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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교육정책에 ‘학생인권’이 빠졌다

by transproms 2013. 3. 27.

교육정책에 ‘학생인권’이 빠졌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대선정국이 무르익으면서 교육개혁에 관한 공약들이 쏟아져 나온다. 학생들의 소질과 끼를 살리겠다, 사교육비를 축소하겠다, 특목고 우선선발을 폐지하겠다, 일제고사를 폐지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열쇳말이 하나 빠졌다. 바로 ‘학생인권’이다. 교육운동진영의 오랜 분투와 김상곤, 곽노현 등 민선교육감의 혁신교육정책이 어우러져 학생인권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이 소중한 성과물을 디딤돌 삼아 한 발짝 더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


다들 사교육비를 축소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사교육 근절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사교육이 교육의 수월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반론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사교육이 가계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사교육의 공급가격을 낮춰서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사교육을 받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사교육이 학생들이 적절하게 휴식하고 문화생활을 향유할 권리, 자신의 소질과 적성 및 환경에 합당한 학습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러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사교육이 발 딛고 서 있는 입시제도와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고, 학생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학생인권이라는 열쇳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사교육을 받을 권리’는 ‘학생’의 권리일 수 없다고 논박할 수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사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어른’은 봤어도 그런 주장을 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 사교육의 공급가격이 낮아지면 ‘어른’들의 고통이 삭감되겠지만, ‘학생’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학생’의 인권을 말하고 있다.


체벌이 금지되는 등 학생인권정책이 강화되기 시작하자, 학생들 ‘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작금의 학교현실에서는 체벌 없는 학생지도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해법은 체벌의 부활이 아니라, 교사가 체벌 없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몇몇 교육청에서 교사들의 행정업무 부담을 줄이려고 고심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학생인권정책은 인권이라는 관념을 무작정 학교현장에 욱여넣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인권의 실현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여건을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일이었다.


학교폭력 문제에 ‘인권’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체벌 등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을 또다른 폭력과 부당한 권위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일탈을 감행할 때, 그 선택지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아본 사람만이 타인의 인권도 존중할 수 있다.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런 인권존중 문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징표다. 그래서 교육은 자신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감수성을 키우고 그것을 학교현장에 정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생인권을 주장했던 취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2012년 대한민국은 다시 기로에 서 있다. 학생인권이라는 화두가 지역에서 출발한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중앙정부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법’으로 발전되어야 하고, 학생인권의 실현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도 절실하다. 그동안 쌓아온 이 성과물을 어떻게 발전시키려고 하는지,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2.11.5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