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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장호순,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by transproms 2008. 7. 23.

장호순,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민주주의 인권을 신장시킨 명판결>(개정판, 2007, 개마고원)



인권의 나라 미국?
 

미국의 인권과 연방대법원

 미국이 세계 인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 프랑스 인권선언과 더불어 - 인권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이며,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미란다원칙’이나 ‘증거배제법칙’, 그리고 ‘명백-현존 위험의 법칙’의 미국에서 발전한 중요한 인권 법칙들이다. 그 외에도 미국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인권문제에 대해 세계적인 기준을 제시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이러한 인권 발전의 배후에는 ‘연방대법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인권발전을 주도한 것은 위대한 정치지도자도 아니고, 민중들의 거대한 투쟁도 아닌 9인의 대법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인권사를 공부할 때 가장 주의 깊게 살펴할 문서들은 인권이론서, 선언문, 행정부 문서가 아니라 연방대법원 판결문들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명판결문과 인권의 역사를 연결시킨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의 기획은 미국의 인권발전을 조망하기에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 명판결문 20개를 뽑아 이야기 식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첫 번째 글은 총론격인 ‘미국헌법의 발자취’이다. 짧은 글이지만, 각론의 여러 판결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한번 읽어봐야 한다. 미국의 (인권)역사에서 연방대법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이후의 서술은 각론에 해당한다. 전체를 대통령 권력,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 , 언론의 자유, 공정한 사법제도, 평등권 보장 등 총 6장으로 나누고, 총 20개의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다루고 있다. 판결문만 요약하여 소개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사실관계,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배경, 하급심 판결, 기타 관련 판결, 그리고 판결의 후속결과까지 알기 쉽게 잘 정리해 놓고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미국의 판결문이나 판결 요지라도 한번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법지식이나 미국역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아무런 지장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판결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권위

이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듯이,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미국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중요한 인권판결을 사회에 내놓음으로써 인권보호의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때로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의도와 어긋나는 판결도 하고 (아이젠하위 대통령과 워렌 대법원장), 국민감정에 반대되는 판결도 소신 있게 내놓기도 했다. (아히만 판결-성조기보호법 위헌 판결)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그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사법부에 국민대표기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중요한 근거가 바로 소수자 보호라는 논리이다. 즉, 다수파 기관인 행정부나 입법부의 전횡을 사법부가 견제하는 것은 소수자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금까지도 그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밀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일반적 정책 사안에 대한 개입은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소수자 기본권 보호에 집중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던 것이다. 이 점은 소수자 인권보호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면서,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판결(수도이전 등)을 내놓고 있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사법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권위를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기술한 이유는 미국의 경험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법치 국가로 발전하는데 참고할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7쪽)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러한 긍정적 시사점이 한국의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선 다음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과연 미국의 인권 수준이 우리가 보고 배울 만큼 선진적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법부가 주도하는 인권 발전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태로운 자유권

 편의상 미국의 인권수준을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먼저, 자유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형사절차상 인권보장 등에 대한 미국(연방대법원)의 기여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인권상황은 그러한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자유권은 국내외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로 최근의 각종 인권단체의 보고서는 미국 본토와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미 그 실태가 만천하에 공개된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포로학대가 대표적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테러와 관련하여 감시가 강화되고, 형사절차에서의 방어권도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미란다원칙’과 ‘증거배제법칙’의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율과 수감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이 비율은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선진인권국가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사형집행이 많은 나라이다. 자유권의 핵심 중 하나인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미국의 언론 자유는 세계 53위에 불과하다. 미국식 언론관이 반영된 프리덤 하우스의 순위에서도 미국은 16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나라를 우리는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미 해병대가 이라크 포로들을 사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미국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이 너무 서툴러 사형수가 큰 고통을 받았다며 가족들이 교도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악화일로의 사회권

사회권으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유권과 사회권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회권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민들의 빈부 격차와 빈곤율은 최악의 수준이고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지만, 소득재분배를 위한 정책이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고의 경제력과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사회이지만, 하위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은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의료현실이다. 미국은 GDP의 15%를 보건의료에 쓰고, 의료기술도 단연 세계최고지만, 국민의 16%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고, 핵심적인 의료지표인 영아사망률이나 모성사망률은 선진국 중 하위권에 불과하다. 또한 흑인수감자는 백인의 6.6배이고, 흑인 영아사망률은 백인의 2배이고, 빈곤율은 백인에 비해 흑인이나 라틴계열이 3배 가까이 높으며, 의료보험 미가입자도 백인에 비해 흑인이 2배, 라틴계열이 3배 높다. 최고의 경제력과 (의료)기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경제력 1위 국가 미국이, 세계 행복지수, 삶의 질 지수, 글로벌 평화지수 등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 셈이다.

이쯤 되면, 미국이 주요 인권조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실제로 미국은 기본적인 인권규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의 1, 2 선택의정서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고, 191개국이 가입한 아동권리협약이나 170여 개국이 가입한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으며, 문화다양성협약, 국제형사재판소 협약,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지 않다. (물론 이라크나 북한 민중의 인권에는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다!)

사법부에 의한 인권보호?

 또 한 가지는 사법부에 의한 인권발전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법관들이 민주적 대표들이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헌법학적, 정치학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인권의 진전이 공적 토론을 통한 합의가 아니라 엘리트 법관들의 양심과 혜안에 의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로버트 달의 <미국헌법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를 참조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사법제도는 미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며, 미국 밖에서도 적용 가능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경험을 우리가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출처: 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172호, 2007.7.18.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ongsungsu&nnew=2&y_number=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