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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소개_book reviews

서평: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by transproms 2008. 7. 23.

인권실천시민연대 웹진 [사람소리] 147호, 2007.1.24.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ongsungsu&nnew=2&y_number=6


페미니즘으로 본 소수자 인권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교양인, 2005)


 <페미니즘의 도전>은 제목 그대로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페미니즘을 성찰적이고, 유연하고, 대화적인 공존의 정치학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킨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페미니즘 하면 대립, 반목, 독선, 편협, 투쟁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소위 ‘진보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내심 뜨끔해 할 대목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시각을 굳이 분류하자면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저작들이 흔히 보이는 현학성이나 비실천성과는 거리가 멀다. 쉽지 않은 이론들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사랑,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군사주의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알기 쉽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읽는데 부담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이 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은 곧 소수자의 인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다수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옹호해야 할 인권은 다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침해받기 쉬운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특정 소수자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나 운동은 자칫 편협하거나 일면적일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소수자의 가치와 입장이 배타적으로 관철된다면, 그것은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보편적 가치’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예컨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시설과 무주택자를 위한 신규주택 건설의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소수인종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다수인종의 빈민층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문제에서 더욱 빈번하게 드러난다. 이성애 여성을 기반으로 한 여러 정책들은 이주 남성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고, 성폭력을 문제제기 하기 위해 남-녀간의 대립과 여성범주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남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같은 성 간의 성폭력 문제를 주변화시킬 수 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법정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조치들은 다른 차별의 기제, 즉 빈곤, 장애, 인종, 출신지역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을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여성주의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확대·재생산되면서 여성주의의 주장을 반박하는 주된 논거로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운동이나 소수자 인권운동은 결코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것인가?

 저자가 이러한 문제를 ‘횡단의 정치’를 통해 다뤄나간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여러 의미체계 중 ‘하나’임을 전제하면서,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여성 범주의 단일성을 부정한다. 횡단의 정치는 자신이 기반을 둔 정체성과 멤버십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자신에게 편입시켜서 동질화시키는 대신, 상대방의 상황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렇게 페미니즘과 여성의 범주를 상대화시킴으로써, 페미니즘은 비로소 보편적인 가치로 승화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분명, 여성주의는 사회의 어느 한 단면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지향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주의는 기존의 남성의 객관성이 전적으로 틀렸고, 여성의 객관성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 통일성이나 단일성의 가치보다는 대화의 가치를 강조한다. 여성주의는 남성적 객관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부분화시키고 맥락화시키며,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기 보다는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주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주의는 ‘서로 다른 각자의 처지(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연대’이자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으로 재구성된다. 또한 이렇게 될 때 여성주의는 다른 사회적 차별이나 다양한 다른 억압적 기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보편주의 정치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다른 소수자 인권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자 인권운동 역시 (저자가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보편을 해체하면서, 다른 소수자의 처지와 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연대해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어느 한 ‘부분’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개별적 처지와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주장이나 운동이 다른 개별적 처지와 이해관계와 제한없이 연대하고 소통할 때, 그것은 비로소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되며,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차별은 언제나 여러 다른 억압적 기제와 얽혀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소수자 인권운동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상호침투하고 서로 횡단하면서 연대해야 한다. 결국 ‘특정 소수자’의 인권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연대와 횡단이 중단없이 계속될 때인 것이다. 이렇게, 인권의 불가분성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각 소수자의 개별인권 사이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