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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법)_comments(law)

<제국의 위안부>와 학문/표현의 자유

by transproms 2015. 12. 3.

<제국의 위안부와 학문/표현의 자유> 


1.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limitation) ‘제한’(restriction), 또는 ‘예외’(exception)로는 보통 다음이 언급됩니다.


- 자유권규약: 타인의 권리(명예) 침해,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공보건, 도덕
- 미국: 폭력(범죄) 선동, 실제 위협, 싸움을 거는 말(fighting words), 외설, 아동포르노, 명예훼손, 사생활침해, 감정적 스트레스에 대한 의도적 침해, 상업·정부·학생의 표현 중 일부, 국가안보, 군사기밀 관련 표현 등


이런 요건에 대해서는 넓은 의미의 규제(형법, 민법은 물론 대학 학칙 등에 의한 규제 등)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죄다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에는 형사처벌이 불가하다는 것이 국제기준과 인권단체의 입장이고요.


민사건 형사건, 명예훼손에 국가가 개입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타인의 ‘권리’인 ‘명예’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인끼리의 문제라고 해도 권리 침해가 발생하면 국가 개입이 필요한거죠. 물론 타인의 권리 침해를 허울좋은 명분으로 삼아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컨대, PD수첩 보도에 대해 ‘장관’이 자기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죠) 명예훼손에 대한 개입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겠고요. 실제로 이러한 남용 제약하는 원칙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공적 토론을 불러일으키려는 차원에서 제기된 표현이라면 명예훼손 적용을 배제하는게 대표적이죠.


즉, 학문적인 저술도 명예훼손에 해당하면 민사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기준이고 표현의 자유 NGO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민사구제 ‘범위’에 대한 입장은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ACLU 같은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자들은 민사배상의 범위도 매우 좁게 인정하죠. 저도 ACLU 정도는 아니지만, 연구자/일반인 평균에 비해서는 그 범위를 상당히 좁게 보는 편입니다.  되도록이면 학문의 자유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요컨대, 학문에 대한 법적 규제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범위'의 문제일 뿐입니다. 


2. 제국의 위안부: 학문/표현의 자유 vs. 권리 침해


<제국의 위안부> 건은 꽤 복잡한 사안입니다. 일단, 그동안 위안부에 대한 시각이 너무 고정적이고 단순했다는 비판이라면 학문의 자유에 해당할 겁니다. ‘위안부 문제를 다면적으로 보자’는 것은 학문적 문제제기일테니까요. 여러 위안부들의 감정/입장이 균질적이거나 일관되지 않는다는 지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안부들의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는 지적, '위안부 중에는 일본의 협력자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는 점에 대한 환기 정도라면 얼마든지 학문의 자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일본국이 아닌 제국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 역시 ‘하나의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학문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있습니다. 찬성하지 않아도 논박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 책의 결론과 전반적인 시각에 찬성하지 않지만, 의미있는 문제제기를 담은 책이라고 봅니다. 다만, 정영환 교수의 지적처럼 (링크) 이 책이  전제하는 위안부에 대한 '이미지'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원칙적,이론적으로 그렇게 봐야 한다는 것인지, (협상)전략상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봐야 한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요.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모두 '토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 "제국의 피해자이면서, 구조적으로 함께 국가 협력(전쟁 수행)을 하게된 '동지'의 측면을 띤 복잡한 존재", "피해자이자 협력자라는 이중적인 구도", "기본적으로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식의 단정적인 서술은 학문의 자유에 입각한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피해자(개인과 집단)의 명예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위안부에 대한 이미지를 비판하면서, 위안부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제시된 이미지가 이미 고통받고 있는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학문/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또한 그런 그런 표현을 사용해서 위안부 생존자들을 모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저자의 주장(법적 책임 불가론 등)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개입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고 그 점은 연구자인 저로서도 이해못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학문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3. 법에 의한 해결이 최선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형사처벌에는 반대합니다. 보충성원칙에도 반하고, 형사처벌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무엇보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처분 결정문과 검찰의 공소장에는 간극이 적지 않습니다. 가처분 결정문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일부 표현만을 문제삼으려고 하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합니다만, 검찰 공소장에는 그런 구분이 희미합니다. 형사법정에서는 학문적 논의까지 다퉈지게 되면서 논의가 왜곡되고 협소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명예훼손에 대한 민사소송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민사구제 역시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또한 민사소송(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청구)도 안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다고 봅니다. 소송하지 않고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고 명예가 회복될 수 있다면 그것이 여전히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은 말할 것도 없고, 민사소송도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소송은 이기면 좋고 져도 진게 아닐 때 하는게 최선입니다. 그런데 이 소송은 이겨도 무슨 이득이 있는지 분명치 않고, 지면 더더욱 문제입니다. 표현의 자유 옹호론자들은 표현에 대한 규제는 '순교자'(martyr)를 만들게 될 뿐이라고 경고하곤 합니다. 이 소송이 딱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송은 다양한 논점을 합법/불법, 승/패 이라는 이분법으로 몰고 갑니다. 이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한 쪽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의 주장에 반대하지만, 처벌에도 반대한다'고 외쳐봐야, 소송이라는 무대는 한 편에 선 사람들이 '하나'인 것처럼 몰아붙입니다. 설사 명예훼손이 인정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이 책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판사는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하는거지, 책의 학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는게 아닙니다. 거꾸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이 책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건 별도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만약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온다면 사회는 "법원이 이 책을 지지했다"고 해석하겠죠. 판결문에는 명예훼손이 아니라고만 적혀 있는데 말이죠. 결국 소송이 진행되면 모든 논점을 빨아들여 법정만 쳐다보게 만들고, 수년에 걸친 공방 끝에 결론이 나와도 어차피 이 책에 대한 토론은 별도로 다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모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피해자의 심적 고통과 그로 인한 권리 충돌 문제 때문에 '당사자가 원하는 한 민사구제를 받겠다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지, 소송은 어떻게든 피해야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어찌되었건 피해자 할머니들이 소송 의사를 밝힌 이상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습니다. 그건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피해자의 고통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께 소송을 권하거나 지원하는 대신, “저희가 함께 싸우겠습니다. 저희가 나서서 논박하겠습니다”라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것은 왜 선택지일 수 없었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애초에 소송기획은 재고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소송에 관여한 분들께는 이 문제를 꼭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까요? 소송이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최선의 길이었을까요?


