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러진 화살에 대한 실체판단과 영화의 메시지는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무엇이 진실인가?'에 관심있는 분들은 영화는 그냥 참고만 하시구요. 재판기록 살펴보고, 증거를 찾아 나서면 됩니다. 변호인/피고인에 따르면, 판사는 자해, 경찰은 증거조작, 증인들은 허위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이건 희대의 조작사건이구요. 당장 증거와 증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재심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건 영화하고 상관없는 일입니다. 참고로 저는 진실규명에는 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구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진실이 바뀌기보다는 초동수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더 많구요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훌륭한 취재보도가 있었지만(기사 링크), 이 기사도 초동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 결론을 뒤집을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튼 진실규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애꿎은 영화를 가지고 이리저리 논쟁할 것 없이 당장 당시의 증거와 증언을 찾아 나서는게 맞습니다.
일부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너무 강조해서, 그동안 논의가 좀 겉돌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케팅 전략인지, 담당변호사가 개인 캐릭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화=사실'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말이 안되는데다가, 이 영화의 정당한 문제제기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당연히 사실과 다르죠. 감독이 자기 식대로 해석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그냥 허구로 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에 입각했다는 얘기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얘기’라는 겁니다. 만약 이 영화가 현재의 사법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석궁사건이라는 매우 특수한 케이스를 다루고 있는 거라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특수한 케이스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법현실 일반의 문제도 함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즉 저는 부러진화살이 우리 사법현실 일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그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허구일 뿐이니,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고 말자는 식의 논의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무얼 말하고 있나?
부러진 화살의 메시지를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재판은 '법정'이라는 제한된 물적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진실'을 찾는 과정입니다. '최대한'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실체와 100% 일치하는 것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최대한'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법관들의 생각과 시민들의 생각에 괴리가 있다고 봅니다. 많은 시민들이 판사가 자기가 원하는 증거신청을 안 받아주고, 할 말을 못하게 한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법관들은 '최대한'이라고 생각한 것이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죠.
물론 판사들도 모든 증거신청과 발언을 다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증거신청은 기각하고, 할 말을 못하게 막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의 요청은 법정에서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하고, 법관이 내 얘기에 좀 더 귀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많았으면 하는거죠. 부러진 화살에서도 '증거신청'을 기각하는 판사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판사가 권위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요. 문제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면 좀 들어줬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피고인 측의 증거신청을 다 들어줬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저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 정도면 들어주는게 맞지 않았나 하구요. 그리고 기각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피고인에게 상세히 설명해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판단은 내가 한다"거나, "관련 없으니 기각한다"고 귄위적으로 당사자들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가 사법불신을 가중시키는 겁니다.
문제는 법원의 고질적인 권위주의 문제
그렇다면 왜 판사들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다 안들어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법원의 권위주의가 문제입니다. 자신들이 제왕의 지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판사들이 있습니다. 제왕은 신민들에게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거구요. 모든 판사가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그런 판사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뜩이나 심한 사법불신을 더 조장하고 있습니다. 자성이 필요합니다. 법관의 판결 하나에 시민들의 평생이 왔다갔다 합니다.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납득할 만한 공판진행을 해야 합니다. 재판의 결과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재판은 승패를 가리는 게임이고, 어차피 진 쪽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불만이야 전세계 어느 법원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진 사람에게는 그 '불만'의 수준이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증거신청을 제대로 안받아주고 그 이유조차 설명을 안해주는 상황에서는 의혹이 더 커집니다. "이유도 제대로 설명안하고 저렇게 넘어가는 것보니, 분명히 뭔가 구린게 있을거야. 저쪽 변호인은 전관 변호사던데.. 전관예우 제대로 해주는구만..."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는거죠. 이런 상황에서 결과까지 패소했다. 자, 진 쪽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재판은 어차피 한 쪽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용훈 전 대법관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대법관 시절에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 실제로 좋은 성과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 문제는 여기서는 별개로 하구요)
“법원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다. 해방 후 60년간 우리 법원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다’라는 칭찬을 받았더라면 그런 영화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재판을 받아 본 국민은 ‘판사들이 너무 권위적이다.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노와 불신이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판사들이 법정에 와 있는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기록에만 의존한 채 판사가 법정에서 제대로 심리도 하지 않고 재판하면 법을 지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법원은 그동안 재판을 제대로 안 했다. 그러다 보니 ‘도가니’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가 나오는 거다. 지금까지 재판을 효율로만 생각해 국민의 불만이 많은 거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은 국민이 법정에서 재판 과정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이 나온 것이다.”(이용훈 대법원장, 중앙선데이 인터뷰)
법원의 권위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도 자성해야 하고, 시민들의 감시와 통제도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도 사법감시하기 무지 힘듭니다. 몇몇 단체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관심도 미약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쉽지않습니다. 사법 연구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법원은 '감시'와 '통제'에서 무풍지대인 셈이죠. 누가 판사를 할 것인가는 주권자가 결정합니다. 한국은 사실상 '시험성적'으로 임용합니다. 이게 맞는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다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얘기입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들어준다고 재판을 잘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들은 하소연도 하고 호소도 하고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유능한 판사라면 이들이 조리 있게, 사건 구성에 필요한 진술, 즉 ‘요건사실’을 정리해 얘기하도록 유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판사를 잘 뽑아야 한다. 그간 우리 법원은 판결문 잘 쓰는 사람이 판사가 됐다. 실은 법정에서 말도 잘하고, 심리도 잘하고, 재판 진행도 잘하는 사람이 판사가 돼야 한다.”
