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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인권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신임 인권위원장 임명과 인권위의 존재 이유 (교회와 인권)

by transproms 2012. 1. 28.

[국가인권위와 인권] 인권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신임 인권위원장 임명과 인권위의 존재 이유
2009년 07월 24일 (금) 15:11:58 홍성수 (인권위원,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chrc@chol.com
   
▲ 7월 20일 현병철 교수의 인권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며 위원장실 앞을 막은 인권활동가들 [출처] 민중의소리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또 한 번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직속기구화 시도, 21% 조직 축소 등 인권위 무력화 시도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안경환 위원장이 사퇴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인권위원장으로 현병철 교수가 임명되었다. 하지만 새 선장을 맞이한 인권위의 항로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에 대해 아무런 경험과 지식이 없는 위원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신임 위원장이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라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자격요건에도 미달한다는 지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인권은 뒷방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청계천을 만들 때도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을 만들 때도 장애인의 접근권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했다. 초등학생 일기 쓰기나 크레파스의 살색 표시가 청소년이나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었다. 우수한 체격조건을 갖춘 경찰관을 선발해야겠다는 경찰청의 좋은 의도는 비록 키는 조금 작지만 훌륭한 체력을 보유한 경찰관 지망생의 꿈을 꺾고 말았다. 물샐틈없는 국토방위에 대한 국방부의 단호한 의지는 병역거부를 신념으로 하는 청년들에게 ‘감옥행’을 강요해 왔다. 집단학살이나 고문 같은 악의적인 인권침해도 있지만, 목표와 의도가 정당해 보이는 경우에도 인권은 자주 간과되거나 후순위로 밀리곤 한다. 

   
▲ 7월 20일 현병철 교수가 취임사를 읽는 가운데 인권활동가들이 '도둑취임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민중의소리


이 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오랜 골칫거리였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합의하고 그 이행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정작 개별 국가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국제인권규범이 자국 내에서 이행되는 것을 저지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유엔이 짜낸 묘안은 바로 각 나라에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국가인권기구가 각 나라에 설치되어 국제인권의 ‘위성’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국제인권규범이 보다 효율적으로 개별 국가 내에서 이행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여기에 다른 정부기구와의 ‘충돌’을 숙명으로 하는 국가인권기구의 험난한 여정이 내포되어 있다. 다른 정부기관들은 경제발전, 국토방위, 국민여론, 조직효율성, 행정편의 등을 이유로 인권을 뒷전으로 밀어 놓기 일쑤지만,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이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권’을 놓고 정부기관과 국가인권기구가 사사건건 충돌하여 국가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는 반발이 예상됐다. 국가인권기구가 그 충돌을 걱정해 인권 기준을 낮춰 잡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절묘한 대안은, 국가인권기구에게 다른 국가기관들을 ‘인권’을 기준으로 설득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부여하되, 다른 국가기관들을 ‘명령’할 수 있는 강제권한은 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인권기구들은-우리 인권위를 포함하여-권고나 의견표명을 할 수 있을 뿐 강제수사권이나 시정명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 7월 17일 현병철 교수는 대통령에게 임명장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취임식을 강행하려 했다. 인권활동가들의 저지로 이날 취임식은 무산됐다. [출처] 통일뉴스


이는 그럴듯한 대안이지만, 동시에 국가인권기구의 위상과 기능이 ‘어정쩡’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내기구이면서 국제인권규범을 근거로 결정을 내리며,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는 국가기구이면서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국제인권의 국내 이행’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인권기구의 모호함과 무기력함을 보완하는 중요한 기제는 바로 그 구성원, 특히 인권위원들이다. 그들의 인격에서 나오는 ‘영향력’과 ‘권위’가 국가인권기구가 가지는 힘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의 구성원 선임 과정은 그 어떤 조직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7월 20일 인권활동가들이 현병철 교수의 취임식장 입장을 저지하고 있다. [출처] 민중의소리
얼마 전 신임 인권위원장 선임과정에서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인권위 독립성 수호를 위한 교수모임’이 제시한 인권위원장 선임 가이드라인은 인권위원장의 자격과 요건을 잘 요약해 놓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권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 비정파적, 인권위 독립성 수호에 대한 의지, 인권위의 성과를 계승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국제인권기준을 국내에 실현할 의지,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에서 존경받고 상호협력할 수 있는 자질, 도덕적 청렴성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공공조직의 수장보다 엄격해 보이는 자격 요건이다. 하지만 아무런 강제권한이 없는 인권위의 수장이 권위와 힘을 갖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요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새로 임명된 현병철 교수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그는 대학과 학계에서 중책을 맡아온 법학자이지만, 인권에 대한 논문 한 편 없고, 인권현장 경험도 전혀 없는 인물이 한 나라의 ‘인권’의 대표 인격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본인의 주장처럼 법학연구 자체가 인권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인권위는 ‘비’사법적 인권구제를 하는 기구이고, 국내의 실정법뿐만 아니라 ‘국제인권규범’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조직이 아닌가? 법률가의 ‘법적 판단’은 다른 사법기관에서나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지, 인권위에서는 그저 하나의 판단기준에 불과할 뿐이다. 

청와대는 신임 인권위원장의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 등을 높이 샀다고 한다. 하지만 인권위에 필요한 것은 그런 행정능력이나 중립성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위는 ‘편향’적인 기구여야 한다. 다른 국가기구들이 인권의 보호·증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국가기구 중 유일하게 인권을 잣대로 판단하는 ‘인권편향적’인 기구로 고안된 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가 아니었는가? 인권위원장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다. 인권단체들이 신임 인권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했던 것은 그의 조직관리 능력이나 균형감각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력에서 인권을 수호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7월 20일 경찰은 인권위원회 정문 앞에서 인권활동가들의 출입을 가로막았다. [출처] 민중의소리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다른 정부기관들과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에 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정부여당이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국정원법, 집시법, 비정규직법, 미디어법 개정안들에 대해 인권위는 ‘인권’이라는 잣대로 비판의 메스를 가차 없이 들이댔다. 이들 법안에는 국가안보, 사회질서, 경제발전 등의 중요한 대의명분이 담겨 있었겠지만, 인권위는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 삼고 반대했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정책결정과정에서 간과된 인권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정부에 경고장을 던졌다는 점에서 인권위 본연의 임무를 올곧이 수행한 것이다. 인권위에 부여된 임무는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내서 다른 정부기관과 갈등을 빚고 충돌하는 것이다. 다른 정부기관들에게는 ‘타협과 협력’이 중요하겠지만, 인권위에게는 ‘충돌과 갈등’이라는 인권위만의 독특한 미덕이 있는 셈이다. 

인권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권위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있으나 마나한 정부조직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꼭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우리 시민사회와 국제인권공동체는 이미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출처: 『교회와 인권』 158호, 2009.7
http://www.cathrights.or.kr/news/articleView.html?idxno=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