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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_mass media

[기고] ‘실패한 농담’까지 처벌해서야

by transproms 2013. 3. 27.

‘실패한 농담’까지 처벌해서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트위터에 북한찬양 게시물을 리트위트한 박정근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법원은 그의 트위트·리트위트가 “장난을 치는 듯한 내용”이라는 점 자체는 인정했다. 하지만 트위터의 특성상 그가 리트위트한 게시물들이 각각 불연속적으로 게시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북한찬양 게시물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런 경우에는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이 점은 박씨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실제로 종북주의자라는 항의를 받았음에도 계속 리트위트를 했으니, 자신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의 게시글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을 야기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도대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 얼마나 허약하기에, 그깟 북한찬양 게시물로 인해 실질적 해악을 입는지 의아했다. 이른바 ‘북한찬양 게시물’은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고, 문제의 ‘우리민족끼리’라는 계정 역시 누구나 팔로해서 열람할 수가 있는 상황에서, 박씨의 리트위트가 특별히 ‘실질적 해악’을 끼쳤다고 볼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예컨대, 그가 리트위트한 북한찬양 게시물을 보고 ‘대한민국을 적화시켜야겠다’는 의욕을 갖거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게시물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에 실질적 해악을 야기했다거나 그럴 위험이 임박하지 않는 한 국가가 나설 일이 아니다. 별로 가능성이 없는 얘기지만, 박정근씨가 리트위트한 게시물을 보고 북한에 호감이 생겨서 남한의 정보를 북에 넘겨주거나 적화통일을 위한 무장단체를 결성한다면, 그것은 간첩죄나 내란·외환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위험이 창출되기도 전에 어떤 막연한 가능성만 가지고 누군가를 벌할 수는 없다.


물론 박정근씨의 리트위트가 “어쨌든 위험이 제로(0)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위험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으면 일단 처벌하고 볼 것이냐, 아니면 웬만한 것은 사회의 자정능력에 맡겨 두고 구체적 위험이 임박했을 때 비로소 국가가 나설 것인가에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통해 후자를 선택했다. 그것은 물샐틈없는 통제로 얻는 이익보다 시민의 자유를 억압할 때의 손해가 더 크다는 점과, 설혹 작은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사회에서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제어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박정근씨가 웃자고 한 행위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든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농담은 최소한 어떤 일군의 수신자들에게는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농담을 훈계하고자 국가가 나설 이유는 없다. 그의 농담을 즐기지 못하는 일부 수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농담의 발신자를 처벌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어떤 명백한 위험을 창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 행위가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판결은 그저 ‘실패한 농담’에 대한 가혹한 처벌일 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사회계약’을 통해 농담할 자유, 그걸 보고 웃을 자유, 그리고 하나도 안 웃기다고 비판할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실패한 농담에 대해 형벌권을 발동할 권한을 국가에 부여한 적은 없다.



*한겨레신문, 2012.11.26 (링크)