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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_comments

'불문율'에 대한 단상

by transproms 2015. 4. 15.

'불문율'에 대한 단상



홍성수

 

빈볼 때문에 갑론을박이 뜨겁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부분은 바로 불문율이다. (규칙)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범에는 성문규범과 불문규범이 있다. 법에도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고, 스포츠 경기에는 정식 규정집(rule book)에 규율되어 있고 강제력을 갖는 성문율’(written rules)과 그렇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불문율’(unwritten rules)이 있다. 불문율이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지, 미국에서는 야구의 불문율에 관한 단행본이 세 권이나 출간되어 있을 정도다. 이런 것들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길...^^

 

Paul Dickson, The Unwritten Rules of Baseball: The Etiquette, Conventional Wisdom, and Axiomatic Codes of Our National Pastime, 2009.

Ross Bernstein and Rob Dibble, The Code: Baseball's Unwritten Rules and Its Ignore-at-Your-Own-Risk Code of Conduct, 2008.

Jason Turbow & Michael Duca, The Baseball Codes: Beanballs, Sign Stealing, and Bench-Clearing Brawls: The Unwritten Rules of America's Pastime, 2011.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불문율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먼저, 불문율은 역사와 전통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승인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수들이 모여서 “79회 점수 차가 큰 상황에서는 도루를 자제하자는 가이드라인을 정한다거나 (참고로, 선수협이 이런 합의를 했다는 기사에 대해 선수협은 공식 부인한 바 있음), 감독들이 모여서 불문율을 논의한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정할거라면, 문서로서 정해서 성문화하고 벌칙규정도 명확하게 두는 것이 맞다.

 

그런 점에서 야구에서 이번에 황재균 선수의 도루 상황은 불문율을 어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상황에 대해 구성원들의 상식에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초반이라도 7점 정도 차이 나면 도루는 삼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요즘 같은 타고투저에 맞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이렇게 견해 차가 분명하게 있다면 그것은 불문율로서 자격미달이다. 불문율은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이 승인하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넉넉한 기준을 잡는다면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준, 예컨대, 8-9, 10점차 이상, 서로 주전선수 다 교체한 상황 정도라면 야구에 관계된 사람 중 절대 다수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 정도라면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불문율은 시대에 따라 변동하며, 종목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야구라는 종목에 고유한 불문율도 있을 수 있지만, 특정 나라의 야구에만 존재하는 불문율도 있을 수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야구에 어떤 불문율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참고가 될 뿐이다. 우리 현실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승인하면 그것이 불문율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야구의 불문율 중에는 "실수로 사구를 던졌어도, 지나치게 사과하지 않는다" (A Pitcher can’t overly apologize if He accidentally hits batter)는 것이 있다고 한다 (위의 Paul Dickson 책 참조).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김성근 감독이 사구를 맞힌 후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선수를 질책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선배라도 필드에선 적인데 어떻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선후배 관계로 얽힌 한국 야구의 현실에서는 유감 표시를 해야 한다”라고 반론하던데, 문제는 선후배이기 때문이 아니다. 선후배건 난생 처음 보는 상대선수건 자신의 실수에 의해 가해를 하게 되었을 때는 유감표시를 하는게 맞는거 아닐까?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에서는 자신의 타구가 네트를 맞고 넘어가서 득점을 하게 되면 미안하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상대방은 괜찮다고 화답한다. 일종의 불문율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상대선수를 공으로 맞춰놓고 유감표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거 아닌가? 선수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말이다

 

이러한 미국식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어제 신용운 선수와 오늘 소사 선수는 사구를 던진 후 모자를 벗어 사과표시를 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야구의 본질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어제 오늘 경기는 사구가 나왔지만 부드럽게 잘 진행되었다. 만약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를 KBO에 영입하여, 한국 야구의 불문율에 대해 설명해준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 야구에서는 동업자 정신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빈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금지됩니다. 상대가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을 빈볼로서 대응하는 것은 더욱 비겁한 일로 간주됩니다. 이 점 명심해 주십시오 이렇게 설명해주는데, 그 선수가 이건 야구의 본질에 반합니다. 말도 안되는 불문율이네요. 반드시 빈볼로 보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반응할까? 아니면, 나름 합리적이네요. 저도 한국 야구의 전통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할까?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메이저리그 흉내를 낼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 생각에 맞는 우리 식의 관행을 형성해 나가면 될 일이다.