제가 할머니들과 꾸준히 교류해온 사이였다면 소 제기 이전에 어떻게든 소송을 하지 마시자고 말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저자 측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이상 할머니들에게 소 취하를 제안하기는 힘들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4. 법적 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책임감

법적 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꼭 생각해봐야 합니다. 법적 해결에 반대한다면, 

1) '학문의 자유가 우위에 있으므로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인지

2) '명예훼손은 맞지만, 법이 아닌 다른 해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지 

3) '이 책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인지


를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지이건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것이 왜곡해서 이해한 결과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심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법적 해법이 아니라 다른 어떤 방식으로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질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법적 해결에 반대한다'는 것은 결코 편안하고 ‘쿨’한 입장일 수 없습니다. 그 입장은 곧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눠지겠다는 실천적 ‘결의’여야 하니까요. 실로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를 수밖에 없는 실존적 결단이어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제국의 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성명서1 - 링크1, 링크2)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처벌에 반대한다는 데에 따른 윤리적 책임감을 느낄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진성 교수 등이 참여한 성명서(성명서2 - 링크) 역시 형사처벌에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명의는 “형사기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입니다. 성명서2는 그런 명의를 내걸고 형사기소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성명서2에 동참한 윤정옥 교수와 정진성 교수는 (책의 주요 비판대상인) 정대협 대표를 역임하셨던 분들이고, 그 외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해온 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도 기소에 반대하는데에 따른 고통과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성명서2에 서명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라고 참칭하기가 부끄럽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그렇게 활동하겠다'는 ‘다짐’으로 이름을 넣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가볍게 ‘처벌에 반대한다’고 말하기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이 문제는 그런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어떤 분들은 정대협의 입장이 졸속/편향되어 있고, 박유하 교수가 성실한 조사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는 식으로 이해하시더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물론 정대협의 활동은 ‘운동’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다소 단순화시킨 측면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저도 관련 연구자가 아니라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제가 아는 한, 정대협 관계자들이 ‘대충’ 연구해 놓고 주장만 쎄게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대협 운동에는 엄청난 자료 수집과 치밀한 연구가 바탕이 되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될겁니다.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은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 본문에서는 '내용'과 '입장'이 아니라 '표현'이나 '수식'이 문제라는 식으로 구분을 했습니다만, 사실 이게 그렇게 날카롭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표현이나 수식을 문제삼는 것도 결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거라는 지적은 예리합니다. 실제로 김인규 교사 음란물 판결 때도 대법원은 '저자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굳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알몸을 내놓고 표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음란물'이라는 취지로 유죄판결을 했었죠. 저는 이 판결에 매우 비판적입니다. 내용과 의도 뿐만 아니라 '표현방식'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음란물 판결에는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없습니다. 그냥 그 그림을 보고 막연히 기분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불특정의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고요. 그래서 이 문제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막연한 불쾌감 따위의 논거로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 사안에서도 표현만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을 어떤 표현에 담는가 역시 저자의 표현의 자유니까요. 그 문제의 표현들은 아마 저자가 숙고를 거듭한 결과이고, 사태의 본질을 가장 적실하게 담고 있다고 판단되어 선정된  '표현'일 겁니다. 애착도 있을 것이고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표현이 피해자의 명예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그건 권리 충돌의 문제가 되고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저는 웬만하면 표현의 자유가 우위에 있는 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 사안에서는 피해자의 고통이 너무나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점을 도외시하고 학문의 자유만 배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