿠데타’가 군사반란과 내란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며, 이는 ‘혁명’과 구분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즉,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혁명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지만,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 아니며,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라는 것이 사법부의 판결이었다. 만약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중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 헌법의 목적, 유래, 이념 등을 담은 헌법 전문(前文)은 우리 헌법이 3·1운동과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이러한 4·19의 결과로 성립한 제2공화국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헌법 전문에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라는 구절을 삽입했지만, 이는 1980년 개정 헌법에서 삭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5·16에 대한 헌법적 평가는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낸 5·16을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하는 것이 못내 억울한 사람들도 있는가보다. 하지만 5·16으로 인한 결과는 5·16에 대한 규범적 평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쉽게 생각해보자. 타인을 위협해 재산을 강탈했으면 그 자체로 ‘강도’이지, 빼앗은 귀금속을 좋은 일에 써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었다고 해서 강도라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군사 쿠데타의 결과가 과연 ‘혁명적 변화’라고 평가될 만큼 긍정적인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그 결과야말로 아직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결과에 대한 평가 자체가 논쟁 중인데, 어떻게 그 결과를 가지고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것도 헌정질서를 파괴한 중범죄 행위를 대상으로 말이다.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오히려 우리 실정법은 5·16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 법률들은 박정희 정권이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다고 보면서, 이에 저항했던 운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다. 당시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고, 박정희 시대의 피해자인 인혁당과 긴급조치 관련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손해배상까지 받았다. 이러한 법률과 판결은 5·16의 결과로 세워진 통치 질서가 반민주적이고 위헌적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연유로, 군사 쿠데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가장 중한 범죄 행위인 군사 쿠데타가 그 ‘결과’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과에 대해서는 다원적 시각을 취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기 정당화를 하는 이념이다. 쿠데타에 대한 정당화는 바로 그래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5·16은 과거의 문제이며 이제 미래를 이야기하자며 어물쩍 넘기려고 하는 모양이다. 참 답답하다. 과거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하는 것은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통치할 우리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따져 묻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미래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