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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무엇이 문제인가?

by transproms 2012. 5. 11.

■ 민 우 칼 럼 창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무엇이 문제인가?

 

홍성수 ■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의 지경이었다. 주민 발의안으로 시의회를 통과한 조례에 대해 교육감 권한대행이 거부권(재의요구)을 행사하더니, 석방된 곽노현 교육감이 재의 요구를 철회하고 조례안을 공표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조례가 위법하다면서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겉보기에는 지극히 법률적인 분쟁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인권에 대한 시대착오적 인식이 깔려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난리법석일까? 돌아가는 사태를 보면 학생인권조례에 무슨 엄청난 내용이라도 담겨 있을듯 하지만, 사실 조례에는 그다지 특별한 내용이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조례’의 형식을 통해 기존의 권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미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되어 있는 학생의 권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첫 발걸음일 뿐이다. 학생인권조례로 제정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냥 선언적인 규범이 하나 생긴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헌법 조문 자체는 쓸 만 했다.


학생인권조례도 얼마든지 그런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되었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이 더 황당한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1년 넘게 시행되었지만, 학생 인권 수준이 뚜렷하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욱이 학교 폭력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는 것은 거의 중상모략 수준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 학교 폭력이 더 확산되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스스로의 인권을 자각한 학생들은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인권은 상호 존중과 연대성의 원리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이념 체계이기 때문이다. 인권 존중의 학교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학교 폭력이 발붙일 곳이 사라진다. 학생인권조례만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폭력없는 학교를 만드는데 순기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교육과학기술부는 1) 학교규칙의 일률적 규제로 인한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학교 자율성의 침해, 2) 법률의 위임이 없는 학생인권위원회/학생인권옹호관 설치에 따른 교육감의 인사권/정책결정권의 제한, 3)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교사의 교육권을 약화 시킬 수 있는 집회의 자유 조항, 4) 성적 지향 등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조항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먼저, 헌법적 기본권을 구체화한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학교 규칙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을 제공한 것이 어떻게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논리라면 차라리 학교의 자율성이 헌법보다 우선하다고 주장하는 게 솔직하다. 조례를 통해 위원회 등의 기구를 설치하는 것까지 시비를 걸었는데, 그렇다면 이미 여러 자치단체에 설치된 수많은 위원회들이 다 불법이란 말인가? 집회의 자유가 남용될 우려는 그나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도 마냥 낭만적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조례에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해서 학교 규정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여, 집회의 자유와 학습권/교육권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교육부 주장의 압권은 학생인권조례의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조항'이 청소년에게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대목이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 사유로 명시되어 있다. 일국의 공공기관이 이런 차별적이고 불법적인 생각을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건 거의 해외 토픽감이다.


아직도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교과부가 법적 대응을 천명했으니, 법정에서 또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문제는 법리 논쟁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이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마저도 정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리 정치의 암울한 현실이 문제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어깃장을 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정부에 몇 가지 묻고 싶다. 그렇게 위법하고 위험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와 광주에서 시행될 때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왜 느닷없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만 가지고 무슨 국가 변란이라도 생긴 것처럼 이 난리인가? 서울 시민들은 ‘특별시민’이라서 위법한 조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이 위험한 조례에 환영 서한까지 보낸 UN 인권 최고 대표에게는 국가 차원의 강력한 항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한 편의 씁쓸한 블랙 코메디다.



*출처: “서울시인권조례 무엇이 문제인가?”, 『함께가는 여성』, 한국여성민우회 격월간지, 2012년 1·2월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