 

셋째, 불문율은 애매하기 때문에 불문율이다. 성문화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불문율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불문율은 명료하지 않다. 배구에서는 블로킹에 성공하고 난 뒤 상대편 공격수를 향해 세레모니를 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도대체 여기서 금지되는 세레모니가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그 정도에 대한 합의가 있겠지만 말이다. 농구에서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작전 시간을 부르지 않는다는 불문율 역시 크게 이기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지 않다. 물론 농구인들은 그 정도를 대략 알고 있을테다. 애매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불문율이다.

 

넷째, 불문율이 위반되었을 때 그것을 강행하는 방식은 공식 제재’(formal sanctions)가 아니라 비공식 제재’(informal sanctions)이다. 어떤 규칙을 어겼을 때 아웃이 되거나 퇴장을 당하거나, KBO에서 징계를 하는 것이 공식 제재라면, 비공식 제재는 사회적 압력에 의한 제재다. ‘비난하고 망신주기’(shaming and blaming)가 비공식 제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예전에 허재 감독이 경기 후 악수를 하지 않고 코트를 떠난 적이 있었다.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 공식 제재는 없었지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감독 개인이나 구단 차원에서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런 일을 벌이는 감독은 거의 없다. 처벌에 의해 강제되지 않지만 사회적 실효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건 불문율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재 감독이 이를 어겼다고 해서 불문율로서 실효성이 없는게 아니다. 성문율 어기는 사람도 엄청 많다. 문제는 위반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효성을 갖는지 여부다.

 

한편, 공식 제재와 비공식 제재의 중간에 있는 규범도 있다. 예컨대 구단 차원에서 또는 선수들끼리 자율적으로 어떤 행위에 대해 제재(예컨대 벌금)를 부과하는 것이다. 예전에 SK구단은 선수들이 사인과 사진 촬영을 거부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내규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것은 공식 제재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비공식 제재도 아닌, 중간규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사례로, 야구에서 불문율을 어겼을 때 빈볼로 보복하는 것이 불문율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 나는 이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불문율을 어겼을 때 사람을 향해 공을 집어던지는 것이 도대체 어떤 논리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야구에서는 경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잦은 투수 교체나 번트,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불문율을 어겼다고 해서 그 제재 방법이 빈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제재가 아니라 직접적인 가해다. 엉덩이를 향해 던진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야구 좀 본다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위험천만한 보복성 빈볼을 수없이 보지 않았는가? 사회인야구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100km 정도로 날라오는 공도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프로 선수들의 공은 대충 던져도 130km 이상의 속도가 나온다.

 

더욱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빈볼은 공식적인 제재를 받는다. 한국에서 빈볼은 불문율을 어긴 행위에 대해 성문율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보복하는 셈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불문율에 대한 제재 역시 불문율다워야 한다. 나는 보복성 빈볼에 결단코 반대하지만, 큰 점수 차가 났을 때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은 야구장 밖에서 비판함으로써, 그런 감독이 더 이상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게 사회적 압력의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행위를 일삼아,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을 잃고 구단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감독이 오래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불문율 위반에 대해서는 딱 그런 수준의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나는 빈볼 보복에 관련해서 미국에서도 한다는 것 외에 그럴듯한 근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바 없다. “빈볼도 야구의 일부다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동어반복 말고 말이다.

 

세상은 성문율과 불문율로 규율된다. 이 두 규범이 적절하게 자기기능을 할 때 세상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다. 세세한 법규범으로 사회를 규율하는 독일 같은 나라도 있지만, 헌법조차 불문법인 영국 같은 나라도 있다. 어떤 규범을 성문화하고, 어떤 규범을 불문율로 삼아 사회를 조정해나갈지는 그 공동체의 몫이다. 비단 야구와 스포츠의 예에만 적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접근방법은 살짝 다르지만 제 생각과 거의 유사한 좋은 기사를 뒤늦게 발견하여 링크해 놓습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불문율이라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는 것인지를, 두번째 글에서는 불문율에 대한 복수(빈볼)가 왜 문제인지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박동희의 현장 속으로] 역전과 불문율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361


[박동희의 MailBag] 불문율보다 중요한 건 동업자 보호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