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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법의 홍수 시대

by transproms 2013. 3. 27.

법의 홍수 시대



1970년대 서구에서는 ‘법의 홍수’ ‘법의 폭발’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더 많은 법’이 반드시 ‘더 좋은 세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우려의 표현이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확립된 생각, 즉 ‘법이 다스리는 세상’이 질서정연한 사회를 구축하고 시민들의 권리와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시기에 근대화를 겪었다. 우리는 더 많은 법이 필요했다. 권위주의 정권도 법을 ‘장식’으로나마 활용하려 했고, 시민들은 법을 통해 권력남용을 통제하고 권리를 보장받고자 했다. 우리 사회도 점점 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회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징표였기에 바람직한 일이었다. 


   

  한국 사회처럼 연고·정실·혈연·인정·집단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법을 통한 합리화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법의 통제를 받게 되면, 사회가 예측 가능해지고 사회의 전체적인 효율성이 증대된다. 인권의 보장 역시 더욱 확고해진다.


시간이 흐르자 한국에서도 ‘법이 다스리는 세상’이 굴절을 겪기 시작했다. 어느 틈엔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인터넷 게시물이나 문자 메시지가 허위 내용을 담고 있다고 처벌받고,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항의전화를 한 사람들이 수사기관에 불려갔다. 인터넷 심의에 항의하려고 삭제된 사진을 보여주며 ‘이래도 되냐?’고 물었더니 음란물죄가 적용되었다.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 욕설이나 협박조의 말을 섞었더니, 군인에게는 상관모욕죄, 민간인에게는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죄, (대통령에 대한) 협박죄가 적용되어 형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정부 포스터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법이 공포와 억압의 아이콘으로 귀환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특정 정치세력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주요 정책 사안들이 법정에 소환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종합부동산세, 새만금 사업, 4대강 사업, 수도 이전, 미디어법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정치적 사안들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고 나서야 종지부가 찍혔다. 대통령의 진퇴 여부 또한 헌법재판소에 의해 종결되었고, 호주제, 동성동본 불혼 등 전통윤리가 착종된 문제들도 사법부가 결단한 후에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었다. 사형제, 간통죄, (군형법상) 계간죄, 양심적 병역거부 등 현재진행형 의제들 역시 ‘정치’가 해결하기 이전에 사법부가 손을 쓸 가능성이 더 높다.



대선 후보들, 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시민들의 법문화도 달라졌다. 1960년대 함병춘 선생은 한국 법문화의 특징을 ‘비법적’(alegalistic)이라고 규정했지만, 이제는 옛날 얘기다. 한국인은 2011년 한 해 동안 10명 중 1명이 소송을 벌였다. 상고사건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송을 제기했으면 갈 데까지 가본다는 얘기다. 제정되는 법률의 양도 엄청나다. 18대 국회 4년 동안, 접수된 법안은 총 1만3913건이었고, 이 중 2353건이 가결되었다. 19대 국회가 열린 지 다섯 달 만에 2000건이 넘는 법안이 접수되었다. 의원들의 법안발의 실적 욕심이나 법을 이용하는 영악한 이익단체 때문만은 아니다. 법을 통해 시민사회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은 이미 시민운동의 일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세상만사를 ‘법’에 위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회의 갈등조정 능력이나 자율적 문제해결 능력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이다. 어차피 법원에 가야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애초에 성실하게 논의할 실익이 줄어든다. 효율성만 따진다면야 아예 모든 일을 처음부터 법원에서 판단하게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법이 세상을 너무 많이 지배하게 되면서 벌어진 부작용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화려한 정책도 ‘법’이라는 도구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법을 어떻게 활용해 그 정책을 실현할 것인지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의회 개혁, 사법 개혁, 검찰 개혁은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기관들의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기관들이 제 기능을 못하면 법뿐만 아니라 법을 도구로 쓰는 정책까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다들 어떤 ‘정책’에 관심이 있지만, 그 정책을 실현시켜줄 ‘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다. 법의 문제는 법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사IN, 268호, 2012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