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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평등해야 건강하다 -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by transproms 2012. 1. 28.

리처드 윌킨슨, 김홍수영 역,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2008, 후마니타스)


부자들의 건강법
 
 한 사회의 건강 척도는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반영한다. 기대수명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회가 ‘장수촌’이라는 뜻이 아니라, 훌륭한 사회복지체계와 보건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고, 식량이 부족하지 않고, 내전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권보장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치고 기대수명이 낮은 나라는 없다. 영아사망률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회가 어린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권친화국가들은 예외 없이 매우 낮은 영아사망률을 보여주고 있다.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 역시 한 사회의 평등과 인권의 보장 수준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빙빙 돌리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보자: ‘불평등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건강하지 못하다.’ 사회역학자인 윌킨슨은 이 명확한 명제를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과 범죄율이 높다.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하고 기대수명이 낮다. 이것은 단지 사회취약계층이 공공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원인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일과 삶에 대한 통제력이 낮기 때문에 더욱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것이 그들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그러니까 이른바 ‘사회적 요인’들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혜택을 누리는 집단조차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크고, 소득이 불평등하고, 사회적 관계가 빈약한 사회에서는 위계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행동이 전면화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정, 공격성, 사회적 불안 등이 증대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의 질은 전반적으로 악화된다. 쉽게 말해, 비싼 자동차나 명품가방 등으로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싸구려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건강은 물론이고, 명품가방으로 치장하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마저도 (그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중파 TV를 통해서도 소개된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것이 있다. 선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만 해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엔돌핀이 3배 이상 분비되어 신체의 면역기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즉, ‘테레사’가 많은 사회의 구성원들은 건강하다. 이러한 자선사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공동체가 교육, 의료, 주택 등 기본적인 인간생존에 필요한 문제들을 협력적으로 해결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스트레스 수치가 현저히 낮을 것이다. 북구의 복지국가들이 높은 수준의 건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비밀은 그들의 사회보장시스템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친 김에 이 책의 결론을 좀 더 밀고 나가보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 사장님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피트니스클럽에서 전문트레이너에게 체력관리를 받고 최고급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자신의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하고, 어느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도 자유롭고 평등한 직장을 만드는 것이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PC방 사장님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아르바이트생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교수, 교직원, 학생들이 연대감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있는 대학이라면 아마 구성원들의 건강 수준은 무척 높을 것이다. 주차관리업체, 청소업체 등의 외부용역 노동자들까지도 ‘외부인’이 아니라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는 곳이라면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렇게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호혜적 연대 속에서 살아간다면,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구성원 모두가 건강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책의 제목과 마케팅 전략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원제인 “불평등의 효과”(The Impact of Inequality)에 비하면, 한국어판 제목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가 더 그럴듯한 제목이다. 하지만 “부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 또는 “부자들의 건강법”이라고 작명했으면 어땠을까? 정말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을까?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리 병원을 도입하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줄이는 것은 부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외국의 저명 병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값비싼 유기농제품을 사 먹는 것만으로는 건강을 지켜낼 수 없다. 오히려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고, 사회보장체계를 정비하고, 세금을 더 많이 내고, 토지 공개념을 강화하고, 사회의 공공성을 확대하여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한 길일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도 가장 합리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인권, 평등, 연대와 같은 가치들이 ‘건강’을 위한 키워드로 변신해 버리는 순간이다.

 이제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의료비 실손보장보험 비교 사이트를 들락거리거나 건강보조식품을 검색하는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 사는 세상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내가 더 혜택 받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연대성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 우애, 평등이라는 우리 인류의 사회적 열망이 곧 인류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2010년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가? 자유, 우애, 평등의 사회적 열망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배제와 차별과 불평등이 ‘경쟁력 강화’나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본인과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295호, 2010.1.6.
http://hrights.or.kr/technote7/board.php?board=hongsungsu&command=body&no=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