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과연 공정한(정의로운) 제도인가?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에 대하여
지난 주에 썼던 글에 이어서 씁니다. 이게 마지막 글입니다. 사실 논문을 쓰려고 준비했던 주제인데, 아무래도 논문 수준이 되려면 좀 더 이론적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고 자료도 더 수집해야 해서, 언제 쓸 수 있을지 기약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단상이라도 여기에 끄적거려 놓습니다.
먼저 사법시험은 공정한 제도냐? 일단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공정한 제도라고 봅니다. 물론 최근에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쉽지 않은 시험이 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만... 제가 볼 때 그런 경향이 일부 있다고 해도, 여전히 공정성 면에서는 매우 우수한 방식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공정하다는 것은 각종 차별적 요소들, 소득, 성별, 학력, 학벌, 출신지역 등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서는 그 성적이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라, 검사, 판사 임용은 물론, 사기업이나 로펌에서조차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으니, 사회 전반에서 “실력대로”라는 목표를 충족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합니다.
*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을 배제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즉 “실력대로”라는 말에 표상하는 한국의 ‘능력주의’(meritocracy)가 다른 차별문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만, 일단 이 논점은 배제하겠습니다. 또한 사법시험이 과연 ‘실력’을 평가하는 정확한 도구인지에 대한 의심도 접어 놓습니다. 저는 주위에서 출중한 법학실력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에 연달아 낙방하는 여러 동기 선후배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이 과연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가? 변호사로서의 역량이 부족한가? 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지독히 시험운이 없는 경우도 있고, 또 단 번에 승부를 겨루는 시험이라는 평가방식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다만, 일정한 경향 – 시험 잘 본 사람이 대체로 실력도 좋다 – 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법시험 1등한 사람이 5등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거나, 1000등으로 합격한 사람이 1001등으로 불합격한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1등한 사람이 불합격한 사람들보다 실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재밌는 실험을 하나 제안해 보고 싶어요. 과거 사법시험 2차 답안지를 채점했던 채점위원에게 다시 채점해 보라고 해보는 거에요. 과연 얼마나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제 추측으로는 유사하게 나오긴 하겠지만, 당락을 뒤엎을 정도의 오차도 꽤 많을 겁니다. 60점 짜리 답안지에 38점(과락)을 다시 부여하진 않겠지만, 58점, 59점을 부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죠. 그런 미세한 차이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한다면 과연 이 채점이 공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보려는 것이죠. 여튼 여기서 이런 능력주의 문제는 논점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법시험은 ‘실력대로’라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어 유용한 제도다”는 점을 유보 없이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반면, 법조인이 되는 관문인 로스쿨 입시는 사법시험과 매우 다릅니다. 학점, LEET, 영어성적, 서류전형(자기소개서), 면접이 이른바 5대 요소입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평가에서는 평가자의 주관과 재량이 개입된다는 점입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재량이 공정한 방향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학교별로 특유의 전통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량이 발휘되기도 하거든요. 서열이 분명한 영미 명문대학의 입학사정에서는 입학생의 인적 구성을 사실상 ‘조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조정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정량지표에 따라 단순히 줄을 세워가지고는 도저히 그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이 기준을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입시부정이 되지만, 영미권 대학에서는 이것을 대학의 재량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학은 사회적 정의에 반하지 않는 한, 자신이 뽑고 싶은 사람을 (심지어 정량지표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일례로 미국에서 랭킹 20위 쯤 되는 대학에 떨어졌는데, 하버드나 예일에 합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입시부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죠. 그냥 그건 합리적으로 결정된 대학의 입시방침이라고 보는 겁니다. 어느 학교를 가건 그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추후에 역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측면도 있고요 (*실제로 미국의 대법관이나 노벨경제학 수상자 등의 출신학교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출신 학부가 정말 다양합니다. 반면 (전문)대학원은 거의 예외 없이 명문대고요. 무식하게 정리하면, 어떤 대학을 졸업하건 명문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만회가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하버드 로스쿨에서 171개 대학 출신이 합격한다는 얘기를 일전에 말씀드린 겁니다). 또한 학교 서열이 있긴 하지만, 한국보다는 다소 느슨하다는 점도 있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건, 부당한 차별적 요소들이 작동하지 않았을거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는 것이죠. 즉 자신이 불합격했어도 그건 그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에 자기가 부합하지 못했을 뿐이지, 대학이 나를 사회적 신분이 낮아서, 여자라서, 유색인종이어서,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회, 정치, 문화적 이유에서 대학의 입시정책을 사회가 ‘승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대학의 사명과 관련한 챕터에 이런 미국식 사고가 잘 드러나 있죠)