문제는 법관임용과 재임용 과정에서 이러한 측면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기 어렵다는 겁니다. '문서'가 아닌 '말'로 시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질이 법관 임용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고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법관의 구성이 다양화되어야 하고, 특히 최고법원의 정치적 구성의 다양성이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법원의 권위주의를 과중시키는 과도한 업무부담
두 번째 문제는 업무의 과중입니다. 권위적인 판사는 더 권위적이게 되고, 시민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판사도 소신대로 재판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습니다. 웬만한 증거신청 다 들어주고 싶어도,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서류를 생각하면 고민할 수밖에 없겠죠. 30년전에 비해 민사사건이 10배 가까이 들어났고, 1인당 GDP는 12배 늘었는데, 법관은 3-4배 정도 증원되었습니다. 지금 법관들은 30년 전보다 3-4배의 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죠. 30년전보다 사건 1개 당 난이도도 사회가 발전한 만큼 더 커졌을테지만, 그것은 '계산'에서 제외하고도 참 많은 일을 하게 된거죠. 인구대비 판사수는 독일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하고, 미국의 3분의 1수준입니다. 인구 당 소송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판사 수가 충분하지 않은 거죠 (인구당 소송건수는 독일보다는 훨씬 많고, 미국보다는 적습니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판사 업무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사수가 2008년 당시 2,000명에서 2015년까지 3,300명로 증원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연간 117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결과를 내놓은바 있습니다. 문제는 대법원은 판사수 증원에 소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반대한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업무량은 많다고 하면서, 정작 판사 증원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죠. 소수의 엘리트 법관들로 구성된 현재 법원을 흔들기 싫어하는거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오도된 엘리트주의죠.
여기에 문제를 더 가중 시키는 것은 변호사 선임률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민사 1심 변호사 선임률은 겨우 20%. 심지어 소가 1억원 이상의 사건도 38%가 변호사 없이 소송에 임합니다. 형사사건은 변호인 선임률이 절반도 안되구요. 변호사가 대리하지 않고 나홀로소송을 하면, 법관의 재판 진행 부담은 더 커지고, 소송당사자의 불만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시민들의 상식과 법의 논리에는 괴리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데, 변호사를 통해서 1차적으로 걸러서 경험하는게 아니라, 법관하고 직접 대면하면 '법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불신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일단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러진 화살을 보고 분노한 이유는 석궁 사건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적된 사법불신이 이 영화를 계기로 폭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이렇게 말합니다.
“국민이 재판 실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영화를 보고 어째서 재판의 전형이라 생각하고 법원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갖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나 생각해봐야 한다 .. 왜 사람들이 법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 영국과 미국에서도 재판이 잘못됐다며 법원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그들 국가에서는 법원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 이후부터 강조한 신뢰와 소통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법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재판 따로, 소통 따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법원장까지 나서서 자성을 촉구하고 있는데, 일각에서 "영화는 사실이 아니니, 그냥 영화로 즐겨라" 고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현실에 기반한 허구인 이 영화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가지고 사법개혁의 계기로 삼기에는 영화 내용이 적당치 않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킬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사법개혁은 당장 표가 나는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그리고 진득하게 가야 합니다. 저는 분노의 에너지가 이런 방향으로 모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 한가지 더, 검사 수사를 검찰이 하고, 판사 재판을 법원이 하는 현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검사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야당 추진 중)가 하고, 판사에 대한 재판은 원칙적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검찰과 법원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자기 식구를 판단하는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