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법)_comments(law)

로스쿨의 접근성이 높은 이유

by transproms 2015. 12. 10.

<로스쿨의 접근성이 높은 이유>


로스쿨의 문제를 '접근성'(access)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접근성은, 쉽게 말해, 법조인지망생들이 얼마나 위험부담 없이, 진입장벽 없이 '도전'해볼 수 있냐는 문제입니다. 진로를 정할 때는 적성, 위험부담 등등을 고려하여 '투자'를 하는건데, 그게 얼마나 용이하냐는 거죠. 이게 용이하지 않으면, 자원이 부족할 수록, 특히 경제사정이 어려운 경우, 진입장벽이 생기니까 문제가 되는거고요..


사시는 단기로 끝낼 경우 저비용인 건 사실입니다. 간혹 사시반대 쪽에서 "요즘은 신림동 가도 돈 많이 든다"고 하면서 그 비용을 부풀리기도 하는데, 물론 그렇게 많이 쓰는 사람도 있긴 하죠. 하지만 아껴 쓰고 빌려 쓰고 하면, 월 50만원 남짓으로 충분히 유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투자해야 한다는게 문제죠. 단기로 끝낼 확률 자체가 매우 낮고요. 즉, 당장 진입 비용이 적게 든다고 접근성이 높은게 아닙니다. 특히, 요즘은 과외 등 청춘들이 택할 수 있는 알바의 값어치나 기회가 절대 부족이고, 나이 들면 취업기회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3-4년만 해보고 안되면 취업하자'는 전략을 세우기도 어렵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십대 초반에도 취업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아닙니다;;


반면, 로스쿨은 등록금이 비싸지만, '계산이 서는 투자'를 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죠. 현재 가진 돈, 장학금 수혜 가능성, 부모님 등 지원, 저리 융자 등을 활용하여, 내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뛰어들 수 있습니다. 이게 큰 장점이죠. 앞선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등록금 인하, 후불제, 공익활동조건부 장학금 제도가 활성화되면 감당해야할 위험이 더 줄어듭니다. 


또한 로스쿨은 취업과 병행이 가능합니다. '올인'해야 하는 사시와 다른 점이 이겁니다. 실제로 저는 로스쿨에 불합격한 4학년에게, 보통 '일단 취업하라'고 권합니다. 아예 '취업과 동시에 준비하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입시 특성상 그렇게 준비해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취업상태에서 지원해도 불리할게 없습니다. 로스쿨은 자원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높은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접근가능성이 높다는거죠. "모 아니면 도"아니라, '걸'이나 '윷'도 노릴 수 있는게 로스쿨입니다.


다만 로스쿨은 내가 왜 계속 '도'가 나오는지 선뜻 납득할 수 없는게 단점입니다. 물론 제가 최근 쓴 몇 번의 포스팅이 바로 그 납득가능성을 높이는 나름의 방안이지만 아무리 그리 보완해도 로스쿨은 사시처럼 깔끔하게 낙방을 인정하긴 어려워요. 이 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순항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각종 입시도 불합격자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떨어지고 버클리 붙은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종종 미국 친구들한테 너희들은 이걸 왜 받아들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뭐 학교 나름의 인재상이 다르니까 그렇겠지" 또는 농반진반으로 "세상은 원래 운이야" 라는 정도로 받아넘기더군요. 유럽의 경우에는 명문대/비명문대, 대졸/고졸 차이가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더욱 쉽게 납득을 하는 것 같고요. 법조인의 특권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우리도 예전보다는 나아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내가 왜 떨어졌나"를 깔끔하게 납득받고 싶어하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저는 이걸 해결하는게 로스쿨 정착의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로스쿨 얘기로. 실제로 로스쿨 지망생의 진로가 이랬습니다. 제 권유에 따라, 일단 취업했다가 도리어 그게 적성에 맞아서 그대로 주욱 가는 제자도 있었고, 1-2년 후에 결국 로스쿨로 가는 제자도 있었고, 3-4년 후 아예 그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로스쿨에 간 제자도 있었습니다. 물론 로스쿨도 사시처럼 매년 계속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긴 한데 극소수죠. 사시와는 달리 연차가 쌓인다고 합격확률이 더 높아지질 않거든요. 그냥 한 번 더 지원해본다는 의미 정도에요. 리트는 1년 더 열심히 하면 심지어 점수가 더 떨어지기도 하는 시험;; 그러니 취업해서 재도전하는게 낫죠.


로스쿨준비반 맡기 전에는 사시준비반을 맡았었는데 그 때는 마음이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취업 적기를 놓쳤는데 (요즘은 졸업후 1년만 지나도 취업기회가 확 줄어듭니다 ㅠ), 시험은 안되고... 본인도 답답하고, 보는 저도 답답하지만 해줄 얘기도 없고... 물론 그러다 결국 붙는 소수가 있긴 하죠. 통계로 보면 합격률이 3% 정도인데 저희 학교도 거의 그 정도 확률로 붙었습니다. 매년 3명의 합격생과 97명의 불합격생이 나오는건데 .... 이게 참 교육자이자 기성세대로서 지켜보는게 너무 힘듭니다 ㅠ


그래도 지난 달, 10년 만에 사시에 붙은 제자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고, 연락이 닿아 건넨 첫 마디는 '고맙다 ㅠ' 였습니다. 제가 사시 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 낙방(2차만 너댓번 본 친구)하는 걸 지켜보면서 괜히 미안했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나마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 확률이 너무 낮다는겁니다. 진작에 다른 일로 방향 틀었으면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했을텐데 말이죠. 그게 참 안타깝죠.


로스쿨의 이런 장점 때문에 저는 법조인양성의 주축은 로스쿨이 맡는게 맞다고 보는 거고요. 굳이 사시를 두겠다면 로스쿨을 보완하는 수준이어야 하고, 응시횟수 제한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다른 선결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요....;;


* 사실, 로스쿨 도입시 '로스쿨안 vs. 법대 5년제'안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저는 법대 5년제가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육중심 양성 취지는 살리고, 다양성 문제는 법대 학사편입을 늘려서 해결하고, 변시 응시횟수 제한을 하면 불합격자 양산 문제도 해결하고요. 4+3, 7년 동안 등록금을 내야하는 것보다 확실히 저비용이고요. 이렇게 해도 당시 사시로 인한 여러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는데, 왜 굳이 로스쿨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은 이미 현실이고 저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생각하는 '보수'적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 또한 접근성과는 별개로 합격가능성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로스쿨의 합격가능성을 높이는데 있어서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울수록 부족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이건 또 얘기가 길어지니, 다음 기회로 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