그러니까, 영미권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과 유사한 우리의 로스쿨식 선발방식이 한국사회에서 무리 없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서도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준비가 미처 안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만 해도 제가 지도한 학생이 어떤 로스쿨에 불합격한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전국의 어느 학생보다도 우수한 정량수치를 가지고 있고 아주 훌륭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 정말 제 이름을 걸고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있는 그런 학생인데, 로스쿨의 입시에서는 불합격을 하는 겁니다. 면접 비중이 들어가는 2차에서 떨어졌다면 면접에서 실수를 했을거라고 자위하면 됩니다 (사실 그 학생의 역량상 면접을 못봤을리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사실상 정량수치로 판가름이 나는 1차에서 불합격을 하면 정말 납득할 수가 없어집니다. 그 학교에 찾아가서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떨어뜨린거냐고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 같이 로스쿨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소개서(서류전형)에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런 신뢰가 없으면 제가 로스쿨 준비반 지도교수를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일반인이라면 단박에 무언가 부당한 요소들이 개입했을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학벌, 성별, 연령, 외모 등등 우리가 그동안 근절하려고 그토록 싸워왔던, 그리고 사법시험제도에서는 아주 손쉽게 배제할 수 있었던 차별적 요소들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자기 부모나 친인적 친척이 사회유력인사라는 사실을 자기소개서에 적어낸다고 합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은, 그런 것이 입시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는 학생들이 “자소서에 부모님이 누구신지를 적으면 도움이 될까요?”라고 문의하면, “그런 것을 적어내는 것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는 교수님들이 더 많을 것이니 적지 말라”고 진지하게 조언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과연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냐는 겁니다. 올해부터는 로스쿨 자소서에 '부모직업'을 못쓰게 하는 정책이 실시된다고 하니, 아마 그동안 이 문제가 꽤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실제 영향을 주건 안주건 상관 없이 말이죠.
여하튼 이 모든 문제들은 그런 요소들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사법시험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입니다. 고시반 지도교수를 할 때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만 받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얘기해줄 수 있었지만, 로스쿨 준비반 지도교수를 하면서는, "경우에 따라서 노력대로 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현실이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고 입시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로 입시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입시제도에서 발휘되는 여러 가지 주관적 요소를 ‘대학의 재량'으로서 승인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학입시도 수시전형 등이 그런 편인데, 제가 종종 친구들한테 요즘 대학의 변화된 입시전형을 얘기하면, "말도 안된다. 그래 가지고 공정성이 보장되겠냐"는 식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아직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일 수도 있고,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에 검사, 판사, 주요 로펌에서까지 사법시험 성적 없이 서류와 면접으로 선발하다 보니, 입시에서 뿐만 아니라 취업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계속 터져 나옵니다. 저는 이미 이 점을 예견하여(!) “로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려고 관련 논문을 두 편이나 썼습니다. 로펌과 같은 사회적 영향이 큰 집단은 ‘취업의 공정성’에도 강력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불행히도 사회에 전혀 방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현실은 여전합니다. 판검사 임용방식도 단순히 '실력대로'를 넘어서야 한다고 틈만 나면 얘기했지만, 뭐 제 말이 영향력이 있을리가 없죠 ^^;;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타파할 노력조차 잘 안보인다는 겁니다.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은 사법시험 시대의 공정성과는 다른 지점에 놓여야 합니다.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공정성이 아니라, 각종 차별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제도적인 개선과 소수자를 우대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떤 자구노력을 하고 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겠다고 나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로스쿨 입시가 사회적으로 공정하다는 것을 승인받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이 나오는 것에는 그동안 로스쿨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저번에 하버드 로스쿨이 입학생의 인적 구성을 홈페이지에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점을 소개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버드에선 “우리는 이렇게 뽑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고 그 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로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유수로펌들은 변호사들의 인적 구성을 “사회적 책임보고서”에 담아 자발적으로 공개합니다. 왜 해외 유수 로펌들은 “우리는 신규변호사 중 성소수자 비율이 **%다”라는 사실까지 공개하고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제가 최근 논문 두 편에서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서울대 로스쿨 정상조 학장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교수들도 사회적 약자, 지방대 학생들을 많이 뽑고 싶은데 지원자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뽑고 싶어도 뽑지를 못하고 있다. 이번에 취약계층 신입생 9명을 선발했다. 특히 새터민 학생 두 명이 입학했는데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하는 사랑샘재단에서 생활비 50만원을 포함한 ‘희망 장학금’을 받는다. 현재 15명이 희망장학금을 지급받고 있다." (링크)
