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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사] (논쟁: 방송통신심의위의 성기사진 삭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성기 사진 하나 감당 못하는 사회인가? (한겨레신문)

by transproms 2012. 1. 29.

성기 사진 하나 감당 못하는 사회인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조교수)

등급표시나 성인인증제,
또는 원하는 사람만 보도록
기술적 장치를 두는 정도가
행정기관이 할 수 있는 통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업시간에 ‘마광수 사건’, ‘그림 모내기 사건’, ‘김인규 사건’ 등 표현의 자유 관련 판례들을 고릿적 얘기처럼 다루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2011년 대한민국 땅에서 이 문제가 다시 ‘현실’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심각하고 요란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소송의 대상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군 불온도서’로 지정되는가 하면, ‘술타령’ 노래가 청소년 유해물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고, 인권시민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를 결성했지만, 역사의 시계는 계속 거꾸로 가고 있다.

그러던 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인 박경신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성기 사진을 올려 누리꾼의 판단을 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다시금 음란물에 대한 국가 규제가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음란물을 국가가 규제한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기구가 인터넷의 모든 표현물을 통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표현물은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음란의 기준은 쉴 새 없이 변하고, 사람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특정한 시점에, 어떤 특정한 의견을 받아들여 규제에 나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텍스트’를 국가가 심판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런데 그 심판자가 법원이 아니라, ‘방심위’라는 행정기관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오프라인의 ‘음란물’ 하나를 압수하려면, 수사기관의 영장 신청, 법원의 영장 심사와 발부, 집행일과 장소 통지, 영장 제시, 피고인·변호인의 참여, 압수목록 작성 등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어떤 표현물이 ‘음란물’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절차와 수년 동안 세 차례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다.

하지만 방심위의 절차는 무척 간단하다. 인터넷에서 유해정보를 찾아내서, 그것을 심의하고, 해당 인터넷서비스 업체에 시정요구를 하면, 업체가 이를 시행한다. 해당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지도 않고, 사전 통보도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게시물이 삭제될 뿐이다. 업체들이 이 시정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니, 방심위는 인터넷 규제의 ‘종결자’나 다름없다. 음란물인지의 여부가 법적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심위가 광범위하게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국가기구가 인터넷을 광범위하게 심의하고, 삭제 요구까지 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다시 문제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박경신 교수는 성기 사진을 올리면서, “이 사진을 보면 성적으로 자극받거나 성적으로 흥분되나요?”라고 물었다. 이 사진을 보고 흥분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해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국가가 나서서 삭제해야 하는지를 물은 것이다. 실제로 그 사진을 보고 ‘흥분’했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불쾌하고 모욕적이었다고 지적한 사람들은 있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것이 문제라면, 원하는 사람만 볼 수 있도록 기술적인 장치를 두면 된다. 아동과 청소년이 보기에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등급표시를 하거나 성인인증제를 도입하면 된다. 행정기관 차원의 통제가 필요했다면 이 정도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사전통지나 의견청취도 없이 모두 삭제되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의 블로그에서는 난데없는 대토론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욕설에 가까운 글도 있고, 제법 진지한 글도 있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민주사회의 한 단면이다. 우리 사회가 그깟 성기 사진 하나 감당 못하고 국가에 삭제를 부탁드려야 할 만큼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젠 그 정도의 성숙함과 여유로움을 갖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딱 하나다. 그것은 바로 이 위대한 토론의 광장에서 방심위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 출처: "성기 사진 하나 감당 못하는 사회인가?" 한겨레신문, 2011년 8월 2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4900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