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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번지수를 잘못 짚은 ‘엄마 가산점제’

by transproms 2013. 5. 26.

번지수를 잘못 짚은 ‘엄마 가산점제’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임신·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 재취업할 때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의 ‘엄마 가산점제’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30대 초반에 급격히 감소한 뒤 30대 후반부터 다시 상승하는데, 이때 절반은 임시근로자나 일용직으로 취업한다. 젊었을 때 취업했다가 임신·육아 때문에 퇴직한 뒤 나중에 다시 임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 한국 여성들이 겪는 전형적인 경로인 것이다. 한국이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남녀 임금 격차, 여성 관리자 비율 등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죽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이 인구 감소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려면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뭔가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할당제나 가산점제와 같은 ‘적극적 평등 실현 조처’(affirmative action)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구조적인 차별이 심각해서 소극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한 경우라면 ‘결과’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임시 조처의 도입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 차별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파급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미국의 소수인종 할당제, 한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비례대표 의원 여성 할당제나 대학의 지역균형선발제도가 바로 그런 취지다. 우리보다 여성 노동조건이 훨씬 좋은 유럽에서 굳이 ‘기업 임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엄마 가산점제’가 그런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당성과 효과 모든 면에서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여성 경력 단절 문제의 핵심은 재취업 단계에서의 부당한 차별보다는 임신·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경력 단절 자체를 막지 못한다면, 국가 등 취업 지원 실시 기관에 응시하는 극소수의 재취업 여성에게만 가산점을 준다고 해도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비혼 여성이나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남성에 대한 역차별도 문제고, 남성의 육아 분담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적극적 평등 실현 조처는 어느 정도의 부작용이 있지만, 그것을 상쇄시킬 만한 즉각적인 효과와 중장기적인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 가산점제’에는 혜택을 받는 대상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엄마 가산점제’의 도입이 문제가 해결된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켜 구조적인 문제 해결로 나아가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우려도 있다.


결국 결혼이나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의 ‘단절’ 자체를 막아야 한다. 출산·육아를 빌미로 부당해고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고, 일과 육아가 양립 가능하도록 다양하고 강력한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이미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웬만한 대책은 다 마련되어 있다. 이들 현행법만 철저하게 준수되어도 ‘엄마 가산점제’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엄마 가산점제’가 군 가산점제의 ‘대항마’라는 설명도 있다. 군인과 여성에 대한 정당한 대우로 문제를 풀지 않고, 극히 일부의 제대 군인과 재취업 여성에 대한 혜택으로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 둘의 한계는 동일하다. 정도를 외면하는 미봉책들이 패키지로 논의되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러한 임시방편들은 정당하지도 않지만 의도된 효과조차 거두기 힘들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두고 싶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3년 4월 29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