서울대 로스쿨에서 이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입니다. 일부 로스쿨과 로펌에서는 이미 블라인딩 면접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역균형채용”을 실시하는 로펌도 있습니다. 다 같은 맥락입니다.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이 무엇인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확하게 읽고 있는 징표로서 유의미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서울대 로스쿨에 사회적 약자, 지방대 학생 지원자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놔두면 "뽑고 싶어도 뽑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 될거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현재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겁니다. 예컨대, 뽑고 싶다는 사회적 약자와 지방대생에 대한 쿼터제를 둬서, 일정 비율에 미달하면 추가모집을 해서라도 뽑겠다는 식으로 적극 나서지 않으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렇게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로스쿨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로펌들도 '공정한 채용정책'을 놓고 새로운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저는 여건만 성숙한다면 고시제도보다는 로스쿨제도가 훨씬 더 좋은 제도라고 확신합니다 (외국과 비교하는 거 별로 안좋아하지만, OECD국가 중 도대체 '고시제도'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나라가 어딨냐고요? ㅠ 우린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고집할 거냐고요? ㅠ) 하지만 현재까지 로스쿨제도가 고시보다 못한 측면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법시험시대의 공정성과는 다른 로스쿨시대의 공정성이 승인받고 잇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이 사회에서 연착륙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신뢰를 쌓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아마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 용도폐기된 사법시험을 존치함으로써 문제를 풀겠다는 것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법시험만의 공정성이 순기능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법시험만의 고유한 문제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요.
다만 어느 쪽 입장에 서건 사실에 기반해서 유의미한 논점을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저소득층 희망사다리”같은 근거없는 주장 말고, 지금 지적한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이 더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로스쿨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공정성 문제에 대해 자신있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적, 실천적인 대안을 진지하게 마련하고 있는가? 그렇게 체제내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면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서라도 보완책을 만들고 로스쿨을 자극하지 않으면 풀릴 수 없는 문제인가? 저는 이런 논점으로 좀 더 활발한 논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한말씀 더 덧붙이자면, 위에서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로스쿨 관계자들의 답변은 대개 "우리는 매년 100명의 사회적 소수자를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키고 있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왜 이러한 대답만으로는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불충분한 것인지를 설명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이 나름의 공정성으로 사회통합적 기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은 나름대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게 하는데 매우 훌륭한 기능을 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시체제를 고수해야 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법시험시대의 공정성을 대체하는 로스쿨의 새로운 공정성을 사회적으로 승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로스쿨체제는 사법시험과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공정성으로 사회의 승인을 받고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 친절한 세 줄 요약
- 사법시험 존치론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은 유보적이지만, 로스쿨 시대의 공정성은 사법시대의 공정성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우리 사회는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것이 '사법시험 존치'라는 반격을 받게된 이유이다.
- 지금처럼 로스쿨 시대의 새로운 공정성을 승인받기 위한 노력에 무심하다면, 사법시험 존치라는 파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쓴 블로그의 글은 이미 제가 발표한 로펌의 사회적 책임(공정성)에 대한 논문들에 대한 속편, "로스쿨시대의 공정성과 로스쿨의 사회적 책임"을 쓰기 위한 단상입니다.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법철학적 이론틀을 가지고 접근해보려고 하는데, 블로그의 글은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쉽게 풀어 써 본 것입니다. 또한, 로스쿨시대의 공정성은 로스쿨뿐만 아니라 법조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혁신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로스쿨, 로펌, 법원, 검찰의 공동노력이 절실한 것이죠. 법원, 검찰의 책임은 너무 자명한 것이라 굳이 논문으로 쓸 내용은 아니고, 왜 사기업인 로펌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이건 이미 썼음), 왜 사립대학인 로스쿨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지(이걸 쓰려고 함)는 나름 '논문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도 반향이 없어서, 이미 쓴 논문의 링크라도 걸어 둡니다 ㅎㅎㅎ
홍성수,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시론”, 『법과사회』, 제43호, 2012, 297-328쪽.
http://transproms.tistory.com/92
홍성수, "로펌의 성장과 변호사윤리의 변화: 개인윤리에서 조직윤리로, 공익활동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법과사회』, 41호, 2011, 145-172쪽.
http://transproms.tistory.com/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