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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괴물을 없애는 방법

by transproms 2013. 3. 27.

괴물을 없애는 방법


시사IN, 261호, 2012 (링크)

 

끔찍한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스토리가 있다. “사형시키자!” “거세시키자!”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분노는 당연하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생각하면, 이성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제 언론이 나선다. 언론은 선정적 보도로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고, 괴물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자고 선동한다. 차분하게 사태를 직시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언론의 사명은 온데간데없다. 그들에게 성범죄는 판매 부수나 페이지뷰 수를 늘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슬픔에 잠긴 피해자 가족에게 ‘얼마나 슬픈지 얘기해보라’고 재촉해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언론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범죄는 정치권에도 호재다.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정치가 나서 강경 대응을 천명한다. “사형 집행을 검토하겠습니다!” “물리적 거세 법안을 제출합니다!” 정치권이 모처럼 대중의 요구에 화답하는 순간이다. 땅에 떨어진 지지율을 단숨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언론과 정치권이 사태를 이렇게 수습하고 나서야 국민은 안심한다. 그놈 면상이라도 봤으니 속이 시원해졌고, 분 단위로 자세히 묘사된 범죄 보도를 보며 욕을 퍼부었더니 그제야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경쟁하듯 나서서 범죄자들에게 전자 발찌를 채우고 거세까지 해준다고 약속하는 걸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언론은 신문 몇 장을 더 팔았고, 정치권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고, 시민은 안도했다. 시민-언론-정치의 절묘한 ‘삼각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몇 년 동안 반복해서 보았던 이 익숙한 풍경의 결과는 어땠을까? 아니나 다를까, 몇 달 주기로 유사한 사건이 계속 터진다. 삼각 연대는 사회를 안전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이다. 결국 삼각 연대의 최대 피해자는 ‘안전한 사회’를 원했던 시민이다. 


삼각 연대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난 이유는 간단하다. 괴물 몇 명을 사회에서 추방해봤자, 그 괴물을 낳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새로운 괴물이 또 등장하기 때문이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나 홀로 아동’이 7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벌써 몇 년째 지적되고 있는 문제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 채 “억울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런 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전자 발찌를 채우고, 신상공개를 하고, 화학적 거세를 해봐야, 어차피 그 집행기간이 끝나면 다 무용지물이다. 재범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은 교도소에서 어떻게든 교화해서 내보내는 것이다. 교도소 교화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언론과 정치권, 성범죄 악순환 방치


성범죄 신고율이 10% 남짓이고,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이 80%에 육박한다. 성폭력은 몇몇 악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는 얘기다. 성범죄자에 대한 강경 대응에 사람들이 호응하는 내막에는 자신의 일상이 그 악마들과는 분리되었음을 애써 확인하려는 몸부림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이 일상의 성폭력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성교육 등 다양한 기제를 활용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범죄학은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이 범죄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가장 효과적인 형사정책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안전한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려면 시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일단, 친고죄 폐지나 양형 강화 등 당장 실행 가능한 것들은 이번에 끝을 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과 언론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놓는 대증요법에 속지 말고, 매번 ‘한가로운 소리’라고 타박받으며 뒷전에 밀렸던 그 ‘근본 대책’들의 이행을 요구하자. 범죄 사건을 보며 느꼈던 분노의 에너지를, 딱 그 절반만이라도 사회정책에 돌려보자. 필요한 사회정책들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매년 분기별로 이행 현황을 점검해가며 딱 10년만 끈질기게 따져 물어보자. 


이번에도 정치권이 대증요법 몇 개만 시행하는 척하고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정말 정치가 아니다. 이번에도 언론이 그런 정치권의 눈속임을 폭로하지 못하고 끝까지 추적 보도하지 않는다면 그건 언론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그리고 오로지 시민만이 그들의 그 불온한 연대에 파열구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